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로 처벌받는 의사·여성 없어야...현실 살펴달라"

허용주수보다 낙태 원인 파악이 중요...전면 건보적용하면 불법 찾는 계기될 수도

기사승인 2019-05-23 0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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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유든 의사나 여성이 낙태로 인해 처벌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22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입법과제’로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법제이사는 “처벌 중심의 낙태 관련 법안은 부작용을 양산할 것”며 이같이 말했다.

당초 의료계는 법과 현실의 괴리가 크다며 낙태죄의 폐지 및 합리적 개정을 요구해왔다. 임신중절 수술을 한 의사에게 낙태죄를 묻는 방식으로는 여성의 건강권과 태아의 생명권보호 모두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의료계 내에서도 의학회와 의사회의 입장은 엇갈린다. 김 이사는 “대한산부인과학회는 낙태에 대하여 반대한다는 입장이고,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의사가 의료행위로 처벌받지 않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의견이 달라 통일된 입장을 내지 못한다”며 “이미 대학병원에서는 10년 넘게 임신중절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임신중절 환자가 있더라도 개원가로 보낸다”고 말했다. 낙태 관련 의료계 당사자는 개원의 모임인 의사회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산부인과의사회가 내놓은 임신중단 허용 범위는 임신 12주까지는 산모의 자유로운 결정에 따르고, 12주~22주부터는 우생학적·윤리적 적응과 강간 및 태아의 심각한 기형 등에 대한 의사의 판단에 따른 수술을 허용하는 방향이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4월 11일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판결을 내리면서, 임신중단 허용 범위를 14~22주로 제시한 바 있다.

특히 임신중절 허용 주수보다 낙태와 관련된 법과 의료현장의 혼란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의사회는 강조했다. 김 이사는 “시기별 허용주수는 큰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임신 8주까지 낙태가 가능하고, 9주부터 못한다고 했을 때 이를 초음파만 가지고 정확히 분별하기 어렵고, 심지어 나라마다 초음파 크기와 분별 기준이 다르다. 또 생리 시작한 시기로 임신주수를 세는 방식도 완전하지 않다”며 “시기별 허용주수보다는 산모가 낙태를 선택하지 않도록 돕는 형태의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낙태죄 폐지 이후에는 임신중절에 대한 건강보험을 어떻게 적용할지도 문제다. 현행 합법 임신중절의 수가가 10만 원 정도인 반면, 비급여 임신중절 비용은 150만 원~400만 원 내외로 알려진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어 비용이 낮아질 경우 낙태율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와 지금처럼 비급여로 풀어둘 경우 안전하지 않은 낙태시술이 무분별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주장이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행 수가가 너무 낮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산부인과의사회는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임신중절에는 건강보험 적용을 반대했다. 그러나 ‘우생학적·윤리적 적응과 강간 및 태아의 심각한 기형, 그리고 임신의 지속이 모체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이사는 “건강보험 적용이 능사는 아니다. 모든 사유에 건강보험을 적용한다고 하면 산부인과에 오지 않고, 불법적인 방법을 찾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제도가 꼭 바람직한 방향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며 대책과 부작용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을 것을 주문했다.

미프진(미페프리스토) 등 사후낙태약의 판매를 허용해달라는 목소리도 높다. 외과적인 시술 없이 조기에 임신 상황을 종료할 수 있는 약물낙태 허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동식 한국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보건기구는 2005년 안전성과 효과성을 인정하여 의료접근이 어려운 지역을 지원하기 위한 필수의약품 목록에 미프진을 포함한 바 있다. 최근 영국 스코틀랜드에 이어 웨일스에서도 임신 9주 이내에 병원이 아닌 집에서 임신중단을 위한 약물을 복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미프진 도입에 대해 의료계는 반대했다. 김 이사는 “미프진은 의사의 진단 하에 아기집이 자궁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에 사용해야 효과가 있다. 만일 산부인과에 가지 않고 미프진만으로 임신중절을 시도했는데 자궁 외 임신이라면 문제가 크다. 자궁 외 임신은 출혈 30분 만에 사망하는 무서운 질환이다. 미프진 때문에 생명을 잃을 경우 누가 책임질 것이냐”며 “수술없이 약물 임신중절을 하려면 최소 1주일은 병원에 입원해 출혈여부를 확인해야만 안전하게 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종교계에서는 임신중절을 선택할 권리뿐만 아니라 임신중절을 선택하지 않을 권리도 살펴야한다고 강조했다. 정재우 신부(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장)은 “낙태하지 않을 자기결정권이 보호되어야 한다”며 “낙태 압력을 받는 여성을 보호할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며, 그런 방법이 여성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또한 자녀 양육의 책임을 기피하는 아기 아버지의 방임에 대한 조치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태아의 생명보호에 기여하는, 그리고 임신한 여성을 보호하려는 목적을 가진 상담이 반드시 규정되어야 한다. 임신을 유지할 때 사회적 지원과 보호를 알려주는 상담이어야 하고, 낙태시술의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여성이 감수하는 낙태 위험성과 합병증은 어떠한지에 대한 정보도 알려주어야 한다. 상담 후 충분한 숙려기간도 설정되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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