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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1년_…오름의 여왕 다랑쉬오름

58년 개띠 퇴직자의 제주도 1년 살기_열두 번째

기자입력 : 2019.10.05 00:00:00 | 수정 : 2019.10.05 08:09:27

아끈다랑쉬오름에서 본 다랑쉬오름은 그저 잘생긴 오름이다. 그러나 그 오름에 발을 딛고 서서 살피면 지표 기준 높이 227 미터에 그 절반에 해당하는 115 미터 깊이의 분화구를 가지고 제주의 어느 오름보다 풍부한 꽃과 풀과 나무를 품고 있는 다랑쉬오름을 왜 오름의 여왕이라 부르는지 알게 된다.

제주에 와서는 무엇에든 조급하지 않고 싫은 일은 억지로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러니 햇볕이 너무 강한 날이나 빗방울이 듣는 날에는 외출하지 않고 집에서 논다. 가끔 한라산 능선을 바라보고 반대편의 바다를 바라보며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한다.

오후에 비가 온다는 소식이 들려오니 외출하지 않고 집에서 놀 생각이었다. 늦은 아침을 먹으며 내다보니 멀리 한라산 쪽 하늘이 훤해진다. 북쪽 바다 위 하늘도 나쁘지 않다. 일전에 가 보았던 휴양림이나 동백동산을 걸을까 생각하다가 요즈음의 일기예보가 참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며 미술관을 가보기로 했다.

다랑쉬오름 둘레길은 3.6 킬로미터 정도인데 오름을 오르는 길만큼이나 매력적이다. 오른쪽으로는 삼나무, 편백나무, 활엽수 숲이 차례로 나타나고 왼쪽으로는 마치 울타리 밖의 풍경이 나타나듯 오름과 숲과 멀리 있는 한라산이 보인다. 걸으며 오른쪽의 오름 숲을 살펴보니 숲 가장자리에 일정한 간격으로 비자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부지런히 외출준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성산까지는 천천히 가도 40분 정도면 충분하다. 일주도로로 접어들었는데 빗방울이 듣는다. 구름이 한라산 능선 위로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동쪽으로 십분도 채 가지 못해 비가 쏟아진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비상등을 켜고 느리게, 느리게 가면서 차 세울 곳을 찾아보아도 마땅한 곳이 보이지 않는다. 

다랑쉬오름 둘레길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면 동쪽 바다위의 우도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우도가 가장 가까이 보이는 곳이다.


미술관 입구에 겨우 도착했는데 교통경찰이 폭우 속에서 입구를 통제한다. 제주도에 여행 온 사람들이 비 때문에 야외 일정 취소하고 많이 와서 주차장에 빈자리가 없다고 한다.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장이 있으니 거기에 주차를 해야 한단다. 우산도 소용없는 이 비 속에서 미술관까지 걸어갈 수는 없다. 

미술관 관람을 포기하고 해안가로 가서 바다를 보았다. 삼색의 물이 눈부셨던 세화해변이 온통 시커멓다. 그래도 물 한 번 들어왔다가 나가면 다시 화려한 물빛을 보여주겠지.      

다랑쉬오름을 한자로는 月郞峰 (월랑봉)으로 표기한다. 다랑쉬는 고려시대에 사용되던 ‘달수리 (높은 봉우리)’가 변한 것이라 해석하는 언어학자도 있으니 굳이 한자로 표기할 필요가 있을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1990년 12월 1일자로 인제대학교백병원의 교직원이 되었다. 1977년 12월 철도청 공무원 발령받은 후 빤히 보이는 앞날이 싫다는 이유로 뛰쳐나왔지만 13년 만에 다시 비슷한 세계로 돌아왔다. 이때는 아이도 둘 있었으니 내가 원하는 삶만을 좆을 수 없었다. 내가 꾸린 가정과 부모를 위해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때였다.

