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성모병원의 정부향한 은밀한 복수, ‘무산’

과징금 vs 업무정지, 행정처분 형평성 논란도 불러와

기사승인 2019-06-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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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성모병원의 영리한 선택에 의한 은밀한 복수(?)가 무위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로 인해 행정처분의 종류인 과징금과 업무정지 간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돼 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전망이다.

보건복지부 기초생활보장과는 20일 여의도성모병원에 내려진 업무정지 47일 처분을 과징금 15억원으로 변경하는 내용을 담은 서한을 병원에 전달했다. 이에 따라 병원은 건강보험환자와 의료급여환자 모두를 진료하며 과징금으로 총 47억여원을 부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복지부는 2006년 여의도성모병원이 의료급여 대상인 백혈병 환자들의 진료비 중 일부를 임의비급여로 청구한 것을 적발, 총 28억여원을 부당청구했다고 판단하고 환수결정과 함께 행정처분을 내렸다. 총 과징금은 약 141억원에 달했다. 

이에 병원은 즉각 행정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이 됐던 부분은 4가지다. 하나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허가한 범위를 초과 사용한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환자에게 별도로 받을 수 없는 치료재료 등의 비용을 환자에게 비급여로 받았다는 것이다.

셋째는 요양급여 대상이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반복적으로 삭감한 행위를 환자에게 청구한 점이며 마지막 하나는 환자가 주진료과 의사에 대해서만 선택진료를 신청했음에도 병원이 임의로 마취과와 병리과 등 진료지원과 의사들의 선택진료도 신청한 것으로 처리한 사항이다.

병원은 “백혈병과 같은 혈액질환은 난치병이어서 급여기준이나 식약처 허가사항에서 정한 진료만으로 생명을 구하기 어렵고, 의학적 타당성과 불가피성을 갖춘 것이어서 해당 비용을 환자에게 부담시킬 수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아울러 “골수검사 과정의 감염을 예방하고, 자꾸 재사용하다보니 바늘 끝이 무뎌져 환자들의 고통이 배가되는 것을 막기 위해 1회용 바늘을 사용했는데 1개당 5만원이 넘다보니 환자에게 비용을 징수했다”며 당위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의 주장이 통했는지 사법당국은 10년여 간의 송사를 2017년 마치며 병원의 일부승소판결을 내렸다. 당시 법원은 “의학적 타당성이 인정되고, 환자의 동의도 받아 약을 사용하고 그 비용을 받았다면 부당청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더불어 “골수검사 바늘과 같은 치료재료 비용을 별도로 받은 것에 대해서도 병원이 원가만 청구해 별도의 이익을 취하지 않았으며, 환자들이 1회용 바늘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고 복지부에 탄원하기도 하는 등 부당청구로 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선택진료 포괄위임에 대해서도 부당청구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과거 동일한 진료행위가 삭감된 사례가 있었다는 사정이 심사 절차를 회피할 사유에 해당하지 않고, 행정소송을 통해 구제받아야 한다”면서 급여 대상을 비급여로 징수한 것에 대해서만은 부당청구로 봤다.

여의도성모병원의 정부향한 은밀한 복수, ‘무산’

◇ “영리 위한 선택, 탓 할 수만은 없어”… 제도 개선 ‘시급’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복지부는 141억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45억원으로 줄였다. 과징금은 건강보험 급여환자 대상 부당청구에 따른 과징금 30억원과 의료급여환자 대상 과징금 15억원으로 구성됐다.

문제는 복지부가 이를 이행함에 있어 업무정지를 원칙으로 하되, 관례에 따라 과징금과 업무정지 중에서 의료기관이 선택할 수 있도록 안내했고, 병원이 건강보험은 과징금을 의료급여는 업무정지를 선택하며 불거졌다.

병원이 돈 되는 환자는 받고, 돈 안 되는 환자는 받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과 같아 환자를 ‘차별’ 했다는 지적이다. 한 환자단체 관계자는 “솔직히 저소득층인 의료급여 환자들은 돈이 안 된다고 병원이 판단하고 건강보험 환자와 대놓고 차별하겠다는 것으로 밖에 안 보인다”며 “잘못됐다(옳지 않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 같은 반응 때문인지 복지부는 24일로 예정됐던 업무정지처분을 취소하고 과징금으로 행정처분 결과를 바꿔 병원에 알렸다. 이와 관련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법에 따라 원칙적으로는 업무정치 처분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건강보험 환자보다 열악한 환경의 의료급여 환자들이 진료에서 배제되는 것은 문제라는 판단에서 바꾼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병원은 갑작스런 일방적 통보에 유감의 뜻을 표했다. 병원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의료급여환자와 건강보험환자의 진료비는 동일해 경제적 목적을 이유로 의료급여환자를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업무정지를 이행할 경우 약 8만명의 환자를 진료하지 못하고 입원 중인 환자도 모두 내보내야해 많은 금액이지만 과징금을 납부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의료급여환자의 경우에도 업무정지로 진료에 차질이 생길 수는 있지만 중증도가 높은 환자나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에는 병원 자선기금 등을 활용해 진료비를 대체해 의료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결정했던 사항”이라며 “일관성 없는 정부행정의 행위와 돈 때문이라는 지적에 심한 자괴감과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고 토로했다.

덧붙여 “80여년 동안 가톨릭 영성구현의 사명으로 가난하고 갈 곳 없는 의료사각지대 환자와 가족들에게 전인적 치료와 의료봉사에 앞장서왔으며, 영리목적으로 시행하지 않는 다양한 자선의료활동을 병원경영이 적자임에도 불구하고 지속해왔다”며 “앞으로도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를 우선배려하며 흔들림 없이 나아가겠다”는 다짐을 전하기도 했다.

병원의 이 같은 공식입장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사태를 지켜본 의료계 관계자나 환자들은 씁쓸한 현실이라는데 입을 모았다. 의료기관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자 합리적이고 영리한 판단이었으며, 제도적 불균형에서 오는 딜레마라는 설명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민간이 영리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병원의 선택이 잘못됐다며 비난할 수만은 없다. 오히려 지금의 문제를 유발하게 된 원인을 봐야한다”면서 “지금은 바뀌었지만, 주사바늘 재사용을 못하겠다고 일회용을 사용하고 비용을 청구한 것이 부당청구라고 환수하는 규정 등이 문제”라며 잘못된 제도로 유발된 논란이라고 평했다.

반면, 또 다른 관계자는 환자를 가려받으려는 병원의 양심문제가 아니라 과징금과 업무정지의 불균형에서 오는 합리적 선택이었다는 풀이를 내놨다. 그는 “의료급여환자를 47일 동안 진료하고 얼마나 벌겠느냐. 15억원의 과징금과 비교해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고 물으면 어느 누구든 업무정지를 택할 것”이라며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한편, 여의도성모병원은 이번 사건으로 행정처분의 집행까지 조금의 시간을 더 벌게 됐다. 앞서 오는 24일로 예정됐던 업무정지가 취소되고 과징금 청구안내가 나간만큼 1달의 의견 제출시간을 확보한 것. 하지만 과징금 처분을 회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 만큼 경영악화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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