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감성’ 좋다?…반일 열풍에도 꿈쩍않는 ‘개화기 컨셉’

기사승인 2019-07-23 05: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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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의상이요? 그 시대 아픔은 이해하지만 모든 걸 다 부정할 필요까지 있을까요?”

일본의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 보복으로 시작된 한일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일본과 관련된 상품, 기업이 몸을 사리고 ‘일본 관광 보이콧’까지 나왔다. 이런 가운데 1900년대 의상, ‘경성’으로 대표되는 일명 ‘개화기 풍’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문제의식 없이 소비되고 있다.

최근 1년 사이 경북 경주, 서울 종로구, 전주 한옥마을, 인천 차이나타운 등 관광지에서 서양의 복고풍 의상을 입고 사진 찍는 이들이 늘어났다. 여성은 벨벳 드레스, 망사 달린 모자, 코르사주, 양산, 남성은 베스트까지 갖춰 입은 스리피스(three-piece) 정장과 중절모가 특징이다. 

▲ 뉴트로 열풍으로 시작된 ‘개화기 의상’…중고등학생들 졸업사진까지

100년도 더 된 의상이 갑자기 인기를 끌게 된 것은 뉴트로 열풍과 연관있다. ‘뉴트로(newtro)’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다. 과거의 유행을 완전히 새로운 트렌드로 인식하고 즐기는 경향을 말한다. 영화 ‘암살’(2015), ‘아가씨’(2016) 그리고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2018)의 흥행도 영향을 끼쳤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서는 ‘#개화기’ ‘#개화기의상’ ‘#개화기컨셉’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이 1만3000건에서 2만4000여 건에 달한다. 결혼 기념 사진을 개화기 컨셉으로 찍은 이들이 있을 정도다.  

특히 오래된 한옥의 모습이 보존된 종로구 익선동은 ‘뉴트로의 성지’로 떠올랐다. 익선동 인근에만 개화기 의상 대여실 8곳이 있다. 대부분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방영 전후 문을 연 1년도 안 된 신생 업체다. 의상은 물론이고 모자, 핸드백, 양산, 장갑 등 소품까지 최소 3시간에서 종일 대여할 수 있다. 의상을 3시간 빌리는 데 드는 비용은 3만원 선이다. 드라마나 영화 세트장처럼 내부에 아예 자체적으로 스튜디오를 마련한 곳도 있다. 

지난 19일 만난 익선동 일대 개화기 의상대여실 관계자들은 “반일감정 여파는 체감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A 업체 관계자 장모(25·여)씨는 “반일감정보다는 날씨가 더워서 손님이 줄어들었다”면서 “소매가 긴 의상이 많다. 성수기에는 하루에 100여명까지 손님들이 찾았지만, 요즘에는 1/4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손님들 연령대는 10대부터 중장년까지 다양하다”면서 “최근에는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개화기 의상을 대여해서 졸업사진 찍는 게 유행”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A업체 내부 스튜디오에는 의상을 대여한 시민 4명이 포즈를 취하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B 업체 관계자는 “전날에만 5~7팀이 왔다”면서 “방금도 예약 전화를 받았다. 손님들의 숫자가 준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중화권 관광객들이 여행사에서 단체로 오는 경우도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민감한 시기라며 말을 아낀 업체들도 있었다. 

▲ 개화기보다는 일제강점기 복식…“시대상 일부일 뿐” “친구끼리 추억” 의견도

문제는 의상실에서 대여하는 의상들이 일제강점기 복식에 가깝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1910년 경술국치를 기준으로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구분한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부터 1910년 이전까지를 개화기, 1910년부터 1945년까지를 일제강점기로 부른다. 그런데 개화기 의상대여실이 표방하는 복식은 1920~30년대 ‘모던걸’ ‘모던보이’에 가깝다. 모던보이는 1920년대 식민지 경성의 도시공간에 나타난 새로운 스타일의 남성 소비 주체를 뜻한다. 국사편찬위원회가 펴낸 한국문화사에 따르면 셔츠, 넥타이, 넥타이핀, 커프스, 모자, 지팡이 등을 갖춘 양복이 크게 유행한 것은 1920년대 들어서였다. 여성 양장도 마찬가지다. 논문 <개화기이후 여성복식의 100년 변천사에 관한 연구>(1994)에 따르면 1920년대부터 여성들의 양장 차림이 활발해졌다. 1930년대에는 서양식 머리 모양과 숄, 양산, 핸드백과 오버 블라우스에 벨트를 해서 허리선을 강조한 스타일의 양장이 유행했다. 

의상 대여 업체들은 식민지 시대 복식과 가깝다는 지적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일제강점기 미화가 아니라 시대상의 일부일 뿐이다” “재미로 즐기는 문화 정도로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대답이 나왔다. 종로에서 만난 대학생 이모(23·여)씨는 “주변의 친구들이 개화기 의상을 입고 SNS에 올리면서 유행에 대해 알게 됐다”면서 “역사적 관점으로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다. 하지만 친구들끼리 추억을 만들기 위한 것뿐이다. 심각하게 따지지 않았으면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일제강점기 ‘감성’ 좋다?…반일 열풍에도 꿈쩍않는 ‘개화기 컨셉’▲ 일제가 고친 이름 ‘경성’, 간판에 버젓이…“복고 감성때문에 썼다”

뉴트로 열풍을 타고 번진 것은 개화기 의상뿐 아니다. 일제가 대한제국 흔적을 지우기 위해 지은 명칭인 경성(京城)을 넣은 상호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일제는 1910년 9월30일 ‘조선총독부지방관관제’ 발표를 통해 한성부(漢城府)에서 경성부(京城府)로 이름을 고쳤다. 한성이 갖고 있는 수도로서의 이미지와 권위를 없애기 위해서다. 중앙부서였던 한성부는 경기도청이 관할하는 지방행정단위 중 하나로 격하됐다. 

종로구 일대에서는 경성으로 시작하는 의상실, 식당, 카페 등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경성의 역사적 의미보다 단순히 예전 이름이라는 데 중점을 둔 모습이다. 상호에 경성이 들어간 한 의상실 관계자는 “경성이라는 이름이 주는 복고 감성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제과점 관계자는 “익선동 한옥마을이 경성 시대에 만들어져서 그 이름을 쓰고 있다”고 했고 한 소품 판매자는 “일대에 있는 가게들이 경성을 넣어 상호를 짓는 경향이 있어서 여기에 따랐다”고 설명했다.

장규식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는 “최근 유행하는 모던보이, 모던걸 복장을 개화기 복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시기상 맞지 않다”면서 “1920~30년대에도 양장이 보편적인 것은 아니었다. 양장을 할 수 있는 이들은 대도시 중심으로 자본주의 소비문화를 향유할 경제기반이 마련된 극히 일부 계층에 불과했다”고 분석했다.

경성은 한국의 식민지 근대를 대표하는 용어라는 지적도 나왔다. 장 교수는 “서울이 식민지 도시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일본이 조선총독부를 한성에 설치하면서 경성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보면 경성이라는 용어 자체가 식민지 낙인이다. 상점 이름 등에 차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현상은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놨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일본이 조선을 집어삼킨 후 과거 흔적을 지우기 위해 경성으로 이름을 바꿨다”면서 “경성을 간판에 썼다고 해서 ‘친일’이라고 낙인 찍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점은 아쉽다”고 전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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