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을 떠올려 보세요"…상상하지 못하는 '아판타시아' 증후군

시각실인, 눈으로 본 사물 형상화 못 해

기사승인 2018-10-23 22: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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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게 당연한 거였고 남들도 다 이런 줄 알았다. 19년 인생 중 과장 하나 안 섞고 제일 충격적이다. 상상할 수 있는 애들이 부러워. 내가 하던 건 상상이 아니었단 거잖아. 떠올리려고 해도 눈 감았을 때처럼 까맣고 아무것도 안 보인다.

#23년 만에 내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 감고 머릿속으로 사과를 떠올려봐라. 빨간 사과가 떠오르는 애들도 있을 것이고 초록 사과가 떠오르는 애들도 있을 거다. 애플 로고가 떠오르는 애들도 있겠지? 난 아무것도 안 떠오른다. 아무리 상상을 하려고 해도 온통 검은색밖에 안 보인다. 남들도 다 그런 줄 알았는데. 어렸을 때 자기 전에 양을 세라고 하는 게 그냥 비유적인 표현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남들은 다 실제로 양을 머릿속으로 세고 있었던 거다.

과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던 ‘아판타시아(aphantasia)’ 증후군에 대한 글이 최근 SNS에서 재확산되고 있다.

아판타시아는 시각실인(visual agnosia)이라고도 불리며 눈으로 본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상상하지 못하는 증상을 말한다. 즉 시각적으로 사물을 인지할 수 있어 형태와 색에 대해서는 대답할 수 있어도, 이를 머릿속에서 형상화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집 창문을 이미지로 떠올리지는 못하지만, 창문이 몇 개인지는 알 수 있다.

‘아판타시아’ 증상은 1880년 프란시스 갈턴(Francis Galton)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됐다. 그 후 영국 엑서터 의대의 뇌과학자 애덤 제먼이 2005년 해당 증상을 가지고 있는 남성을 만났고, 5년 뒤인 2010년 한 과학저널에 발표하자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이메일을 보내며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전 세계 인구의 2.5%가 이러한 증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수치는 아니다. 이연정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전 세계 인구의 2.5%라면 꽤 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질환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보고된 바 없고, 판정 방법도 환자의 주관에 따른 자가보고이기 때문에 신뢰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아직까지 기전이나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다. 이 교수는 “연구진들은 시각화를 담당하는 뇌 영역이 보통 사람과 다르게 기능하거나 손상됐을 때 증상이 발현된다거나 정신적 문제, 심리적 이유 등이 원인이 된다고 추정하고 있다”며 “아직 국내에서는 해당 질환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 바 없고, 해외에서도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에 보다 과학적인 연구가 더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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