[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38)

렘브란트가 그린 <유대인 신부>의 원숙한 사랑이란?

입력 2024-05-20 14:2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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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38)
렘브란트 판 레인, <이삭과 리브가 또는 유대인 신부>, c. 1665~69, 121.5x166.5cm, 캔버스에 유채,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반 고흐는 암스테르담에서 렘브란트의 <유대인 신부> 작품을 보고 스탕달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리고 동생 테오에게 "내가 만약 렘브란트의 <유대인 신부> 앞에서 빵 한 조각만 먹으며 2주일간 계속 앉아 있을 수 있다면, 내 인생에서 10년이라는 기간도 기꺼이 내놓을 것"이라 편지를 썼다. 흔히 스탕달 신드롬이란 훌륭한 예술품을 보는 순간 받는 경이로운 정신적 충격을 말한다.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는 암스테르담에서 40여 km 떨어진 고풍스러운 도시 레이덴((Leiden)에서 아홉 형제자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라인강 주변에서 제분소를 운영하였으므로 렘브란트 판 레이덴은 '라인강에 살던 렘브란트'라는 뜻이다.

그는 네덜란드의 유일한 대학 도시인 레이덴에서 라틴어와 인문교육을 2개월간 받았지만 중퇴하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는 아주 짧은 기간에 상인 계층인 렘브란트가 인문 교육을 맛보았다는 것으로 의미가 있다. 3~4년간 도제교육을 받은 뒤 18살에 레이덴에서 공방을 차릴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가장으로서 그의 결혼 생활은 결코 순탄하지는 않았다. 렘브란트의 첫 부인 사스키아는 그를 후원하던 화상의 조카로 귀족 출신이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네덜란드 북부 어느 도시의 시장이었다.

그러나 사스키아는 렘브란트가 기대하지 않았던 지참금 13,000길더(약 30~40억원)을 가져와 그를 놀라게 만들었다. 행복했던 부부 사이에서 세 아이가 태어났지만, 불행하게도 젖먹이 아들 티투스만 남기고 사스키아마저 사망하였다. 

어린 아들을 위해 유모로 들인 헤르트헤는 곧 그의 정부가 되었다. 그러나 포악한 헤르트헤는 렘브란트를 학대하였다. 그러자 새로 들어온 하녀 헨드리케에게 위로를 받으며 삼각관계로 발전하였고, 결국 보상금을 주고 헤르트헤를 쫓아냈다. 이에 헤르트헤는 혼인빙자로 렘브란트를 고소하여 법정에 서게 되었고, 그로부터 긴 추문이 시작되었다.

죽은 부인 사스키아의 보석도 훔치는 등 난폭한 헤르트헤와의 법정 다툼에서 그는 간신히 승소하였다. 그러나 교화원에 가게 된 헤르트헤의 수감비용과 재판비용까지 부담하는 등 경제적으로 큰 타격은 피할 수 없어 에칭 판화를 제작하게 되었다.​

렘브란트는 헌신적인 헨드리케 사이에 딸 코르넬리우스를 낳았다. 그러나 본부인 사스키아는 죽기 전 재산관리인을 두고 월급여로 일정 금액만을 지불하도록 조치해 두었다. 그리고 만약 재혼할 경우 아들 티투스에게 전재산이 가고 양육권을 외삼촌에게 주라는 유언을 남겼다.

다 지나간 일이지만, 사스키아가 진심으로 렘브란트를 사랑했다면 그런 유언을 남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세상 물정을 모르고 경제감각이 없는 렘브란트를 위해 사스키아로서는 나름 현명한 처사였다. 렘브란트와 정식 결혼을 할 수 없었던 헨드리케는 사스키아 친정의 소송으로 법정에서 수모를 당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겪으니 자연 그에게 오는 그림 주문이 줄어들었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서로 사랑하는 <이삭과 리브가>이다. <이삭과 리브가>는 성서에서 가장 모범적인 가정을 상징하는 부부의 대명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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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신부>부분

렘브란트는 암스테르담의 부촌인 유대인 거리에 살고 있어 유대인들과 격의 없이 지냈다.

이 부부의 얼굴은 친밀하고 낯익은 사람처럼 따뜻하게 다가온다. 부부의 시선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도록 모호하게 처리했지만, 두 인물은 깊은 사색에 빠져 있다.

여인의 붉은색 드레스와 남자의 황금빛 옷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조합이지만, 밝은 의상과는 대조적으로 어쩐지 표정은 차분하기 그지없다. 두 사람은 침묵 속에서 소통하고 있지만, 서로를 향해 살짝 기댔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을 물리적으로 노출시켰다. 

남자의 왼손은 신부의 어깨에 올려져 있고 오른손은 신부의 가슴, 심장에 대고 있다. ‘내가 당신을 보호해 주겠다’는 표시이다. 신부도 자신의 손을 남자의 손에 살짝 올려 ‘당신의 뜻에 따르겠다’는 무언의 응답을 한다.

두 남녀의 깊은 신뢰와 진실된 애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두 사람의 신비스러운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렘브란트는 얼굴 전체를 밝게 하여 감동적인 순간을 강조하고 있다.​ 

​이 작품을 그릴 때, 그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헨드리케가 1662년에 사망해 홀로 된 그는 고통과 가난 속에서 보내고 있었다.

