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나성실, 치킨 하난 끝내주게 튀기죠”

실패해도 괜찮아①

기사승인 2018-09-12 0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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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잘 알 순 없지만 ‘자영업자’란 말 앞에 붙는 수식어가 있습니다. ‘영세’. 영세 자영업자들의 한숨과 눈물, 불안한 내일에 대한 걱정 등은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동네에 새 가게가 들어서기만 하면, ‘얼마나 버틸까’라는 궁금증이 들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요? 지금부터 들려드릴 나성실씨의  치킨 집 이야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 어귀, 골목마다 볼 수 있는 상당수 치킨집 사장님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겁니다. 이제부터 나성실씨의 사연 속으로 함께 가볼까요?

◇ 내 이름은 나.성.실

“…프랜차이즈 매장 네 곳 중 한 곳은 치킨집. 시장은 포화상태입니다. 지난해에만 4000여 곳의 치킨집이 개업했고, 3000여 곳이 문을 닫았습니다. 경제 불황에 치킨집은 된서리를 맞았습니다….”

“에이 재수 없게!” TV 뉴스를 꺼버린 남자가 리모컨을 신경질 내듯 집어던졌다. 나성실, 52세. ‘타의’로 회사를 나온 후 퇴직금을 몽땅 털어 부어 치킨집을 차린, 지금은 명실 공히 치킨 CEO가 된 사나이. ‘미식가’를 자부하던 그는 자신의 입맛과 손맛에 자신이 있었다. 회사에 사직서를 던지던 날, 환송회에서 나성실씨는 ‘치킨업계의 신화가 되겠다’며 큰소릴 쳤다.  

“나 부장님, 요즘 자영업자들 힘들다던데…. 그냥 다른 회사를 알아보시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요?” “이봐, 김 과장 무슨 소리야! 내가 누구야? 나성실이야, 나성실. 내 추진력 몰라?” “알죠. 아는데….”

회사 동료들의 우려를 뒤로 한 채, 나성실 부장은 그날 이후 ‘나성실 치킨집’의 사장이 됐다. 가게가 문을 열던 날 ‘꼭 들르겠다’던 회사 동료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나타나지 않았다. 나성실씨는 빈정이 상했지만 속으로 삭힐 뿐 도리가 없었다. ‘이젠 볼 일 없다 이거지, 흥! 두고 보라지.’   

나성실씨는 홍보 팜플렛을 한움쿰 들고서 열성적으로 가게를 알렸다. 처음에는 부끄럽고 어색했지만, 넉살 좋은 나성실씨는 이내 그 일이 익숙해졌다. 인근 상가의 상인들과도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경계하던 상인들도 나성실씨의 유머러스한 모습에 마음을 열었다. 그는 종종 맘 맞는 상인 몇 명과 치킨을 안주삼아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그날도 나성실씨는 영업을 마치고 호프집 사장 이씨, 분식집 사장 박씨와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나 사장, 힘들지?” “회사 다닐 때는 몰랐는데, 장사가 장난이 아니네요.” “그럴 거야, 나도 처음엔 그랬다니까.” “하하하.” “장사는 잘 돼?” “가게 열고 반짝 손님들이 몰리더니 지금은 오다말다 그렇죠, 뭐.”  

가만히 술잔만 기울이던 박씨가 한 마디 했다. “난 이번 달까지만 하고 가게 접을 거야. 손님도 계속 줄고 월세 내기도 빠듯해서 이젠 못 버티겠어. 에휴… 사는 게 뭔지. 나 먼저 일어남세.” “이봐, 박씨, 박씨!”

박씨의 뒷모습은 쓸쓸해 보였다. 자리를 파하고 집에 가는 길. 그날따라 피곤이 밀려왔다. 지하철 차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자꾸 아내와 딸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주책맞게 자꾸 눈물이 나는지, 원.’ 

청춘을 바쳐 일한 회사에서 쫓겨나듯 나온 지 6개월. 나성실씨는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사실 그의 사정도 박씨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온종일 치킨을 튀겨 팔아도 다달이 꼬박꼬박 나가는 배달 아르바이트생 인건비와 월세, 재료비 따위를 제하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보잘 것 없었다. 놀이터 그네에 앉아 이런저런 걱정에 빠져있을 때 누가 그의 등을 찰싹 때렸다. 

“아빠, 여기서 뭐해?” “어, 어, 우리 나공주님 아냐? 학원 끝나고 지금 오는 거니?” “응. 근데 아빤 왜 여깄어?” “그게, 어, 음, 바람이 시원해서… 하하하.” 

딸에게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나성실씨는 말을 더듬었다. “아빠 또 말 더듬는 거 보니까 잘못한 거 있구나? 그치?” “잘못은 무슨, 아빠가 누군지 몰라? 아빤 나.성.실이야. 하하하.” “아빠 오늘 진짜 이상하다.” “춥다. 들어가자.” “아깐 바람이 좋다면서?” “찬데 오래 앉아있으면 치질 생겨.” “우웩.”

나성실씨는 한 손에 딸의 가방을 들고, 다른 손으로 딸의 손을 꼭 잡았다. “아빠, 오늘 학원에서 딴 애들 못 푼 문제를 내가 풀었어.” “오, 그래?” “잘했으니까 나 용돈! 왜 또 못 들은척해!” “용돈은 엄마한테 달라고 해라.” “뭐야, 진짜. 아빠 이러기야! 저번에 엄마 몰래 담배핀 거 이른다!” “끄응. 용돈준 거 엄마한텐 비밀이다.”

재잘대며 신나하는 딸과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빠. 부녀의 등에 가을밤이 스쳤다. 달빛이 만든 길에 비친 부녀의 그림자는 이내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름달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 비상구는, 있다? 없다?

나성실씨는 그의 바람대로 치킨업계의 신화가 됐을까요? 아니면 분식집 사장님처럼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될까요? 

안타깝게도 전국의 수많은 나성실씨는 그리 좋은 상황에 처해있지 못합니다. 가게를 열기 위해서, 아니면 창업 초기 유지를 위해 많은 자영업자들이 대출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대출 금리가 올라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출 심사도 더욱 까다로워지고 있습니다. 

자금이 필요하지만 신용도가 낮은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은행의 문턱은 너무 높습니다. 그렇다고 방법이 전혜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서민금융진흥원은 낮은 금리에 무담보, 무보증으로 자영업자들에게 대출을 지원하고 있으니까요. 

자영업자 앞에 ‘영세’ 대신 ‘행복한’이란 말을 붙이고 싶습니다. 주머니는 가볍지만, 그래도 행복을 꿈꾸는 자영업자들에게 이런 ‘비상구’가 존재하는 한 말이죠.  

“내 이름은 나성실, 치킨 하난 끝내주게 튀기죠”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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