다랑쉬오름의 입구에 들어서서 삼나무 조림지대를 통과할 때까지는 한 낮에도 어둡고 음산한 기운이 돈다. 숲속을 들여다보면 떨어져 쌓인 삼나무 낙엽 외에는 이렇다 할 풀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삼나무조림지대를 통과하면 그제야 온갖 나무들이 경쟁하며 짙은 숲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숲의 다양성을 고려해보면 삼나무 또는 편백나무 조림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고 백낙조 이사장이 말한 ‘미스타 맥파슨’은 성균관대학교 영문과에서 영어회화를 담당하고 있던 두 명의 외국인 교수 중 한 명이었다. 1970년대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왔다는 맥퍼슨 교수는 학교 캠퍼스 내에서는 학생들과 대화할 때 영문과 학생이든 또는 어느 다른 학과 학생이든 단 한 한마디도 우리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다랑쉬오름 능선에 올라서기 전 숨 돌리며 돌아서면 발아래 아끈다랑쉬오름이 있고 멀리 동쪽 바다위에 성산 일출봉과 우도가 한 눈에 보인다.


첫 학기 수업을 시작하고 한 달 쯤 지났을 때 그는 한국말을 할 줄 안다고 말하며 영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말한 적이 있었다. 그는 ‘언어제국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언어가 세계를 지배하는 동력이니 ‘미 제국주의자 물러가라’는 외침은 미국을 공부하지 않으면 헛된 구호가 될 뿐이라며 미국이 미우면 미국을 공부하라고 했다.

다랑쉬오름의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본 분화구는 한없이 부드러웠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이곳은 온갖 식물과 새들이 편안히 깃드는 보금자리다.


그해 여름방학 때 함께 영어토론공부를 하던 4명이 그가 살고 있는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가회동에 있는 큰 규모의 한옥 뒤편에 있는 별채가 그의 집이었다. 그의 집 내부는 작은 소품까지 전통 양식으로 잘 꾸며져 있었다. 벽에는 탱화와 민화 족자가 걸려 있었고 오래된 토기가 전통 가구 위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한국의 탱화, 민화, 토기 등 다양한 종류의 고미술품들이 헐값에 거래되고 있었단다. 집에 걸려 있는 그림과 물품들을 어디서 얼마에 구입했는지 하나하나 소개하며 그는 한국의 옛 물건들이 함부로 다루어지고 버려지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지금도 다랑쉬오름 능선을 걷는 많은 사람들이 저 거대한 흔적을 궁금하게 여긴다. 1994년 온천지구 지정 이후 다랑쉬오름과 멀리 보이는 높은오름 사이의 평평한 땅 236만여 제곱미터 (70여만평)를 온천관광도시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2002년 기공식 이후 약 2년 동안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으나 2004년 7월 중단된 후 최종적으로 2012년 이 지역에 대한 온천원보호지구 지정이 취소됨으로써 원점으로 돌아왔다. 탐욕의 증거만 생채기로 남아 있다.


그날 수박을 한 통 가지고 갔었다. 거기서 서너 시간 머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는 준비했던 여러 가지 다과를 내 놓았지만 수박은 마루 한쪽에 그대로 있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라고 말을 하고 일어서는데 그가 수박을 들고 나왔다. 선물은 고맙지만 수박을 좋아하지 않으니 가지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그의 생각과 행동 방식이 우리와 다름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랑쉬오름 분화구의 남쪽 경사면은 제주도 최대규모의 소사나무 군락지다. 분화구를 올라와 능선을 넘어가면서 소사나무터널을 만들었다.


나는 재학 중 그의 영어회화수업을 들었다. 첫 학년에 주 3일 다음 학년부터는 주 5일이었던 수업은 단 한 시간도 결강이 없었고 나 또한 결석한 적 없었다. 마음이 맞는 다른 3명의 동료들과 영어만을 사용하는 자유토론 형식의 영어회화 공부 시간도 4년간 거의 매일 가졌다. 이 시간 역시 빠진 적이 거의 없다. 방학 때면 맥퍼슨 교수는 고향에 가면서 교수 연구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그룹별로 사용시간표를 짜 주고 공부하며 마실 수 있도록 커피까지 충분히 마련해 두곤 했다.

