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지 않은 숙제, 일제 강제동원…“한·일 공동재단 설립해야”

기사승인 2017-05-30 18:3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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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이소연, 이승희 기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와 한·일 시민사회단체가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대응을 요청했다. 

민족문제연구소,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 입법을 위한 일·한 공동행동(공동행동) 등은 30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일제 강제동원 문제의 종합적 해결을 모색하는 국제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는 징용 피해자의 증언으로 시작됐다. 지난 1942년, 19살의 나이로 일본 이와테현 가마이시에 위치한 가마이시 제철소에 동원된 이상주(94)씨는 “기술을 배울 수 있고 돈벌이가 좋다고 속여 어린 학생들을 일본으로 데려갔다”며 “고된 노동의 대가로 받았던 돈은 단 돈 7원이었다. 당시 5원이었던 팥죽 한 그릇을 겨우 사 먹을 수 있던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공장과의 2년 계약이 끝난 뒤에는 군인으로 징집됐다. 젊은 시절을 타지에서 지내야만 했다”고 증언했다.

후지코시 강제연행‧강제노동 소송의 원고인 이복실(85‧여)씨는 “교장과 담임교사가 일본 후지코시 공장에 가서 2년간 일하고 오면 희망하는 상급학교에 편입시켜주겠다고 했다”면서 “부모가 반대했으나 교장이 ‘일본 제국주의의 국민으로서 약속을 이행하라’고 강요해 지장을 찍었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일본으로부터 진심 어린 사죄와 육체적 노동에 대한 보상을 받고 오라며 저승사자도 우리를 (저승으로) 데려가지 않고 있다”면서 “대한민국의 위정자분들도 저희를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이어진 심포지엄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강제 동원 배상과 관련한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미쓰비시징용공과 신일철주금 관련 소송을 대리 중인 김미경 변호사는 “지난 2012년 대법원은 일본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과 신일철주금 주식회사에 강제 동원 배상 책임이 있다는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며 “이후 다른 강제 동원 배상 소송들도 (이 판결의) 영향을 받고 있다. 대법원에서 명확한 확정 판결이 선고돼야 다른 소송도 마무리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김계순씨 외 26명이 원고로 있는 후지코시 관련 소송과 히타치조센 주식회사 관련 소송은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풀리지 않은 숙제, 일제 강제동원…“한·일 공동재단 설립해야”야노 히데키 공동행동 사무국장은 2012년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지난 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 안에 강제동원 관련 손해보상이 포함됐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선언”이라며 “현재 한국에서의 재판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한국 대법원이 확정 판결을 내려준다면 일본 정부 역시 더 이상 피해자들을 무시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법원의 비협조적인 행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잇따랐다.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 대리인 이상갑 변호사는 “일반 우편물과 달리 국외 소송 관련 서류는 회신받기까지 5~6개월가량 걸린다. 법원에 접수한 소장을 일본으로부터 회신받아야만 재판이 진행될 수 있다”면서 “일본 측이 서류를 두 번 반송해, 1년 동안 시작조차 못한 재판도 있다”고 꼬집었다. 이 변호사는 “당시 일본 측은 소장의 순서가 잘못 연결돼 있다거나, 함께 첨부된 안내문에 ‘주차장이 너무 협소하니 가능하면 대중교통 이용해달라’는 문구가 일본어로 번역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반송 이유로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한·일청구권협정 해석과 관련한 논쟁은 이해하겠으나, 이런 식으로 소송서류를 반송하는 것은 예의의 문제”라고 비판했다.

한·일청구권협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인권재단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보추협 공동대표 장완익 변호사는 “한국 정부가 특별법을 만들어 출연해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재단이 필요하다”며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설립됐으나 사업비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일 정부가 공동으로 재단을 설립, 강제동원 피해자 조사와 유가족에 대한 손해 배상을 해결해야 한다”며 “독일의 ‘기억·책임·미래재단’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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