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고구말] ‘여성 비하’에 ‘성범죄 옹호’까지… ‘토론’ 말고 ‘아무 말’ 쏟아진 필리버스터

여야, “아녀자”, “엿 먹어라” 등 무제한 토론 속 막말 경쟁
윤희숙, 필리버스터 최장기록 경신… 12시간47분

기사승인 2020-12-15 08:4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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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고구말’은 국회가 있는 여의도와 고구마, 말의 합성어로 답답한 현실 정치를 풀어보려는 코너입니다. 이를 통해 정치인들이 매일 내뱉는 말을 여과없이 소개하고 발언 속에 담긴 의미를 독자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여의도 고구말] ‘여성 비하’에 ‘성범죄 옹호’까지… ‘토론’ 말고 ‘아무 말’ 쏟아진 필리버스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의 본회의 상정을 앞둔 9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공수처법에 반대하며 시위하는 동안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쿠키뉴스] 조현지 기자 =지난 9일 약 120건의 법안 처리 후 정기국회가 막을 내렸지만, 곧바로 임시국회가 열려 여야의 뜨거운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 국정원법, 대북전단살포 금지법 등 주요 쟁점법안을 놓고 치열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이 진행됐다.

이 가운데 필리버스터의 강제 종료 표결도 이뤄졌다. 당초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의 의견을 존중한다며 쟁점법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을 인정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일일 확진자가 1000명을 넘는 등 ‘전국적 대유행’ 상황을 고려해 조기 종결로 입장울 바꿨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12일 토론 종결동의서를 제출했고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는 약 77시간 만에 종결됐다. 국민의힘은 곧바로 ‘대북전단살포 금지법’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이어갔지만, 여당은 국회법에 따라 24시간 동안 토론이 진행된 후 표결에 나설 방침이다. 

[여의도 고구말] ‘여성 비하’에 ‘성범죄 옹호’까지… ‘토론’ 말고 ‘아무 말’ 쏟아진 필리버스터
▲국민의힘 이철규 의원이 12월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15시 15분께 시작한 국가정보원법 전부개정법률안에 대한 무제한토론을 21시 50여분까지 6시간 넘게 계속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막말로 빛난 野, 아무 말 뱉은 與

엿새째 이어진 필리버스터에서도 여야 의원들의 ‘막말’은 여전했다. ‘무제한 토론’이라는 정의가 무색한 순간들이 계속됐다. 특히 막말 정당 탈피를 노리던 국민의힘 의원들의 입에서 여성을 비하하는 듯한 전근대적 단어 표현과 성범죄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이 나와 논란에 휩싸였다.

국정원법 개정안의 첫 토론자로 나선 국민의힘 이철규 의원의 입은 단연 돋보였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잘생기고 감성적이어서 지지했던 여성들이 요즘은 고개를 돌린다”, “이 지구상 어디에도 밤거리를 ‘아녀자’가 마음대로 활보할 수 있는 나라가 없다” 등 성차별적 발언으로 반발을 샀다. 

국정원법 필리버스터에 나선 국민의힘 김웅 의원의 발언도 비판을 받았다. 김 의원은 “성폭력 범죄는 충동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고 충동 대부분이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서 스트레스가 폭발하는 경우가 많다”고 발언했다. 이를 두고 정의당은 “사실상 성범죄자를 옹호하는 발언”이라고 질타했고, 민주당도 “성범죄를 한낱 스트레스로 치부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판이 거세지자 김 의원은 본래 취지와 다르게 전달됐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고 조두순 같은 특정 부류의 범죄자에 대한 지금의 대책이 오히려 재범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것”이라며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엿 먹어라”는 원색적인 표현이 나오기도 했다. 국민의힘 김태흠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개원 연설을 두고 “이분이 대한민국 대통령인지 달나라 대통령인지 분간이 안가더라. 여야 협치를 이야기하는 것은 엿먹으라는 얘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범여권 정당을 ‘호남당’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여당 의원들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느닷없이 ‘법조기자단 해체’를 주장하며 비판에 직면했다. 그는 국정원법 필리버스터 도중 “법조기자가 다 받아쓰기만 한다. 저는 추미애 장관이 법조기자단을 해체했으면 좋겠다”고 주장했고 토론과 동떨어진 발언으로 지적받았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우리 국민들을 ‘남한사람들’로 칭한 것을 놓고 설전이 이어지기도 했다. 김 의원을 발언을 두고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은 “순전히 실수일까. 2012년 이정희씨의 ‘남쪽 정부’라는 표현이 떠오르는 것은 나뿐일까”라고 지적했고 김 의원은 “트집잡을 걸 잡아라”라고 받아쳤다.

[여의도 고구말] ‘여성 비하’에 ‘성범죄 옹호’까지… ‘토론’ 말고 ‘아무 말’ 쏟아진 필리버스터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11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국가정보원법 전부개정 법률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희숙, 필리버스터 최장시간 기록… “말하다보니 길어졌다”

잇단 막말 토론 속에서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은 필리버스터 역대 최장기록을 경신했다. 윤 의원은 11일 오후 3시24분부터 토론을 시작해 12일 오전 4시12분까지 총 12시간47분 동안 발언을 이어갔다. 이는 종전 최장기록 보유자인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전 의원의 기록(2016년 3월2일 오전 7시1분~오후 7시32분, 총 12시간31분)을 넘어선 것이다.

윤 의원은 국정원법 개정안 필리버스터 일곱 번째 주자로 나서 국가정보원법 개정안,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 5.18왜곡처벌법 등을 ‘닥쳐 3법’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정부가 고르는 사건에 대해서 닥치라고 국민 개인의 기본권을 마음껏 침해한다. 더구나 그런 법이 국회에서 숙고하지 않고 상임위에서 망치를 두드렸다”며 법안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해나갔다.

토론 후 짧은 소회를 남기기도 했다. 윤 의원은 13일 페이스북에 “이번회기를 날림으로 처리된 문제법안들에 대한 야당의 마지막 항의 통로에 참여했다”며 “원래 오래 말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동료 의원들의 응원을 받으며 추임새에 반응하다보니 좀 길어졌다. 그 중에서 공감을 얻을 내용이 들어있었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hyeonzi@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