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연보호 전략은 ‘그냥 내버려 두기’

[우리는 오늘도 내일을 끌어쓴다] 생태계 보존의 새로운 패러다임 ‘재야생화’

기사승인 2021-04-24 05:00:02
- + 인쇄
<편집자주> 한살짜리 아기부터 대기업 회장님까지, 우리는 모두 지난해 8월22일부터 적자다. 이날은 지구가 제공하는 1년 치 자원을 다 써 버린 시점 '생태용량 초과의 날'. 나머지 4개월은 다음해 살림살이를 당겨 쓴 셈이다. 만성 적자의 대가는 재난과 불평등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공공예술 프로젝트 ‘제로의 예술’과 함께 평등, 비거니즘,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기후위기 세상을 톺아본다. 제로의 예술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공예술사업에 선정된 프로젝트 팀이다. 기후위기 문제를 의논하는 시민참여 강연·워크숍 프로그램 ‘우리는 오늘도 내일을 끌어쓴다’를 기획했다.

진정한 자연보호 전략은 ‘그냥 내버려 두기’
우스터바더스플라산(OVP) 간척 당시 모습(왼쪽)과 현재 모습(오른쪽). 사진=네덜란드 관광청 국립공원 Nieuw Land 홈페이지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자연을 망친 방법으로 자연을 회복시킬 수 있을까. 현대 생태계 보존 정책은 근대 산업화 방식을 답습한다. 과학자와 정책가가 생물들의 중요도를 계산하고 순위 매긴다. 엄선한 공간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철조망을 치고 보존한다. 생태계 보존으로 인간이 얻을 이익을 전망한다.

최명애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연구조교수는 근대 인간중심적 자연보존 전략에 의문을 제기한다. 산업화를 거치며 가장 익숙해진 방식일뿐, 최선은 아니라는 것이다. 20일 온라인 화상 회의를 통해 만난 최 교수는 획기적이고 대담하게 ‘내버려 두는’ 생태계 보존 방법, 재야생화(Rewilding)를 제안했다. 

“호랑이 사자 두루미 여우까지, 우리가 동화 속에서 봤던 동물들은 하나도 빠짐 없이 멸종위기 동물 목록에 올랐어요.”

최 교수는 기존 생태계 보존 전략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제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S)는 2019년 보고서를 통해 앞으로 1세기 안에 100만종 이상의 동식물이 멸종한다고 예측했다. 생물종 감소가 과거 1000만년을 통틀어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백악기 이래 6번째 대멸종이 시작됐다고 규정하는 과학자들도 적지 않다. 

게다가 인간의 손에 의존하는 보존 전략은 지속가능성도 부족하다. 기후위기가 닥치며 지구 환경의 불확실성이 증가했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등장하고, 비정상적인 곤충 군집과 생물 이동이 나타난다. 전례없는 규모의 이상기온과 자연재해도 계속된다. 인간이 예측하고 계획한 장치가 효과적으로 작동한다고 담보할 수 없다.

재야생화는 생태계의 자생력에 초점을 맞추는 보존 전략이다.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동식물과 자연물의 기능을 활성화하는 방식이다. 1990년대 미국의 급진적인 환경단체 어스 퍼스트의 대표 데이브 포어맨과 보건생물학자 마이클 사울이 처음으로 개념을 제시했다. 현재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리와일딩 워킹그룹에서 재야생화의 원칙과 가이드라인 개발하며 제도화하고 있다. 유럽 각지에서 70여개 재야생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진정한 자연보호 전략은 ‘그냥 내버려 두기’
버팔로를 사냥 중인 옐로우스톤 회색 늑대 무리. 사진=픽사베이

재야생화 프로젝트는 훼손된 지역에서 시작된다. 이상적인 형태를 유지한 장소를 골라 울타리를 두르는 기존 전략과 상반된 특징이다. 대부분 재야생화 프로젝트에서 인간의 역할은 훼손된 지역에 동물을 도입하는 작업이 유일하다. 연구자들은 주로 대형 포유류를 데려다 놓고, 동물과 그 지역 생태계에게 후일을 맡긴 채 경과를 지켜본다.

