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프레스] 그 사람들은 악당이 아니에요

“전문가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기사승인 2020-12-07 09: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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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프레스] 그 사람들은 악당이 아니에요
[쿠키뉴스 유니프레스] 김수영 연세춘추 기자 = 근래 한국 사회의 흐름 중 가장 뚜렷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언더도그마’다. 약자는 선하고 강자는 악하다고 선을 그어버리는 행태.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선악의 구도는 국민들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는다. 재벌, 다주택자는 물론이고, 의사 등 기득권이라고 불릴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가진 이들은 실제로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와 무관하게 악역을 맡는다. 

그 중 가장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바로 전문가들이다. 특히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가들은 그들이 가진 전문성과 사회에 대한 기여에 상관없이 큰 수모를 겪고 있다. 해당 분야에서 오랜 시간 공부하고 연구하며 지식을 쌓은 전문가들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이미지를 얻는다. ‘무슨무슨 협회’에 소속돼 있으면 더 좋다. 관련 전문가 집단 전체가 눈앞의 이익에 혈안이 된 집단이 된다. 

여론만 그런 것은 아니다. 더 문제인 것은, 요즘 들어 정부도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탈원전 정책은 전문가 집단을 사실상 학살해버린 대표적인 사건이다. 체르노빌 사고, 그리고 가까운 시기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을 통해 만들어진 막연한 공포감은 사람들을 현혹시켰다. 관련 산업계가 아무리 그들 원전과 우리 원전이 운영 원리부터 다르다는 것을 설명해도, 후쿠시마 원전이 처음부터 잘못 설계된 상태였다는 사실을 설명해도 들리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우리나라 원전에서는 인명 피해나 방사능 유출과 같은 시나리오가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설명해도 마찬가지다. 학계까지 설명을 보탰지만 그들에게는 단 한 단어가 주어졌다. ‘원피아’. 원자력발전소에 마피아(MAFIA)를 합성한 단어. 이 단어 하나로 관련 산업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오랜 시간 원전만 연구해온 교수들은 제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해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악질들로 매도당했다.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다.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던 우리나라 원전 산업은 존폐 위기에 몰렸다. 앞으로 수십 년은 멀쩡히 가동할 수 있는 원전들이 폐쇄 수순에 들어섰다. 정부에서 탈원전 정책을 이끄는 사람들은 환경운동가, 의학교수, 정책학 교수 등 에너지 전문가로 보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여론을 의식해 정부는 ‘공정한’ 의견을 듣겠다고 공론화위원회를 꾸렸지만 정작 위원으로는 통계학, 사회학, 화학공학 전문가 등 원전과는 무관한 공부만 한 사람들이 모였다. 총 한 번 쥐어본 적 없는 자들이 전쟁을 준비하는 꼴이다. 

최근 가덕도로 부지 선정이 된 ‘동남권 신공항’ 사례에서도 전문가 목소리는 음소거 당했다. 지난 2016년 정부는 동남권 신공항 건설 부지를 결정하기 위해 세금을 20억 원씩 투입해 관련 분야에 권위가 있는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에 연구 용역을 맡겼다. 경제성이나 안전성 등 요소에서 김해공항 확장이 최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올해 들어 정부는 갑자기 김해공항 확장안을 백지화했다. 김해공항은 물론이고, 대구·경북권에서 주장하던 밀양보다도 낮은 점수를 받은 가덕도가 공항 부지로 선정됐다. 10조 원에 달하는 국비가 투입되는 국책사업이 손바닥 뒤집듯 뒤집혔다. 설(說)은 많다. 그러나 확실한 건 하나다. 또 전문가는 배제됐다. 

요 근래 ‘시민단체’라는 말은 불가능도 해결해주는 마법이 됐다.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일이라도 시민단체가 참여하면 마치 시민들이 원하는 것인 양 둔갑한다. 그리고 그런 ‘시민들의 지지’를 얻은 정책들은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물론 많은 시민들이 원한다고 해서 그것이 언제나 옳은 일은 아니라는 것은 역사를 통해 증명됐다.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는 일들에 피해를 입는 건 언제나 국민들이다. 한 푼 두 푼 낸 세금들을, 그리고 앞으로 평생을 살아가야 할지 모를 나라의 체력을 낭비하고 있다. 더 이상 낭비할 것이 없을 때 국민들이 치러야 할 대가는 무엇일까. 4차 산업혁명 시대라면서, 이공계 전문가들이 필요한 때라면서, 정작 그들의 이야기는 듣지 않은 채 달려가는 나라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그 종착역이 그리 밝지는 않을 것이다.

전문가는 악당이 아니다. 그들도 인간적 양심을 가지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시민들이다. 그들을 악마화하고 배제하는 일은 그만둬야 한다. 물론 전문가의 말이 언제나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건 아니다. 이제 나름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나라라면, 정부에서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적어도 전문가의 목소리를 듣는 척이라도 하는 것이 어떨까. 전문가인 척하는 시민운동가 말고 그 분야에서 뼈가 굵은, 진짜 전문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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