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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민주주의 집어삼킨 전두환

민주주의 집어삼킨 전두환

이소연 기자입력 : 2019.01.03 09:10:00 | 수정 : 2019.01.03 08:38:07

농경의 신, 크로노스. 그는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의 왕이었던 아버지 우라노스를 몰아내고 권좌에 올랐습니다. 쿠데타에 성공한 그에게 예언이 한 가지 내려졌습니다. ‘자녀가 자신을 밀어내고 왕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그는 아이 다섯을 태어나자마자 집어삼켰습니다. 여섯째 아이였던 제우스만 살아남았습니다. 성장한 제우스는 형제들을 구한 후, 크로노스를 자리에서 끌어내렸습니다. 

‘아버지를 몰아낸 아들의 이야기’는 우리 정치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은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애 썼습니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은 3선 집권을 위해 헌법을 개정했습니다. 지난 1972년 유신을 통해 장기집권 체제를 마련했죠. 11대·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씨는 후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상왕정치’로 정권을 연장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두 권력자 모두 크로노스처럼 ‘공포정치’로 자리보전을 꾀하다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전씨의 부인 이순자씨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이씨는 지난 1일 보수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는 우리 남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전씨에 대해 “처음으로 권력을 내려놓는 단임제를 단행한 대통령”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전씨는 7년 단임을 끝으로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이후 이뤄진 13대 대통령 선거가 직선제로 이뤄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전씨가 ‘민주주의의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요. 아버지는 어떤 일을 처음으로 개척하거나 완성한 사람을 이르는 비유적 표현입니다. 전씨는 민주주의를 이룬 인물이 아닙니다. 외려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뿌리 내리지 못하도록 해왔죠. 자식을 삼켰던 크로노스처럼 말입니다. 

전씨 집권 당시 민주화를 외치던 대학생과 노동자, 지식인이 무수히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난 80년 5월, 광주에서는 무고한 시민들이 스러졌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수백명이 사망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축소 기소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수만명에게 노동을 강제한 삼청교육대도 전두환 정권의 산물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학림사건과 부림사건, 아람회 사건 등 독서·친목 모임 회원들은 반국가행위자로 몰려 고문을 받았습니다. 

직선제 또한 전씨의 자의로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고 박종철 열사의 사망을 계기로 여론이 들끓었고 지난 87년 6월 항쟁이 일어났습니다. 고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에는 무려 100만여명이 참석했습니다. 민주화를 바라는 목소리에 전두환 정권은 타협책을 선택했습니다. 그의 ‘후임’이었던 노태우 당시 대선 후보는 직선제를 수용했습니다. 민주주의는 전씨 등 독재정권에서 핍박당했던 수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세워졌습니다. 

이씨의 망언으로 전씨 일가를 향한 비판은 거세지고 있습니다. 전씨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한 번도 사과를 한 일이 없습니다. 최근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으나 법정에 서기를 거부했습니다. 전씨 일가는 수천억원의 추징금을 내놓지 않다가 지난 2013년에야 백기를 들었습니다. 

지난 79년 12·12 쿠데타 이후 벌써 40년이 흘렀습니다. 언론을 통제하고 시민의 비판을 짓밟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씨는 최소한 자신의 망언에 대해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요. 치매로 인해 사리 분별이 힘들다는 전씨를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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