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어쩌면 축구공은 둥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기사승인 2016-06-22 10:5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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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2016’과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가 비슷한 기간에 개최되며 세계 축구팬들은 그야말로 축제의 시간을 맞았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 한다는 유럽과 남미의 강팀들이 자웅을 겨루는 터라 경기의 질은 그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팬들의 눈은 즐겁기 그지없죠.

축구계에서 흔히 거론되는 격언이 있습니다. ‘공은 둥글다’는 겁니다. 실제 축구에선 자유분방한 경기 규칙과 풀타임 런닝 방식으로 톡톡 튀는 변수가 심심찮게 발생하곤 합니다. 단 한 선수의 컨디션에 의해 경기가 뒤집히기도 하고, 큰 기대를 받던 정상급 선수가 컨디션 난조나 부상으로 경기를 그르치는 경우도 있죠. 

예상치 못한 팀이 강호로 분류되는 팀을 격파하는 걸 ‘이변’이라 한다면, 이변은 꽤 흔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친숙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세네갈은 개막전에서 프랑스를 격파하는 이변을 연출한 적이 있습니다. 경기 후 전문가들은 아프리카 선수들 특유의 탄력 있는 축구스타일이 강력한 우승후보인 프랑스를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내렸죠. 2006년엔 첫 월드컵 출전국인 가나가 당시 피파랭킹 2위 체코를 꺾고 16강에 진출한 적이 있습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선 이탈리아, 프랑스가 조별리그 최하위로 탈락하고,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선 스페인, 이탈리아, 잉글랜드가 조별리그에서 떨어지기도 했죠.

이번 대회에서도 이변은 있었습니다. 유로 2016에서 포르투갈은 약체로 평가받던 아이슬란드와 첫 경기에서 1대1 무승부를 거두더니, 오스트리아와도 0대0 무승부를 거뒀죠. 헝가리와의 최종전에서 승리를 따내지 못한다면 ‘이변의 역사’에 자신들의 이름을 올리는 불명예를 안게 될 공산이 큽니다.

하지만 대회 전체적으로 보면 강호로 점쳐졌던 이들의 무난한 16강 진출이 돋보입니다. 프랑스, 스위스, 잉글랜드, 독일, 폴란드, 크로아티아, 스페인, 이탈리아가 상위라운드 진출을 확정했고, 벨기에는 스웨덴과의 최종전에서 최소 비기기만 해도 16강에 진출합니다. 

코파 아메리카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KBS N 해설진(김대길, 박찬하, 한준희, 이영표)이 예측한 우승후보인 아르헨티나, 칠레, 미국, 콜롬비아가 나란히 4강 진출하며, ‘그들만의 잔치’를 일궈냈습니다. 만약 이 대회가 드라마였다면, 시청률은 한 자릿수에 그쳤을 겁니다.

월드컵을 보더라도 상위권 성적은 항상 ‘할 만한 팀’들이 했습니다. 2002년 월드컵에선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이 우승을, 전차군단 독일이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06년 월드컵을 보더라도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이 순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전통강호들이 타이틀을 독식했습니다. 2010년엔 스페인, 네덜란드, 독일이, 2014년엔 독일, 아르헨티나, 네덜란드가 각각 1-3위를 차지했죠.

[친절한 쿡기자] 어쩌면 축구공은 둥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눈여겨 볼 점은 독일의 경우 2002년 이후 한 번도 3위권 밖으로 벗어난 적 없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독일 저력의 제1근간을 자국리그 인프라에서 찾습니다. 해외 스포츠 전문매체 ‘메일스포트(MailSport)’ 조사에 따르면 독일 분데스리가의 경기당 평균 관중 수는 4만2609명으로 2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3만6695명보다 6000여명 많았습니다. 전체 관중수는 1303만 명으로 잉글랜드의 1394만 명보다 적은 수치지만, 게임 수가 74경기나 적었던 점을 감안하면 경기장별 관중 수는 16% 이상 많다는 결론이 납니다.

독일은 2005년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며 어려운 시기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축구협회와 당국, 팬들의 꾸준한 관심이 어우러져 현재는 ‘가장 많은 자본이 오가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보다도 더 많은 관중이 모이는 대회가 됐습니다. 그리고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축구 경쟁력을 보유한 나라가 됐죠.

어쨌든 둥근 공은 현대의 기술 집약산업처럼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는’ 수준이 된 것 같습니다. 이에 빗대 한국도 ‘둥근 공을 원하는 대로 튕기는’ 나라가 되기 위해 축구 선진국들의 사례를 깊이 반추해볼 법 합니다.

이다니엘 기자 dn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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