유럽에서는 생태 재야생화(Ecological rewilding) 실험이 시도된다. 풀을 뜯어 먹는 대형 초식동물을 도입하는 방식이다. 우스터바더스플라산(OVP)간척지 재야생화 작업이 대표적이다. OVP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외곽의 간척지로, 지난 1960년대 산업용지로 쓰이다 버려졌다. 이후 농경지로 탈바꿈 하려는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30여년간 방치됐다. 

1990년대 초부터 네덜란드 환경부와 생물학자들이 OVP 생태계 복원 작업에 나섰다. 하지만 간척지인 OVP는 되돌아갈 이상적인 과거의 모습이 없었다. 연구진들은 고민 끝에 자연에게 복원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말, 소, 사슴 등의 방목 초식동물 OVP에 풀어놓고 관찰했다. 초식동물의 배설물이 다양한 곤충을 불러들였고, 곤충을 먹이로 삼는 작은 소형 동물이 잇따라 유입됐다. 생물들 스스로 OVP에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에서는 영양 재야생화(Trophic rewilding) 실험이 진행됐다. 훼손된 지역의 먹이사슬 상위에 있던 포식자 동물을 도입해 먹이사슬을 복원하는 원리다. 지난 1995년 미국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 회색 늑대를 도입한 사업이 대표적이다. 

회색 늑대는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서 1926년 사라졌다. 이후 엘크를 비롯한 사슴과 포유류의 개체수가 폭증해 키가 작은 나무와 풀뿌리도 사라졌다. 회색 늑대 도입 이후 사슴과 포유류의 개체 수가 줄어들자 식물들이 풍성해졌고, 소형 초식동물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을 먹이로 삼는 독수리도 옐로스톤을 찾아왔다. 국립공원과 연구진의 개입은 초기에 늑대 한 무리를 데려온 것이 전부였다.

진정한 자연보호 전략은 ‘그냥 내버려 두기’
수동적 재야생화(Passive rewilding) 사례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을 소개하는 최명애 교수. 사진=우리는 오늘도 내일을 끌어쓴다 웨비나 캡처

인간이 전혀 개입하지 않는 수동적 재야생화(Passive rewilding) 사례도 적지 않다. 재난이나 분쟁 등 의도치 않은 사건을 계기로 인간의 접촉이 차단된 지역에서 생태계가 복원되는 현상이다. 과거 동·서독의 접경지역이었던 그뤼네스반트(Grünes Band), 아프리카 대륙의 내전지역 국경 등에서 수동적 재야생화 지역이 발견된다. 원전 폭발 사고로 알려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도 수동적 재야생화의 대표 사례다.

체르노빌은 지난 1986년 주민들이 모두 이주한 이후 30년 이상 봉쇄 상태로 방치됐다. 1990년대 말 우크라이나 과학자들은 체르노빌에 야생동물 개체 수가 증가한 모습을 포착했다. 이후 2004년에 프르제발스키 야생마 30마리를 체르노빌에 방목하고 카메라 설치해 활동을 관찰했다. 관찰 결과 방사능 오염에도 불구하고 체르노빌의 생태계는 상당 수준 복원되어 있었으며, 유럽에 서식하는 대부분의 야생동물이 발견됐다. 최근 우크라이나 정부는 체르노빌을 ‘방사능 구역’에서 ‘방사능 및 생태계 보호구역’으로 재지정했다. 

우리나라에서 재야생화는 비주류 개념이다. 국내 환경 정책은 기술을 개발해 위기를 극복하는 문제 해결 방식을 되풀이한다는 것이 최 교수의 분석이다. 최 교수에 따르면 국내 환경사회학회와 공간환경학회 학자들은 20여년 전부터 재야생화 개념 도입을 제안해 왔다. 하지만 역대 정부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 환경 정책은 개발과 토건을 지향하는 근대적 논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최 교수는 “정책의 패러다임을 인간 중심에서 생태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시민의 생활공간에서 시작된다. 정책은 사회의 가치관을 반영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최 교수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재야생화를 표방하는 프로젝트를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도심에 옥상공원이나 도시텃밭을 조성하는 활동이 재야생화 프로젝트와 유사한 성격을 띈다. 

최 교수는 “최근들어 인공물로 가득한 도시 속에서 자연을 발견하고, 이를 확장하려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며 “거창한 일은 아니지만, 인간이 아닌 생물들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시도가 환경에 대한 근대적 사고방식을 내려놓을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castleowner@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