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성애화·동성애 미화 논란 ‘나다움 어린이책’…어른이 기자들이 읽어봤다

기사승인 2020-09-11 05: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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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성애화·동성애 미화 논란 ‘나다움 어린이책’…어른이 기자들이 읽어봤다

[쿠키뉴스] 한성주, 이준범, 이미애, 임지혜 기자 =여성가족부의 ‘나다움 어린이책’ 7종이 지난달 26일 회수 조치 됐다. 여가부는 교사·작가 등의 심사를 거쳐 어린이의 성인지 감수성 향상을 돕는 책을 나다움 어린이책으로 선정한다. 지원을 신청한 초등학교에 선정된 책들을 보급하기도 한다.

나다움 어린이책을 본 일부 어른들은 소스라쳤다. 국회 교육위원회에 소속된 한 국회의원은 책이 초등학생 아이들을 조기 성애화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동성애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표현해, 미화한다는 비난도 나왔다. 여가부는 책들이 해외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은 작품들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사회의 문화적 수용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며 책의 회수를 결정했다.

문제는 책에 있을까, 사회에 있을까. 쿠키뉴스 기자들은 회수된 나다움 어린이책 중 하나인 ‘자꾸 마음이 끌린다면’을 읽어봤다. 이 책은 성관계와 동성애를 묘사한 삽화가 실려있어 논란이 됐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기혼 여성 임지혜·이미애 기자, 30대 중반 미혼 남성 이준범기자, 20대 중반 미혼 여성 한성주 기자가 의견을 공유했다.

-책을 접한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임지혜 기자: 놀랍거나 파격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30대 중후반 여성이자 세 아이를 둔 엄마로서 책에 담긴 정보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어요. 아동 도서가 남녀의 성관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이 기억에 남습니다. 최근 성교육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10년 넘게 아이를 키우면서도 이런 책을 직접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이미애 기자: 삽화가 거부감이 들고, 설명이 아주 산만합니다. 책이 아이들에게 혼란을 줄 것 같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사랑의 대상으로 케이크, 신, 연예인, 동성, 외계인을 나열했는데, 사람에 대한 사랑과 물건에 대한 사랑을 병치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물건이나 공인을 사랑할 때와, 남녀가 사랑할 때의 태도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 모두를 같은 사랑이라고 설명하면 아이들이 사랑에 대해 잘못 이해할까 염려됩니다.

이준범 기자: 따뜻하고 아름다운 책입니다. 사랑의 근원을 다룬 영화 ‘헤드윅’의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성교육 책보다는 사랑에 관한 그림책이라고 생각해요. 분량이 적고 그림이 많아 읽기 쉬우면서도 내용이 가볍지만은 않았습니다. 음경과 음순에 관한 내용이 갑자기 그림으로 등장해 놀랐지만, 사랑의 관점에서 있는 사실을 보여줘 문제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성주 기자: 딱딱하게 굳어 있던 생각을 유연하게 풀어준 책입니다. 처음에는 책이 정확히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파악되지 않아 네 번을 읽었습니다. 사랑의 유형·대상·방식을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처음 가져봤어요. 아이들을 위한 책이지만, 어른들에게도 유익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어린이가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다. 이해가 동반되지 않은 채 성관계를 묘사한 삽화를 보면, 어린이들은 이를 단순히 ‘야한 그림’으로 인식할 거라는 걱정도 들었어요.

-책을 자유롭게 평가해주세요.

임지혜 기자: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에게 추천합니다. 이 책이 동성애를 미화한다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동성애에 관한 내용은 36페이지에 걸쳐 소개된 다양한 사랑 중 하나에 불과하니까요. 초등 고학년은 스마트폰을 통해 잘못된 성 지식에 노출될 우려가 크고, 이성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는 시기예요. 책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성인지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저학년은 무관심하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로만 받아들일 거예요.

이미애 기자: 이 책이 동성애를 설명하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어린이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이 사랑이구나’ 생각할 수 있을 시점에 동성애에 대한 내용을 아무런 설명 없이 툭 던지고 있어요. 그러면 나머지 설명을 선생님이나 부모가 해줘야 하는데, 부모 세대는 동성애에 대한 설명이 서툴 수 있어요. 그러면 아이는 호기심을 적절히 해결하지 못하게 되죠. 이 책과 같은 방식으로 아이에게 동성애에 대해 설명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준범 기자: 해롭다는 지적이 나온 맥락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성인 남녀의 성기와 성관계 삽화가 왜 문제가 되는지, 어떻게 조기 성애화 우려로 연결되는지 모르겠어요. 성에 대한 상식이 어른에게만 허용되는 비밀이라면, 성교육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동성애를 있는 그대로 설명한 책의 태도가 어떻게 미화로 바뀌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책의 내용보다는 ‘동성애 미화’, ‘조기 성애화’라는 표현이 이 사회를 해롭게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한성주 기자: 연령대에 상관없이 모든 독자에게 유익한 책입니다. 아이들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동성애를 미화한다는 비판에 동의하지 않아요.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설명이 어떻게 미화로 치부되는지 모르겠어요. 단순한 사실 명제일 뿐이잖아요.

-아이들을 위한 성교육 자료로 이 책이 적합할까요?

