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마리 앙투아네트’가 묻는 정의란 무엇인가

기사승인 2019-09-17 22: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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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리뷰] ‘마리 앙투아네트’가 묻는 정의란 무엇인가

18세기 프랑스 파리에서 무도회가 펼쳐진다. 귀족들은 쌓아 올린 음식과 샴페인을 즐기며 춤을 추고 대화를 나눈다. 그 중심엔 천진하게 웃는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있다. 모든 것이 빛나는 그곳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진다. 굶주린 거리의 빈민 마그리드 아르노가 빵을 훔치려다가 붙잡혔기 때문이다. “먹을 빵이 없다”고 소리치는 마그리드에게 귀족들은 “케이크를 먹으라”며 조롱한다. 지켜보던 마리는 마그리드에게 샴페인을 권하고, 마그리드는 마리가 건넨 샴페인을 그에게 뿌리고 떠난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의 1막 첫 장면이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엘리자벳’ ‘레베카’ ‘모차르트’ 등으로 알려진 극작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가 탄생 시킨 일본 창작뮤지컬이다.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소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원작으로 2006년 일본 뮤지컬 기획사 토호가 제작했다. 한국에선 EMK뮤지컬컴퍼니가 한국 정서에 맞게 수정해 2014년 처음 선보였다.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와 혁명에 앞장선 허구의 인물 마그리드 아르노의 삶을 대조적으로 조명한다. 대대적인 각색을 거친 한국판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과 사랑에 비중을 뒀다.

5년 만에 한국 관객을 찾은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화려한 무대다. 당대 유럽의 가장 세련되고 호사스러운 궁전이었던 베르사유 궁전과 빈민가였던 파리 마레지구를 무대 위로 불러왔다. 360도로 회전하는 무대 장치를 통해 당시 파리의 명과 암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더불어 18세기 로코코 시대 유행을 선도했던 파리 스타일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무대를 완성했다. 

볼거리뿐 아니라, 극적인 재미도 있다. ‘목걸이 사건’ ‘바렌 도주 사건’ ‘단두대 처형’ 등 대중에게 친숙한 역사적 사건이 극으로 재구성돼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관객은 천진하던 마리가 일련의 사건에 휘말리며 웃음을 잃고 단두대로 향하는 과정을 목도한다.

배우들의 열연은 몰입감을 더한다. 초연에 이어 극에 합류한 배우 김소현은 섬세하면서도 풍부한 표현력으로 추락하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그려냈다. 그와 대척점에 선 마그리드 아르노 역의 장은아는 호소력 있는 가창력이 돋보인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애인이자 조력자인 악셀 폰 페르젠 백작을 연기한 박강현은 무대 위 안정감이 장점이다. 루이 16세 역을 맡은 배우 이한밀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이밖에도 마리 앙투아네트 역에 김소향, 마그리드 아르노 역에 김연지, 악셀 폰 페르젠 백작 역에 손준호, 정택운, 황민현, 오를레앙 공작 역에 민영기, 김준현 등이 캐스팅 됐다. 

다만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이해받을 수 있는 것은 마리 앙투아네트와 그의 가족들 뿐이란 점은 아쉽다. 주요 배경이자 사건인 프랑스 혁명에 앞장서는 인물들의 욕망은 철저히 개인적인 것으로 묘사돼 설득력을 잃는다. 마리와 마그리드가 마주치는 첫 장면만큼 두 인물의 서사가 팽팽하게 그려졌다면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는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훨씬 다양해 질 수도 있겠다.

오는 11월 17일까지 서울 경인로 디큐브아트센터에서 상연된다.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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