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내 물건 언제와” 해외구매 피해 급증하는데 손놓은 당국

기사승인 2016-06-29 22:09:38
- + 인쇄

#직장인 김모(28·여)씨는 지난 3월 한 해외 구매대행 사이트에서 구입한 고가의 청바지를 한 달이 넘도록 받지 못했다. 참다못해 환불을 요청한 김씨에게 업체는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는 핑계만 되풀이했다. 김씨는 “소비자원에 신고한다”며 강력하게 항의하고 나서야 청바지 값을 환불 받을 수 있었다. 그는 “공정거래위원회 마크까지 붙어있는 사이트였는데 해당 업체가 피해 다발 업체인 것을 나중에 알았다”며 “어떤 업체가 안전하고, 위험한지 소비자들을 위한 정보가 너무 없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해외 직접구매, 배송대행 및 구매대행으로 인한 피해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당국은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한 상태다.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해외 구매 피해 소비자 상담 3년 간 5.4배 급증…업체, 재고 처분할 수 없어 환불·반품 꺼려

값비싼 수입제품을 보다 저렴하게 구입하려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동시에 피해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서울시전자상거래센터가 지난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해외 구매대행 서비스 관련 소비자 상담은 2013년 818건에서 2014년 1226건, 2015년 4405건으로 최근 3년 간 5.4배 증가했다.

한 대형 구매대행 업체 관계자는 “소비자가 반품한 제품이 현지에서는 원칙적으로 반품 불가한 ‘해외 파이널 세일’(최종 세일)상품이거나, 복잡한 반품 과정으로 기한이 만료, 결국 재고로 떠안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관세법 때문에 재고를 처분할 수도 없어서 업체 입장에서는 환불·반품 요청이 반갑지 않다”고 털어놨다.

소비자 “사이트에 대한 비교정보 가장 절실”

해외 구매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는 일반 전자상거래와 달리 국제거래에서 발생한 분쟁이기 때문에 구제 받기도 힘들다. 관련 기관 및 단체에 피해를 접수한 소비자 중 구제받은 이들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서울시전자상거래센터가 발표한 같은 자료에 따르면 접수된 피해 건수 중 1928건(43.7%)만 센터가 사업자와 소비자 사이에 합의를 권고해 피해를 구제받았다. 피해 구제 방법을 모르거나, 복잡한 절차와 오래 걸리는 시간 때문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소비자들도 상당수다.

따라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사기 의심 업체를 피하기 위해 해외 구매 사이트에 대한 비교 정보 제공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구매대행 사이트 이용자 양모(29·여)씨는 “주문한 사이트가 믿을 만한 곳인지 포털 사이트 검색과 후기를 읽어보는 것만으로는 알기 어려웠다”며 “상품을 기다리는 동안 혹시나 사기 당하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고 털어놨다.

[기획] “내 물건 언제와” 해외구매 피해 급증하는데 손놓은 당국여기는 해외 업체만, 저기는 국내 업체만…관련 기관 “소비자가 꼼꼼히 검색해봐야”

문제는 해외 구매 업체들에 대한 정보를 공시하는 기관이 일원화 돼있지 않아 소비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설립한 ‘국제거래 소비자 포털 사이트’는 해외 사업자만, 한국 소비자원 사이트와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영하는 ‘1372소비자 상담’ 사이트는 국내 사업자만 피해 다발 업체명을 공개하고 있다. 정보가 중첩해서 제공되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또 ‘서울시전자상거래센터’는 서울시에 소재한 업체에 한해서만 만족도를 평가하고 사기 의심 사이트를 공시해 소비자들이 한 눈에 알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관련 기관들은 업체에 주문하기 전 “검색을 반드시 해보라”며 소비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한국 소비자원은 “해당 쇼핑몰로부터 피해를 입은 소비자가 없는지 검색한 후 거래하는 것이 좋다”고 안내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가급적 확인된 유명 해외 쇼핑몰을 이용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은 이용을 자제하라”는 모호한 권고 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업체 적발도 4년에 한 번꼴…한국소비자원 “일원화 방안도 검토 중”

급증하는 피해 소비자들의 숫자에 비해 관련 정부 기관의 관리, 감독은 안이한 수준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7년, 2012년, 그리고 2015년에 한 차례씩 전자상거래법을 위반한 업체들을 적발해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태료를 부과했다.

일례로 A 해외직구 업체는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5월까지 배송지연, 판매자와의 연락이 어려움, 환급 지연 등 서울시전자상거래센터에 접수된 피해건수만 157건에 달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주문 폭주로 전화량이 많아 통화가 수월하지 못하다’라는 공지를 내걸고 버젓이 운영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비교 정보가 여러 기관에 분산돼 있는 것에 대해 “(일원화의)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 서울시와 업무협약을 통해 정보를 한곳에서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도 “업체들을 주기적으로 직권조사 하고 있으며 과태료도 법적 한도 내에서 적지 않은 금액을 부과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과도한 반품 수수료 문제 해결을 위해 올해 안에 표준 약관을 제정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또 “오는 9월부터는 사기 업체의 사이트에 대해서 임시정지(일시적 접근 차단)하는 정책도 시행될 것”고 덧붙였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