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조한선 “연기, 머리 아닌 몸으로 받아들이려고요”

조한선 “연기, 머리 아닌 몸으로 받아들이려고요”

기사승인 2020-02-19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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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그런데 해외 원정 도박은 왜….” “아이 잠깐. 저 임동규 아니에요!” 한바탕 웃음이 회의실을 휩쓸고 지나갔다. 지난 14일 서울 한남대로 미스틱스토리 사옥에서 진행된 배우 조한선과의 인터뷰.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에 한껏 ‘과몰입’해 있던 기자의 질문이 만든 해프닝이었다. 요즘 조한선은 자신의 원래 이름보다 극 중 맡은 ‘임동규’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단다. 작품과 역할에 심취한 덕분이다.

시청자들도 놀이처럼 ‘과몰입’을 즐긴다. SBS는 임동규 시점의 인터뷰로 시청자의 ‘과몰입’을 부채질했다. 지난 8일 유튜브 SBS나우 채널에 공개된 ‘드디어 만났습니다. 화제의 임동규 선수 인터뷰’에서 조한선은 어두운 얼굴로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시청자의 대답은 이랬다.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데 계속 주저리주저리 하는 거 보니까 입이 11개인가보다, 동규야. 그래도 올 시즌 기대한다.” 역시, 야구 팬들은 선수를 강하게 키운다.

“인터뷰 땐 진짜 제가 물의를 일으킨 것 같더라고요. 주변에선 다들 웃으시는데, 나는 안 웃긴 거야!” 조한선은 ‘칩동규’라는 별명에도 즐거워했다. ‘칩동규’는 임동규가 원정 도박 사실을 털어놓은 뒤 붙은 별명이다. 조한선은 “요즘 재밌고 짜릿한 경험을 많이 하고 있다”면서 “‘인생 캐릭터’라는 말씀도 많이 해주시는데, 아직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이 많아 어색하고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조한선의 임동규는 어떻게 완성됐을까. 그는 “몸을 홀쭉하게 만드는 대신, 근력을 이용해 배트를 밀어치는 것”으로 콘셉트를 잡았다. 유튜브로 LA 다저스의 코디 벨린저 같은 호리호리한 선수들의 연습 영상을 찾아보고, 평소 친분이 있던 김태균 선수에게도 도움을 청했다. 임동규가 배트를 휘두르기 전 몸을 뒤로 젖히는 루틴이나, 짝다리를 짚은 채 서는 포즈도 모두 계산된 것이었다고 한다. “임동규는 뭐든 삐딱할 것”이라는 분석으로 만든 설정들이다. 고등학생 때까지 축구선수로 경기장을 누볐던 경험 덕분에 운동선수가 단체 생활을 하며 겪는 고충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대본은 2회까지만 나오는 거로 돼 있었어요. 작가님과 감독님께서 ‘임동규가 다시 나온다’고 귀띔은 해주셨는데, 언제 어떤 식으로 등장하는지는 몰랐죠. 인기를 바라고 선택한 역할이 아니었어요. 다만 후반부 내용을 모르는 상황에서도 ‘임동규에게 뭔가 있을 것 같다’는 궁금증은 있었죠. 그래서 최대한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임동규를 표현해내고 싶었습니다.”

조한선은 임동규가 “야생마 같다”고 느꼈다. 백승수(남궁민) 단장에게 욕설과 폭력으로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서다. 그는 “후반부 내용을 미리 알았다면 강약조절을 생각하느라 시청자들을 더 몰입시키지 못했을 것 같다”며 “2회까지의 임동규는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이미지로 잡았다”고 귀띔했다. 강인해 보이면서도 장난기가 머금은 조한선의 얼굴은 그가 해석한 임동규의 성격과 화학 작용을 일으켰다. 분량이 많지 않았는데도 ‘인생 캐릭터’라는 찬사가 나온 이유다.

주변 인물들과 자주 대립각을 세우는 임동규와 달리 실제 조한선은 명랑하다. 심지어 “약간 귀여운 편”이란다. 처음부터 성격이 밝았던 건 아니다. “옛날에는 어둡고 지루하고 칙칙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조한선을 바꾼 건 ‘가족’이다. 2010년 결혼해 슬하에 1남 1녀를 둔 그는 “내가 가장이자 한 여자의 남편, 두 아이의 아빠라는 사실이 연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이나 생활패턴을 많이 바꿔줬다”고 털어놨다. 성격이 긍정적으로 변한 것은 물론이고 생계 수단으로서 연기에 대한 책임감도 커진 모습이었다. “제가 연기를 더욱 파고들지 않으면, 제게 기회가 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 사실이 제게 원동력이 되어주죠.”

[쿠키인터뷰] 조한선 “연기, 머리 아닌 몸으로 받아들이려고요”2001년 모델로 연예계에 발을 들인 조한선은 이듬해 MBC ‘논스톱’과 영화 ‘늑대의 유혹’에 연달아 출연하며 ‘꽃미남 청춘스타’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그 자신은 “꽃미남으로 불리는 게 싫었다”고 했다. 연기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었던 걸까. 그는 변신도 여러 번 했다. 조직폭력배의 막내(영화 ‘열혈남아’)가 됐다가 예민하고 차가운 성격의 의사(드라마 ‘그래 그런거야’)도 됐다. ‘스토브리그’를 마친 뒤에는 단편 영화에 들어간다. 아이를 둔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라고 한다. 남들은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데. 단숨에 주목받을 수 있는 작품에는 욕심이 없느냐고 물으니 “생각보다 물이 많이 안 들어온다”는 농담이 돌아왔다. “내가 잘할 수 있으면서도 도전적인 작품을 신중하게 결정하고 싶다”는 진담과 함께.

“멋이 아닌 사람들의 가슴 속에 파고들 수 있는 연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돌아보니, 머리로 알고 있는 것들 혹은 내가 경험해본 것들을 연기했던 것 같아요. 내면보다 외적인 것에 더욱 신경을 쓰기도 했고요. 지금도 정답을 모르고 부족한 것도 많아요. 하지만 연기를 몸으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작품을 준비할 땐 예민해지고 작품을 끝내고 나면 공허해지지만, 그래도 연기를 하고 있을 땐 정말 짜릿해요.”

wild37@kukinews.com / 사진=SBS ‘스토브리그’, 미스틱스토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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