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저자 끼워넣고 서류도 위조 “흡사 전쟁터”… 입시서열의 굴레

기사승인 2018-02-08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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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저자 끼워넣고 서류도 위조 “흡사 전쟁터”… 입시서열의 굴레

고교·대학 진학에 혈안… 공정성은 구호에 그쳐

대표적 전형 ‘학종’, 과도한 경쟁 속 ‘깜깜이 전형’ 오명 떼지 못해

“서열구조 폐단… 출신학교 차별 제재·경쟁력 갖춘 대학 확충해야”

아들이 고교생일 때부터 자신의 논문에 공저자로 올린 서울대의 한 교수가 지난해 말 경찰 내사를 받고 사직했다. 아들의 이름이 제1저자 또는 공저자로 실린 논문이 모두 43편에 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들의 스펙을 쌓아주기 위해 지위를 이용했다는 지적을 불렀다.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학과에 최종 합격했다. 뒤늦게 부자 관계를 확인한 학과는 인사위원회를 열어 아들이 참여한 논문을 교수의 실적에서 제외시켰다.

돈을 써서 ‘전형값’을 치른 경우도 있다. 지난달엔 브로커를 통해 사진을 덧붙이는 수법으로, 장애인 등록증을 위조해 대학 장애인특별전형에 부정입학한 학생과 학부모가 입건됐다. 장애인전형이 지원자가 많지 않고, 관련 서류 확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을 노렸다. 브로커는 진학 대가로 1억원을 챙겼다. 이 같은 수법으로 서울 유명 사립대에 합격한 학생 4명은 입학이 취소됐다.

최근 ‘부적절’, ‘불공정’ 꼬리표를 단 입시 세태의 단면들이 연거푸 화제가 되고 있다. 학생부종합전형의 비중이 커지자 학생부를 무단으로 뜯어고치는 일이 급증하고, 명문대 진학 가능성이 높은 학생에게 상장을 몰아주는 것도 같은 선상에서 벌어진 폐단이다. 학생 본인은 물론 부모와 학교까지 고교·대학 진학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공정성은 구호에 그칠 뿐이다.

올해 고교 3학년에 올라가는 자녀를 둔 학부모 임미희(가명·서울 서초구)씨는 “입시는 그야말로 전쟁”이라며 “입시를 놓고 부적절한 행위를 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게 한 부모들의 심정만큼은 일부 헤아려진다”고 말했다. 김씨는 “학종, 정시, 논술을 모두 대비해야 하는 아이는 눈코 뜰 새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며 “중간·기말시험에 목숨 걸어야 하고 교내대회나 독서기록, 봉사활동도 일일이 쌓아둬야 하는데, 이게 뭐하는 건가 싶다가도 현 입시체제 안에서는 달리 대안이 없다”고 토로했다.

다양한 활동을 독려해 전공 적합성을 찾도록 도입된 학종은 그 비중이 매년 역대 최대치를 향하면서 대표적 대입 전형으로 부각됐지만, 과도한 경쟁 속에서 ‘깜깜이 전형’이란 오명을 떼지 못하고 있다. 학종에 대한 불신은 수시를 축소해야 한다는 촉구로 번졌다. 입시전문기업 진학사가 수험생 138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81%는 수시보다 정시가 더 공정하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수시는 객관적 평가법이 없고 학교 간 수준 차이가 있다’, ‘수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이 힘든 요소도 중요하게 본다’ 등의 답이 돌아왔다.

교육의 주된 목적이 상급학교 진학이고, 이를 위한 경쟁이 당연한 학교 문화에서 승자와 패자를 나누기 위한 시험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사교육과 온라인 교육이 활성화되면서 학교의 기능은 ‘출석’과 ‘평가’ 기능만 남았다는 말이 돌 지경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현 입시체제가 낳은 문제는 결국 고교 및 대학의 서열에서 기인한다고 진단한다. 더불어 그 서열화의 배경엔 불평등한 사회가 있다고 짚었다.

이현 우리교육연구소 대표는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의미 있는 사회적·경제적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중요하지만 현재로선 한계가 있다”며 “가령 특성화고 졸업생이 매년 10만명 이상 나오는데 이들이 직업생활에 진입하고 적정한 급여를 받으며 안정적인 계획을 짤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 같은 과제를 선결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대학 서열화를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이어 “고교 서열화의 전제는 일반고의 정체성 확립이며, 대학의 경우 경쟁력을 갖춘 특성화 모델을 보다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표는 “고교까지는 소양과 자질에 대한 교육을 비중 있게 다루기 위해 서열 자체를 없애는 것이 의미가 있다”며 “중학교의 우수한 인재들이 특정 고교에 몰리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고 복잡한 학교 체제를 단순화해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송 대표는 또 “입시를 심의하고 규제하는 관리기구 설치를 넘어 취업 과정에서 출신학교에 따라 차별하는 행위를 제재하고 처벌할 수 있도록 법률을 손봐야 한다”면서 “대학 진학은 서열에 따른 특혜를 위해서가 아닌 교육적 자산을 얻는 심화 단계이자 자신에게 맞는 교육과정을 통해 역량을 키우는 과정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학생들의 피로도를 낮추고 심각한 서열 구조를 완화하려면 국가의 책임 있는 실천이 더욱 중요하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반상진 전북대 교육학과 교수는 “최근 불거진 금융권 채용비리 사례와 같이 노동시장에서 학벌을 중시하는 고용관행이 계속된다면 서열체제는 무너질 수 없다”면서 “이 부분을 국가적 의제로 다뤄야 하지만, 민간시장이다보니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 교수는 “학벌체제를 없애기 힘들다면 좋은 학벌을 가질 수 있는 대학을 더 만드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정부가 지원책을 강구해 경쟁력 있는 대학을 늘리면 학생들의 선택권은 넓어지고 서열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성일 기자 ivemic@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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