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도 한때 ‘구준표’… 거품과 롱런의 갈림길에 선 이민호

기사승인 2009-02-19 18: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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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연예] 온통 구준표 천하다.

시청률 조사기관 TNS미디어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17일 방송된 KBS ‘꽃보다 남자’는 31.9%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폭발적인 인기다. 지상파 드라마국은 인터넷이 등장한 후 브라운관을 떠난 수많은 시청자들을 감안해 시청률 30% 고지를 ‘마의 고지’라 표현했다. ‘꽃보다 남자’는 국민적 인기를 누려야 정복할 수 있는 마의 고지를 넘은 셈이다.

‘꽃보다 남자’는 제작발표회 당시만 해도 유치하다는 세간의 혹평을 감수해야만 했다. 일본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대만과 일본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를 한국판으로 만든다고 하자, ‘걸작을 망치지 말라’, ‘이상한 캐스팅’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한국판 ‘꽃보다 남자’는 대성공을 거두며 오히려 원작을 만든 일본으로 수출까지 고려되고 있다.

모든 화제의 중심엔 구준표 역할을 맡은 이민호가 자리하고 있다. 인터넷은 구준표를 외치는 게시물로 가득하고, 수많은 언론 매체들은 이민호의 인터뷰를 기다리며 장사진을 치고 있다. 벌써부터 예고된 한류스타란 칭호가 붙고 있다. 무명에서 일약 스타로 떠오른 것을 넘어 ‘구준표 신드롬’이란 사회적 현상을 낳고 있다.

앞으로 구준표 신드롬은 어떻게 전개될까? 이민호는 신드롬을 넘어 톱스타로 안착할 수 있을지가 궁금해지고 있다.

왕년에도 구준표는 많았다

무명 이민호가 ‘꽃보다 남자’로 구준표 신드롬을 터뜨린 것처럼 자고 일어나니 ‘벼락 스타’가 된 케이스는 과거에도 적지 않았다.

이준기는 영화 ‘왕의 남자’ 한 편으로 주목받는 신예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안정된 연기로 사극을 소화한 것은 물론, 민감한 동성애 코드를 훌륭한 연기력으로 소화했다.
곱상한 외모와 맞물려 ‘예쁜 남자’ 신드롬을 낳았고, 천만 관객을 동원한 작품의 주연배우가 됐다.

스크린에 이준기가 있다면 브라운관엔 MBC ‘사랑을 그대 품안에’의 차인표가 있다. 원조 재벌 2세 역할을 맡은 차인표는 세련된 외모와 근육질의 몸매를 뽐내며 그야말로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됐다. 지난 1994년 방송한 ‘사랑을 그대 품안에’는 시청률 45%를 기록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차인표는 극중 커플인 신애라와 결혼해 인기와 사랑을 동시에 얻었다.

안재욱도 MBC ‘별은 내 가슴에’로 강민 신드롬을 일으켰다. 유명인과 일반인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 전개는 50%의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과시했고, 수많은 트렌디 드라마의 공식이 됐다. 당연히 안재욱은 명실상부한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SBS ‘모래시계’의 과묵한 보디가드 재희 역을 맡은 이정재도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된 케이스다. 사랑하는 여인을 끝까지 지키며 죽음을 맞는 모습은 드라마 주인공인 최민수와 고현정 못지 않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KBS ‘가을동화’의 원빈은 오히려 드라마의 주인공을 넘는 인기를 누린 케이스다.

‘국민 여동생’ 문근영은 영화 ‘어린 신부’로 국민적 인기를 누리는 여배우가 됐다. 깜찍한 외모와 귀여운 애교로 뭇남성의 마음을 녹였고, 주목받는 아역 배우에서 성인 연기자로 탈바꿈하는 신호탄이 됐다.


충무로의 이준기와 문근영, TV에 차인표와 안재욱이 있다면 가요계엔 서태지와 아이들과 H.O.T가 있다. 1집 ‘난 알아요’로 대한민국을 강타한 서태지와 아이들은 뛰어난 음악성과 신비주의 전략을 동시에 선보여 명실상부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서태지는 문화대통령이 됐고, 양현석은 빅뱅의 아버지로 변함 없는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한 후는 H.O.T가 책임졌다. 10대 5인조 그룹인 H.O.T는 10대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아이돌 그룹의 원조가 됐고, 수많은 파생상품을 만들어냈다. 장나라 또한 1집 ‘고백’으로 귀여움의 상징이 됐다. 장나라 신드롬은 SBS ‘명랑소녀 성공기’로 가속화됐다.

‘30초 예술’인 CF의 구준표는 전지현과 이영애다. 전지현은 현란한 테크노댄스를 가미한 CF계의 블루칩이 됐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톡톡 튀는 모습도 시너지 효과를 냈다. ‘산소 같은 여자’ 이영애는 연기 잠재력을 터뜨리며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 여배우로 자리잡았다.

