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저항-위협은 일상에 스며있다

[김양균의 현장보고] 도전받는 ‘원 차이나’… 브로큰시티⑤

기사승인 2019-12-23 17: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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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마스크에 모자를 쓴 중년 여성이 눈물을 흘렸다. 지난 22일 홍콩섬 센트럴 인근 광장에서 열린 ‘위구르 인권과 연대’ 집회 현장. 여성은 앞에 선 경찰과 언쟁을 벌이다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얼굴을 붉히던 경찰, 청년인 그도 울음을 참지 못했다. 

홍콩 경찰의 폭력적 진압을 두고 현지 언론은 ‘폭도 경찰’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폭력의 화신인 것처럼 미디어에 비치는 경찰도, 그러나 사람이다. 문제가 있다면 조직과 시스템의 구조일 터. 폭력을 정당화하는 조직의 논리는 경찰 개개인, 그리고 이들에게 상해를 입은 시민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  

◇ 일상적 투쟁, 그리고 위협

홍콩 도심의 정체는 여전했다. 도시는 분주했다. 여행 가방을 든 관광객의 호기심어린 눈빛이나 고기와 야채를 능숙하게 볶는 식당 요리사의 모습은 영락없는 홍콩의 모습 그대로였다. 밤이 되면 눈을 어지럽히는 현란한 네온사인, 연말을 맞아 불을 밝힌 대형 크리스마스트리는 이곳을 찾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때 경찰-시민 간 극한 대치가 이어지던 도심은 이제 평온을 되찾은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사건’은 쉬지 않고 발생했다. 지난 22일 홍콩섬의 센트럴 인근 에린버러 광장에서 열린 ‘위구르 인권과 연대’ 집회. 1000여명 가까이 운집한 이곳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사건은 오후 5시께(현지시간) 일어났다. 외부에 게양된 중국 오성기가 집회 참여자에 바닥에 쳐 박혔던 것이다. 

즉각 경찰의 진압이 시작됐다. 연행 과정에서 경찰은 곤봉으로 한 청년의 머리를 수차례 가격했다. 급기야 권총을 뽑아 겨누기도 했다. 이 모습은 현장의 취재진 카메라에 고스란히 생중계됐다. 이날 이곳에 모인 시민들은 경찰이 뿌린 고추 스프레이 때문에 비명을 질렀지만, 응급처치를 할 의료 인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인근을 지나던 한 외국인은 경찰이 발포한 고무탄에 다리를 맞았다. 시민들은 물병을 던지는 것으로 분노를 나타냈다. 

이전 집회와 다른 점이 있다면 투입된 경찰들이 오성기 마크를 달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조끼에는 ‘충성’이란 문구도 함께 붙어 있었다. 여기에는 홍콩 경찰의 ‘액션’이 베이징의 의중을 반영하고 있거나 베이징에 충성하겠다는 홍콩 정부의 속내가 투영돼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튿날 오전.

광장은 전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대여섯 명의 외국인 관광객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유모차를 끌고 산책 중인 여성과 조깅 중인 남자, 지척의 놀이공원 직원은 손님 받을 준비로 분주했다. 

이날도 ‘사건’은 계속됐다. 완차이에 위치한 홍콩 세무국에서, 그리고 센트럴의 IFC몰에서 ‘점심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반짝거리는 대리석 바닥에는 누군가 ‘홍콩에 자유를(Free Hong Kong)’이란 피켓을 놓아두었다. 로비에 피켓을 든 평화시위에 쇼핑몰 난간마다 손님과 점원들이 서 있었다. 동참의 뜻을 보인 것이다. 이들 주위로 무장 경찰이 삼엄한 경계를 섰다. 

이렇듯 매일 투쟁은 계속됐고 이에 대한 봉쇄(혹은 위협)도 일상에 스며들어 있었다. 

◇ “모든 삶은 문제를 안고 있다”

한 홍콩인은 22일 집회에서 ‘모든 삶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팻말을 들었다. 홍콩인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과 물가 등 오늘날 홍콩인의 삶이 팍팍해진 원인을 실패한 일국양제(One country two systems)와 중국의 더해가는 통제에서 찾는다. 현 투쟁은 이들에게 문제적 삶의 근원적 해결을 의미한다.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앞으로 전개될 양상은 두 가지 뿐이다. 계속되거나 외부에 의해 중단되거나.

그런데 혹자는 “홍콩이 안전하다”고 말한다. 먹고살기 어렵다고도 한다. 이들이 겪고 있는 생계의 고충은 안타깝지만 ‘홍콩은 안전하다’는 말은 ‘홍콩은 아직 투쟁 중이다’로 수정되어야 한다. 현재 이곳에 지하철과 도심에서 무장한 경찰의 모습을 보기란 어렵지 않다. 시민을 향한 강경 진압도 계속되고 있다. 기습적으로 열리고 있는 각종 집회는 시위 초반과 비교해 과격함은 줄었지만, 시민 행동은 현재진행형이고, 위협도 잘 보이지 않지만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따라서 ‘홍콩은 안전하다’는 주장은 다소 무책임하다. 

홍콩인이 투쟁하는 이유는 홍콩인에 의한 홍콩의 자치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때문에 홍콩인은 투쟁을 계속할 것이고, 홍콩 정부는 공권력과 사법제도를 통해 이들을 더욱 강하게 압박할 것이다. 현재의 홍콩은 과거의 홍콩과 완전히 다르다. 이를 두고 현지 언론은 이렇게 표현했다. 

“올해의 홍콩 사태는 ‘잠자는 이들’을 깨웠다.”

홍콩, 저항-위협은 일상에 스며있다

홍콩=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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