그가 살고 있었던 집이 백병원 설립자 백인제 (白麟濟) 박사의 집이었고 당시에는 백 박사의 부인과 백낙조 이사장이 살고 있었다. 내가 백병원 취업 면접 중일 때 맥퍼슨 교수와 백 이사장 사이에 나에 관한 대화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랑쉬오름에 억새가 피기 시작했다. 9월22일 제주를 통과한 태풍으로 인해 많이 상하기는 했지만 10월엔 아름다운 모습으로 손님을 반길 것이다.


제주의 오름 중엔 처음 접할 때는 그 뜻을 알 수 없는 이름을 가진 곳이 꽤 많다. 제주에 와서 가 본 오름 중엔 말찻오름, 큰지그리오름, 다랑쉬오름, 아끈다랑쉬오름 등이 그 예이다. 말찻오름은 말과 잣성이 합쳐져 변한 이름이지만 큰지그리오름의 경우 ‘지그리’의 어원은 전혀 알려지고 있지 않다. 

잔대는 전 세계에 50여종이 분포한다. 어린 싹은 나물로 사용하고 뿌리는 이른 봄 또는 가을에 채취해 식용으로 썼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해독제 또는 거담제로 여긴다. 다랑쉬오름에서 처음 본 당잔대는 그간 보아온 잔대보다 꽃이 훨씬 크고 암술이 꽃 밖으로 돌출되지 않는 특징을 가졌다.


다랑쉬에 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이 오름의 분화구가 달처럼 둥글게 보여 달랑쉬 또는 도랑쉬로 불리다가 변해 다랑쉬가 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또, 부여와 고구려어에서 ‘높은 봉우리’로  해석되는 달수리라는 말이 변해서 다랑쉬가 되었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아끈다랑쉬의 경우 아끈은 ‘버금’ 또는 ‘둘째’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흔히들 다랑쉬오름은 오름의 여왕이라 한다. 제주도에 있는 360여 오름 중에서 다랑쉬오름은 단연 가장 완벽한 형태의 오름이다. 해발 기준으로 382 미터 높이의 다랑쉬오름은 분화구가  한라산 백록담과 거의 같은 크기이며 전체적인 오름의 모양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이 잡혀 있다.

줄기가 연한 나비나물은 여름까지도 뜯어서 나물이나 국에 넣었던 식용식물이다. 일반적으로는 7월과 8월에 꽃이 피지만 다랑쉬오름에서 본 나비나물은 9월 말에도 꽃이 한창이었다.


다랑쉬오름을 연결하는 좁은 도로를 확장하느라 파헤쳐진 길을 따라 가까이 갈수록 어느 한 곳 흠 없이 반듯한 다랑쉬오름이 당당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래쪽엔 인공조림된 삼나무 숲의 초록이 짙었다.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다랑쉬오름엔 각종 편의 시설이 다른 오름보다는 잘 갖추어져 있다. 주차장은 아직 넉넉하고 화장실과, 안내소, 쉼터도 운영되고 있었다. 진입로 확장도 진행되고 있었다.

다랑쉬오름은 실제 높이가 227미터 정도이지만 경사가 심해서  쉽게 오를 수 있는 오름은 아니다. 인조목 계단과 야자매트 등을 설치해 오르는 길을 지 (之) 자 형태로 정비하면서 오르기가 한층 더 수월해졌다. 개인차가 있지만 20분~40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뚝갈 역시 여름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주도에선 9월 말까지도 꽃이 핀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약재로 사용한다.


8월에 이곳에 처음 왔었다. 숲 그늘을 지나 뙤약볕을 이고 오르다 갑자기 현기증을 느꼈다. 어쩌면 열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늘로 찾아들었다. 모자와 배낭, 신발과 양말까지 벗고 집에서 가져온 찬물을 마시고 수건에 적셔 몸을 닦았다. 과욕이 화를 불렀다. 꽤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분화구 언덕까지 올라 한 바퀴 돌아올 수 있었다.