임지혜 기자: 안타깝게도 공교육 자료로 인정받기 어려워 보입니다. 아무리 좋은 자료라도 사회적 공감과 합의를 얻어내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입니다. 부모세대는 성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어요. 이 책에 대한 보도가 쏟아지고, 동성애와 성관계를 묘사한 부분에 놀랐다고 말하는 부모가 많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시대의 변화에 맞춘‘이나 '선진국형'이라는 수식은 무의미합니다. 여가부가 여론 수렴을 충분히 했다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아요.

이미애 기자: 적합하지 않습니다. 시대의 변화는 차치하고, 동시대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동의하고 받아들이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학교에서 성교육 자료로 활용하는 책이라면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해 읽지 않아도 그 내용을 접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책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준범 기자: 책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성교육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충분히 진행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고 생각해요. 지금 세대는 어떤 성교육 자료가 적합한지 반문하고 싶습니다. 이 책은 ‘난 어떻게 태어났어?’라고 묻는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진실을 설명해줍니다. 성관계와 임신의 원리를 사랑의 연장선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거예요. 

한성주 기자: 적합하지만, 적합하지 않습니다. 책은 좋지만, 활용도가 미지수예요. 사랑은 형태가 다양하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학교에서 접할 기회는 드물어요. 아이들이 책을 통해 사랑이 낯설거나 부끄러운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울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학교에서 성교육에 이 책을 선뜻 활용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교과 과정에서 동성애가 언급되는 맥락은 ‘인종·종교·성별·성적 취향에 따라 차별하면 안 된다’ 뿐이니까요. 동성애를 설명하기 위한 교육부 지침은 준비되지 않았는데, 여가부는 좋은 책이라고 선생님의 손에 덥석 들려준 상황으로 보여요.

-초·중·고등학교 시절 어떤 성교육을 받았나요?

임지혜 기자: 여중·여고를 나와 성교육을 자주 받았던 것 같은데, 대체 뭘 배웠는지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틀어주신 영상에서는 늘 ‘여성의 신체 구조에 대해’, ‘내 몸을 지키는 법’ 등이 반복됐어요. 나중에는 영상을 보지도 않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놀았죠. 연애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주관은 성교육이 아니라, 뉴스를 보거나 친구와 대화하며 스스로 확립했습니다.

이미애 기자: 주로 동영상을 시청했습니다.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설명보다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만 설명하는 내용으로 기억합니다. 90년대 성교육의 특성인지는 몰라도, 동성애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어요. 

이준범 기자: 중학교 시절 보건 선생님이 수업 시간을 빌려 성교육을 진행한 기억이 있습니다. 분위기가 산만했고, 상식적인 내용에 그치는 형식적인 수업이었어요.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엔 성교육을 받았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받았더라도 큰 인상을 받지 못했거나, 중요하지 않은 시간이라고 생각해 집중하지 못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당시엔 성교육이 왜 필요한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이 없었습니다.

한성주 기자: 중학교 1학년 성교육 시간에 보건 선생님이 피임기구들을 가져와서 아이들에게 만져보게 했어요. 그때 콘돔을 처음 봐서 그 수업이 기억에 남습니다. 영상은 주로 성범죄 예방 교육 시간에 시청했는데 ‘안돼요·싫어요·도와주세요‘로 요약되는 내용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학기마다 1회 성교육 시간이 있었어요. 그 시간에 영어단어를 외울 수 있어 기뻤던 기억만 떠오릅니다.

-앞으로 초등학교에는 어떤 성교육이 필요할까요?

임지혜 기자: 아이들이 진짜 궁금해하는 내용을 제공해야 합니다. 일관성 있는 방향도 설정해야 합니다. 부모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이 책이 유익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게 나왔어요. 전문가가 모여 책을 선정해 놓고, 손바닥 뒤집듯 회수를 결정한 게 아쉬워요.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행태가 초등학교 성교육을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닐까요.   

이미애 기자: 과학적·의학적 설명을 제공해야 합니다. 동성애처럼 아직 사회적으로 논의가 충분히 진행되지 않은 쟁점이 많습니다. 객관적 정보가 아이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초를 형성할 거예요. 다만, 동성애에 대한 논란을 두고 ‘문화적 수용성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치부하는 것은 부적절해요. 그 말은 결국 문제를 제기한 부모들의 문화적 수용성이 부족해서 아이들에게 성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의미니까요. 

이준범 기자: 정부가 하나의 가이드를 마련해 성교육을 이끌고 가려는 발상은 위험합니다. 교육을 받는 당사자인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없을 때 나오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이 책을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쪽 모두 성교육, 책의 내용, 학생들의 반응에는 무관심해 보입니다. 어른들의 의견과 판단이 앞서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책의 회수 조치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교과서처럼 학교에서 강제로 읽게 만드는 책이 아니니, 학교에서 자유롭게 활용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한성주 기자: 어른들의 관점에서 판단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고 정보를 아예 차단해버리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동성애가 있고, 사람들은 성관계를 합니다. 아이들이 이 사실을 안다고 해서 인격 형성에 심각한 해를 입지는 않을 거예요. 학교에서 이뤄지는 성교육이 지금보다 더 풍부한 내용을 담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교육부와 여가부가 성교육 체계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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