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형 아이템은 도박? 해외에선 어떻게 바라볼까

기사승인 2021-03-16 06: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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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형 아이템은 도박? 해외에선 어떻게 바라볼까
확률형 아이템은 뽑기에서 유래했다. 이정주 디자이너

[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최근 국내 게임 업계의 ‘뜨거운 감자’는 확률형 아이템이다. 주요 게임사가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규제를 외치는 이용자의 목소리가 드높다.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 개정안(게임법 개정안)’이 상정돼 국회에서 검토 중이지만, 일부 정치권은 확률형 아이템을 아예 도박으로 규정하고 금지시켜야 한다며 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국내 개발사의 주요 수익모델(BM)인 확률형 아이템은 일종의 ‘뽑기’와 유사하다. 유료 결제를 통해 구매한 확률형 아이템은 대개 상자 형태인데, 게임사가 정한 확률표에 따라 일반 아이템 혹은 희귀 아이템이 등장한다. 원하는 아이템을 얻기 위해선 적게는 수만 원, 많게는 수백만 원의 돈을 들여야 한다. 상자에서 나온 아이템을 강화하거나 합성하는 과정에도 확률이 붙는 경우가 많아 사행성이 짙다는 비판을 오래 받아왔다. 

우리나라는 2014년부터 업계가 자율적으로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하고, 게임 등급 등을 심의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반면 해외는 상대적으로 규제 강도가 높은 편이다. 몇몇 서구권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불법이라고 유권해석을 내리는 등 정부가 직접적으로 개입한다.

네덜란드와 벨기에 “확률형 아이템은 도박법 위반”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3년 전 확률형 아이템을 도박법 위반으로 판정했다.

지난 2018년 4월 네덜란드 사행사업감독원은 10개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 시스템을 조사한 결과 ‘피파 18’ 등 4개 게임이 네덜란드 도박 관련법을 위반했다고 판정했다. 

사행사업감독원은 해당 근거로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이 실제 슬롯머신이나 룰렛과 유사한 디자인 및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는 점을 꼽았다. 내용물이 게임 외부에서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 또한 지적했다.

같은 달 벨기에 게임 도박 위원회 역시 3개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도박에 해당하며 불법이다’라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당시 벨기에 법무장관은 “만약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수정 없이 벨기에에서 이들 게임을 계속 서비스한다면 사업자는 5년 이하의 징역형 혹은 최대 80만유로(약 10억8500만원)의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특히 미성년자가 관여됐다면 처벌을 두 배로 가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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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형 아이템의 모델 중 하나인 '빙고'. 연합뉴스


영국과 독일 ‘확률형 아이템, 청소년에게 해로워’

최근엔 영국과 독일도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규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영국 왕립공중보건학회(RSPH)는 영국 정부가 연방 도박법 검토를 앞두고 확률형 아이템이 게임 이용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근거자료를 요청하자, 지난 1월 미성년자의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 소비 실태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11~16세 게임 이용자의 23%가 확률형 아이템을 구매한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전체 응답자의 22%가 하나의 확률형 아이템에 약 15만7000원 이상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전체 응답자의 13%는 확률형 아이템 구매로 빚을 진 적이 있다고 답했고, 15%는 부모의 돈 또는 신용카드를 허락 없이 사용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빚을 갚기 위해 범죄에 연루되거나 과도한 지출로 가족이 집을 담보로 잡힌 사례도 등장했다.

RSPH는 보고서를 통해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 구매와 관련 연령 제한과 지출 추적 지능이 없다는 점에 주목,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을 도박으로 간주하고 18세 미만 게임에서 삭제하는 등 보호조치를 시행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독일 연방 하원은 최근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확률형 아이템 상자 판매를 금지할 수 있는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해당 개정안은 확률형 아이템을 포함한 게임을 미성년자(18세 미만) 판매 금지 등급으로 분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독일 하원은 확률형 아이템 판매를 금지하지 않았지만 ‘도박과 유사한 메커니즘’이라고 규정했다. 해당 법안은 상원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중국은 가이드라인 제시, 일본은 컴플리트가챠 금지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도 확률형 아이템의 사행성을 경계하고 있다.

중국은 2019년 4월 신규 판호(서비스 허가) 규정을 개정하면서 “뽑기의 확률을 백분율로 표기하면 안 되고, ‘몇 번 하면 나온다’는 식으로 표시해야 한다”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실제 판호 개정 이후 중국 모바일게임들은 대부분 이러한 규정을 준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2012년 7월부터 소비자청에서 경품표시법에 근거해 이중‧삼중 뽑기 형태인 ‘컴플리트 가챠’ 금지에 대한 행정처분 명령을 내렸다. 권고에 해당해 법적 효력은 없지만, 일본 게임사 60여 곳이 회원사로 소속된 일본온라인게임협회(JOGA)는 ‘온라인게임 비즈니스 모델 기획 설계 및 운영 가이드라인’을 통해 이를 자발적으로 준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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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확률 조작 의혹에 항의하는 이용자의 메시지를 담은 트럭. 김찬홍 기자
 

유동수 의원 “컴플리트 가챠 금지하자”

국내에선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 유동수 의원이 컴플리트 가챠를 금지하는 내용이 담긴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유 의원실이 설정한 컴플리트 가챠는 이중‧삼중 뽑기와 같은 대표적인 유형 외에도 빙고와 도감 등을 포함한 넓은 범주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 의원은 “전 세계적으로 확률형 아이템의 사행성에 대해 규제가 시작되고 있는 만큼, 확률형 아이템에 매몰돼 단기순익에만 치중하는 게임사들의 BM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게임산업이 갈라파고스화돼 세계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많은 게임사들이 우리보다 강한 법적 규제를 실시하고 있는 중국 진출을 위한 판호 획득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국내에서만 소비자 보호를 도외시하는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한편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법안에 대해 “업계가 신뢰를 잃을 행동을 한 것은 맞다”면서도 “과잉규제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주요 개발사들이 하나둘 확률 공개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이용자와 게임사 양쪽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BM 모델을 고민하고 출시한다면 긍정적인 방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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