정치권의 구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2002년 민주당 국민경선 당시 ‘노풍’(盧風)을 일으킨 노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을 꺾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외신들은 노 전 대통령의 당선을 ‘인터넷이 만든 기적’, ‘정말 놀라운 광경’이라고 표현했다.

노무현도 한때 ‘구준표’… 거품과 롱런의 갈림길에 선 이민호

숱한 ‘구준표’들의 공통점

과거 구준표들은 모두 순식간에 얻은 인기로 스타덤에 오르며 신드롬을 일으켰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제는 신드롬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현상이며, 필연적으로 오랫동안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이다. 뜨겁다 못해 폭발적인 인기는 식기 마련이고, 진검 승부를 벌여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기 마련이다.

이준기는 영화 ‘왕의 남자’로 얻은 인기를 연기력을 가다듬어 유지하고 있는 케이스다. 이문식과 함께 출연한 영화 ‘플라이 대디’로 처참한 흥행 실패를 맛봤지만, 안방극장에 선을 보인 ‘마이 걸’, ‘개와 늑대의 시간’, ‘일지매’는 모두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아이돌 스타 이미지를 벗기 위해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조연을 감수한 선택은 배우의 무게감을 갖추기 위한 이준기의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반면, 이정재와 전지현은 뚜렷한 연기의 진일보를 보여주지 못했다. 차인표도 마찬가지다. 기존 이미지를 되풀이하는 선에서 변신을 감행했고, 최대한 리스크가 적은 작품을 선택하는 안전장치를 뒀다.

‘어린 신부’로 ‘국민 여동생’ 반열에 오른 문근영과 귀여움의 대명사인 장나라는 너무 이미지가 각인돼 시련을 겪었다. 문근영은 SBS ‘바람의 화원’으로 비로소 연기력을 인정받았고, 뒤늦게 성인 연기자 신고식을 치뤘다. 장나라는 중화권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국내에선 잦은 이미지 노출로 인해 예전 인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원조 ‘벼락 스타’인 차인표와 안재욱은 세월의 벽이 인기의 발목을 잡았다. 차인표는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최정상의 인기를 누렸지만 군입대로 인해 가속력 동력을 잃어버렸다. 수많은 히트작을 배출한 안재욱은 이제 차츰 꽃미남 배우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는 형국이다.

이처럼 원조 구준표들은 단 한 편의 작품을 통해 신드롬을 넘어 벼락 스타가 됐다. 하지만 자기 분야에 노력하지 않은 스타는 어김없이 시련을 겪었다. 인기에 비례한 잦은 이미지 노출은 인기의 발목을 잡았고,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스타도 있다. 인기의 하강 곡선을 막기 위해 갖가지 신비주의 전략이 동원되는 것도 그래서다.

구준표의 인기인가, 이민호의 인기인가

영화배우와 탤런트, 가수와 정치인 등 직업에 관계없이 신드롬은 식기 마련이다. 관건은 최대한 신드롬이 천천히 시나브로 가라앉게 만드는 방법이다.

이는 각 분야에서 내공을 다지는 정공법 말고는 도리가 없다. 이준기와 문근영은 배우의 생명인 연기력을 향상시키며 자구책을 마련해 인기를 유지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신비주의 전략을 썼지만 꾸준히 새로운 장르와 뮤지션적 역량을 발휘했다.

물론 인위적인 전략도 부분적으로 필요하다. 최대한 CF를 자제하는 것은 물론, 인터뷰도 철저한 준비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가벼운 구설수라도 오르지 않게 하는 철저한 자기 관리도 필요하다. 하지만 본질은 자기 분야에 대한 발전이다.

최근 ‘구준표 신드롬’을 낳고 있는 ‘꽃보다 남자’의 이민호도 마찬가지다. 지금 ‘꽃보다 남자’는 완성도 떨어지는 드라마적 구성과 유치한 설정, 무리한 스토리 전개에 대한 비판을 원작 만화로 모조리 막아내고 있다.

한 마디로 드라마가 유치한 것은 원작 만화를 충실하게 따라가기 위해서고, 배우들의 불편한 연기력도 마찬가지란 것이다. 원작 만화의 순수성과 창의성을 꽤나 영리하게 방패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구준표 역할을 맡고 있는 이민호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신드롬은 이민호의 뛰어난 외모와 구준표의 캐릭터가 겹쳐진 일종의 거품이다. 엄청난 연기 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거품은 꺼질 수 밖에 없다. 마치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신선한 느낌도 잦은 이미지 노출로 사라지는 것이 시간문제다.

이민호가 구준표 신드롬의 일시적인 달콤함에 취한다면 절대 롱런할 수 있는 스타가 될 수 없다. 이민호가 과거 구준표들의 험난하기 짝이 없던 여정을 돌아볼 시점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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