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무서워요”… 외국인 선수들이 떠난다

기사승인 2020-02-29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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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프로농구가 어수선하다. 짐을 싸 고향으로 돌아가는 외국인 선수들이 속출한 탓이다. 28일 오전까지 세 명의 선수가 자진 퇴출 의사를 밝힌 가운데, 나머지 외인들의 연쇄 이탈 우려도 나온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날로 거세지면서 무관중 경기에 돌입한 KBL이지만, 리그를 일시적으로 중단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서서히 힘을 얻고 있다. 

시작은 부산 KT의 앨런 더햄이었다. 더햄은 프로농구 A매치 브레이크 기간 동안 착실하게 훈련에 임했다. 그런데 며칠 사이 국내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자 불안감을 보였다. 

결국 그는 26일 구단 측에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KT는 이틀에 걸쳐 그를 설득했지만 뜻이 완강했다. 영구제명 징계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규정에 따르면 계약 중인 선수가 일방적으로 팀을 떠나며 계약을 파기할 경우, 선수 자격이 박탈된다.

더햄이 던진 공은 유대감을 갖고 있는 국내 외국인 선수들에게 큰 파장을 일으켰다. 

27일 고양 오리온의 사보비치는 돌연 고향 세르비아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관계자에 따르면 사보비치의 아내는 현재 세르비아에서 출산을 앞두고 있다. 

사보비치는 줄곧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내 왔다. 

26일 울산 현대모비스와의 경기가 끝난 뒤 만난 그는 “코로나19 관련해서 뉴스를 많이 본다. 기자 여러분도 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처럼 나도 두려운 느낌이 있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곁에 있던 동료 허일영은 “사보비치가 많이 불안해 한다”며 안쓰러워했다.

사보비치가 자진 퇴출 의사를 밝힌 날, KT의 바이런 멀린스도 팀을 떠났다. 서울 SK와의 경기를 앞두고 오전 훈련까지 참가했지만 돌연 팀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서동철 감독을 비롯한 구단 관계자들이 경기 종료 후 설득에 나섰지만 뜻을 꺾을 수 없었다. 

서 감독은 “처음엔 황당했다. 외국인 선수 2명과 면담을 했다. 현 시국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고, 구단에서도 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하지만 더햄의 의지가 워낙 확고해서 설득이 되지 않았다. 멀린스는 ‘내가 더햄 몫까지 열심히 뛰겠다’며 의지를 보이더니 오늘 갑자기 말을 바꾸더라. 왜 바뀐 건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각 나라의 대사관은 국내 외국인 선수들에게 코로나19 관련 주의사항을 전달하고, 안전을 확인하는 연락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향에 있는 가족들의 근심 어린 안부도 선수들의 마음을 흔드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외국인 선수들은 단체 메시지방을 통해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고민과 걱정을 토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보비치만 해도 러시아 리그에서 함께 뛴 닉 미네라스(서울 삼성)와 코로나19 관련 얘기를 주고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재난 우려로 외국인 선수들이 팀을 떠나는 초유의 사태에 타 구단 관계자들도 잔뜩 긴장하고 있다. A 구단 관계자는 “외국인 선수들의 불안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연봉도 거부하고 나간다고 하는데 붙잡을 방법도 따로 없지 않은가.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코로나19 무서워요”… 외국인 선수들이 떠난다

일부 외국인 선수들은 일시적으로 리그를 중단하는 건 어떻겠느냐는 건의를 내놓기도 한다.

12년 연속 한국 무대를 누빈 SK의 애런 헤인즈는 “북한 도발, 메르스 보다 코로나19가 더 무섭다”면서 “처음엔 별 것 아니겠지 생각했는데 계속 확진자가 늘어나고 사망자가 생기니까 더 두렵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팬이 있어야 스포츠도 있는 거다. 아무래도 리그를 잠깐 멈추고 상황을 지켜보면서 시즌을 이끌어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KBL은 코로나19 위기단계가 ‘심각’으로 격상됨에 따라 25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리그 운영 방안을 토의했다. 리그 중단과 무관중 경기를 놓고 저울질을 했으나 결국 무관중 경기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들의 '퇴단 도미노'가 일어나면서 고심이 깊어진 상황이다. 당장 구단 운영에 어려움이 생긴 KT와 오리온은 리그 중단을 요구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KBL 관계자는 “일부 구단의 건의가 있었던 건 사실이라면서도 “조금은 더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타 구단의 의견도 수렴 중이다. 우리도 상황이 좋지 않은 걸 인지하고 있다. 상황별 시나리오와 매뉴얼이 있다. 국가적, 리그 내‧외부적으로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 이에 따라 대처할 것이다. 여차하면 당장 내일이라도 긴급 이사회가 열릴 수 있다는 의미”라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한편 시범경기 취소, 개막 연기 등을 결정한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의 경우도 외국인 선수들의 불안감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까지 공식 이탈자는 없는 상태다. 

mdc0504@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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