렘브란트가 헌신적인 반려자였던 헨드리케를 그리워하며 그린 작품 또는 1668년에 결혼하고 병으로 죽은 아들 티투스와 그의 약혼녀를 그린 작품이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을 자세히 바라보면 젊은 얼굴이 아니고, 울퉁불퉁한 피부와 주름진 입가로 보아 중년의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자신의 행복한 추억이었든 아들의 경우였든 간에 이젠 모두 흘러간 과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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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신부> 부분

어떤 부분보다 남자의 노란 소매는 유난히 반짝인다.

붓으로 물감을 칠한 게 아니고, 두터운 마띠에르(matière, 재질감)를 주기 위해 팔레트 나이프로 물감을 찍어서 나이프를 꾹꾹 눌러가며 발랐다. 그래서 자국이 그대로 남아 사각형의 마띠에르를 남겼다. 세잔은 “1g의 물감보다 1kg의 물감이 더 강한 인상을 준다”고 했다. 

렘브란트는 빛을 받아 투명한 광택을 표현하기 위해 물감에 석영 등 유리조각을 넣었다. 렘브란트는 두 사람이 감정을 교류하는 정서적인 순간에 두터운 마티에르를 사용함으로써 전통적으로 붓자국이 없는 매끄러운 화법에서 벗어났다.

성숙한 사랑의 감정을 보여주는 인간적인 렘브란트, 화가인 렘브란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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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신부> 부분

이제 이들의 손을 보자. 렘브란트는 두 손의 피부색은 같지만 남자의 손은 거친 붓으로 톡톡 두드려 강인하고, 여자의 손은 더 따뜻하고 섬세하다. 두 사람의 손과 옷에서 교차되는 붓질의 방향이 뚜렷이 드러난다. 

여인의 소매 부분은 남자의 의상과 같은 톤과 색으로 두 사람의 마음을 상징한다. 여기에는 부부의 애정과 신뢰가 노란색과 붉은색으로 따뜻한 기운을 뿜어 내고 있다.

렘브란트의 작품은 갈색과 검정의 어두운 톤의 그림이 대부분인데, 이것은 가장 밝고 화려한 색조로 그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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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에서 주로 나이 든 관람객들이 이 작품 앞에 오래 서 있다.

이 작품은 최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지인에게 소개를 했더니 “애정을 갈구하는 듯이 느껴진다”라고 반응했다. 작품에서 감동을 받는 포인트는 그가 현재 느끼는 정서가 가장 크게 작용하게 되니 그 말이 맞다.

불처럼 뜨거운 사랑은 중년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삶의 고비고비마다 함께 견디고 버텨낸 깊은 세월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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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판 레인, 수도사 옷을 입은 렘브란트의 아들 티투스, 1660, 캔버스에 유채,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프란시스코 수도회 수사의 모습인 아들 티투스를 겸허한 눈으로 묘사했다. 이 수도회의 규칙은 청빈과 겸손의 삶이다.

검소함을 상징하는 거친 수도복과 렘브란트가 모든 애정을 쏟은 아들이 수척한 얼굴로 묵상하는 초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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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 옷을 입은 렘브란트의 아들 티투스> 부분

1668년 2월에 티투스가 은세공인이자 렘브란트 친구의 딸인 마흐달레나와 결혼하였다. 하지만 그는 7개월 후 흑사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 티투스의 딸 티티아가 태어난다. 렘브란트는 손녀의 대부가 되었다.

이 작품은 1660년에 그려져 아들이 살아있을 때였다. 그러나 나는 렘브란트를 관통했던 역경을 알고 있기에 이 작품이 더욱 애절하게 다가온다. 아들 티투스는 태어나며 어머니를 잃었으며 렘브란트의 유일한 자식이었다.

그런 아들이, 유복자를 남기고 먼저 하늘 나라로 갔으니, 손녀의 대부가 된 렘브란트의 통절함이 내 가슴을 후벼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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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사도 바울처럼 그린 자화상> 부분, 1661,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100여점의 렘브란트 자화상 중 가장 내 마음을 울린 작품은 바로 이것이다. 세월의 무게와 삶에 휘둘린 처량한 노인이 여기에 있다. 파산을 하고 첫 부인 사스키아의 묘지까지 팔아야 했다.

모든 것이 사라져간 뒤 회한만 남은 렘브란트는 자신의 얼굴을 보이는 그대로 그렸다. 삶에 대한 희망도 없으니 끈을 놓아버리고 싶지만 손녀를 위해 붓을 던질 수는 없었다. 초점이 없는 흐릿한 흰자위로 인해 곧 눈물이 맺힐 듯한 지친 얼굴이다.

성공한 루벤스의 말년의 자화상보다 이 작품이 더 사랑을 받는 이유는 ‘렘브란트의 삶이 바로 이 그림 한 장’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이렇게 시각과 촉각이 직관적으로 공감하게 만든다.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38)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들어서면 전시된 첫 작품이 바로 이 두 작품이다.

◇최금희 작가
최금희는 미술에 대한 열정과 지적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수차례 박물관대학을 수료하고, 서울대 고전인문학부 김현 교수에게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예술의 전당 미술 아카데미에서는 이현 선생에게서 르네상스 미술에 대하여, 대안연구공동체에서 노성두 미술사학자로부터 서양미술사를, 그리고 미셀 푸코를 전공한 철학박사 허경 선생에게서 1900년대 이후의 미술사를 사사했다. 그동안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통해 작가별로 그의 이력과 미술 사조, 동료 화가들, 그들의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관련된 소설과 영화, 역사 건축을 바탕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현재 서울시 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쿠키뉴스=홍석원 기자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