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꾀병 취급받던 '통증 장애'도 '장애' 인정...이례적 판결

'CRPS 환자, 장애 아니다' 원심 뒤집고 '장애' 인정...장애등급판정기준 개정 근거될까

기사승인 2019-08-28 0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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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꾀병 취급받던 '통증 장애'도 '장애' 인정...이례적 판결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으로 인한 기능손실을 '장애'로 판단한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그동안 꾀병 취급받던 통증 장애를 정식 인정한 사례다. 향후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등 통증 환자들의 장애 판정에도 변화가 나타날 전망이다. 

27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제1-1행정부(재판장 고의영)는 업무중 왼쪽 손가락 골절상으로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과 손가락 기능 손상을 입은 태백시 환경미화원 김모씨가 시를 대상으로 제기한 2심 항소심에서 "원고는 지체장애 등급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CRPS를 지체기능장애 범주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평등원칙에 반한다"는 원고 측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김모씨는 지난 2012년 업무중 왼쪽 손가락 골절상을 입어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진단을 받았다. 이후 그는 극심한 통증 등으로 손가락 기능 손실을 호소하고, 피고와 국민연금공단에 장애등급신청을 요청했다. 그러나 심사결과 통증에 의한 장애는 장애등급기준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를 바탕으로 1심 재판부는 "원고를 지체장애 등급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처분했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는 외상 등이 원인이 되어 미세한 자극에도 특정 부위에 극심한 고통을 야기하는 신경병성 만성통증을 유발하는 희귀질환이다. 

그간 CRPS 환자의 '통증'으로 인한 기능장애는 장애등급판정에서 제외됐었다. 장애인복지법의 장애등급판정 기준에서  '마비에 의한 팔, 다리의 기능장애는 주로 척수 또는 말초신경계의 손상이나 근육병증 등으로 운동기능장애가 있는 경우로서, 감각손실 또는 통증에 의한 장애는 포함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환자들은  관절 구축, 신경손상에 의한 마미로 기능 장애가 있더라도 '통증'이 동반될 경우 장애 인정에서 배재되는 등 불이익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 2심 재판부는 다르게 봤다. 장애 원인이 아닌 '기능 장애 수준'에 주목,  통증으로 인한 기능손실을 장애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원고는 '한 팔의 기능에 상당한 장애가 있는 사람에 해당한다"며 "국가배상법,산업재해보상법, 국가유공자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CRPS 환자의 실질적 상태를 반영하여 중증 장해로 인정될 수 있는 것과 달리, 장애인 복지법에서 단순히 통증을 이유로 CRPS를 지체기능장애 범주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평등원칙에 반한다"고 밝혔다.

또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의 장애진단 신체감정도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지체장애의 장애진단 기관 및 전문의로 X-선 촬영시설 등 검사장비가 있는 의료기관의 재활의학과·정형외과·신경외과 또는 내과(류마티스분과)'로 규정한 현행 장애등급판정 기준을 달리 해석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를 열거적 규정이라고 단정하기 보다는 검사의 정확성이 담보된 전문의의 장애진단은 장애등급판정의 근거자료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며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의 신체감정 결과를 근거로 채택했다.

법무법인 서로의 서상수 변호사는 "통증으로 인한 기능장애를 장애로 인정해달라는 통증 환자들의 오랜 요구를 전면으로 인정한 판결이다. 통증장애 환자들이 장애인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라고 평했다.  

이번 판결을 두고 통증 관련 환자단체에서는 고무적인 반응을 보였다. 통증 환자가 배재됐던 장애판정기준의 변화를 이끌 근거가 마련됐다는 기대다. 이용우 CRPS환우회장은 "그간 통증때문에 발생한 기능장애 환자들은 대부분 장애 인정을 받지 못하고, 꾀병취급을 받는 등 일상생활의 고통이 컸다. 잘못된 관행에 제동을 걸어주신 법원에 감사하다"며 "이번 판결을 바탕으로 통증 환자들에게 무리하게 제한을 뒀던 보건복지부의 장애등급판정기준 등에도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한통증학회도 환영의 뜻을 밝혔다. 통증 환자와 의료진에게 희망적인 소식이라는 평가다. 학회는 통증 환자의 장애 인정 및 통증환자의 장애평가 가이드라인 개정 등을 추진해왔다.

전영훈 대한통증학회장(경북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은 "CRPS는 심한 통증으로 기능을 떨어뜨리고 일상생활을 위협하는 무서운 희귀질환이다. 그런데 통증 질환 전문성이 있는 마취통증학과 의료진이 신체감정, 기능평가에서 제외돼 통증환자들이 정확한 평가를 받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이번 판결이 통증질환에 대한 보다 정확한 진단 및 치료 환경 조성의 초석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직 우리사회에서는 통증을 부차적 문제로 치부하는 인식이 강하다. 통증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개념을 바꿀 수 있도록 학회도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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