한 달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서둘러 걷지 않고 천천히 가자고 생각하는데 3.4 킬로미터의 다랑쉬오름 둘레길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이 둘레길은 숲을 관리하는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이어서 비록 언덕을 두 곳에서 만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걷기는 매우 편했다. 다랑쉬오름에 식재된 나무는 삼나무 말고도 편백나무와 비자나무가 더 있었다. 나무와 풀과 꽃을 살피며 오름 입구에 돌아오기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연한 자주색의 이 꽃은 골짜기에서 자라는 등골나물이라는 뜻의 골등골나물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등골나물꽃은 흰색으로 핀다.


잠시 쉬었다가 컴컴한 삼나무 조림지 계단으로 들어섰다. 줄맞추어 빽빽하게 자라는 삼나무들이 아우성치며 자라 오르고 있었다. 천천히 플라스틱 계단을 오르며 깊은 그늘 속을 살폈지만 풀조차 거의 보이지 않았다. 삼나무 조림지를 벗어나서야 편안히 가지를 뻗으며 햇빛을 즐기는 소나무들과 꽃과 풀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르기에만 집중해 빨리 걸으면 오름을 충분히 즐길 수 없으니 걸음이 더욱 느려진다. 뒤따라오던 이들에게 길을 양보하며 꽃을 바라보고 뒤돌아서서 아끈다랑쉬오름과 초록의 들판을 보고 멀리 성산일출봉을 보았다. 앞서간 사람들이 벌써 오름 능선을 돌아서 내려갈 즈음에 오름 능선에 올랐다. 

딱지꽃은 이른 봄에 피는 양지꽃과 꽃모양이 매우 비슷하다. 일반적으로는 6월과 7월에 꽃이 피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다랑쉬오름의 딱지꽃은 9월까지도 성성하게 피고 있었다.


다랑쉬오름의 분화구는 크고 아름답다. 지표를 기준으로 오름의 높이가 227미터이고 분화구의 깊이가 115m이니 오름의 절반 이상이 패인 셈이다. 분화구 둘레도 1.5킬로미터나 된다. 227미터 높이의 오름이 한라산 백록담과 같은 크기의 분화구를 품고 그 안팎으로 수많은 종류의 나무와 풀을 길러내고 있었다. 다랑쉬오름 분화구 능선을 걸으며 살펴보니 다른 어느 오름보다 많은 종류의 꽃과 풀과 나무가 보였다. 그간 올랐던 여러 오름에서 보았던 것들보다 더 많은 종류를 다랑쉬오름은 품고 있었다. 오름의 여왕이다.

다랑쉬오름에서 이 매력적인 빨간 열매를 보는 순간 서귀포자연휴양림에서 보았던 덜꿩나무열매라 생각했는데 가막살나무 열매라고 설명이 되어 있었다.


다랑쉬오름 능선을 돌다보면 남쪽에서 백약이오름과 높은오름을 향해 마치 페루 나스카 지역의 거대한 지상화처럼 보이는 기하학적 무늬가 보인다. 아픈 생채기다. 1994년 세화·송당 온천지구 지정 고시 이후 개발의 광풍이 불었다.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 동안 1조원 이상을 투자해 세화·송당리 일대의 236만여 제곱미터의 땅 위에 관광호텔, 상가, 온천장, 식물원, 워터파크 등을 조성하겠다는 개발계획이 수립되었다. 2001년 10월 개발사업시행이 승인되고 2002년 4월 기공 후에 2년 동안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2004년 7월 공사는 중단되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2011년 사업승인 취소에 이어 2012년엔 이 지역의 온천원보호지구 지정마저 해제되었다. 사람들이 품었던 꿈은 물거품이 되었고 그 땅엔 거대한 상처만 남았다. 저 땅 위에서 사람들이 다시 정직하게 땀 흘리며 일하는 날이 올 것인가.

기고 오근식 1958 년에 출생했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강원도 인제에서 3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

편집=이미애 trueald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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