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재활치료 ‘횟수‧강도’, 의사 진료 통해 결정하는 것”

의료계, ‘의료기사법 법률개정안’ 두고 "국민건강권 침해"

기사승인 2021-05-29 04:44:02
- + 인쇄
“물리‧재활치료 ‘횟수‧강도’, 의사 진료 통해 결정하는 것”


[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의료계가 의사 등의 ‘지도’를 받아 업무를 수행하는 의료기사의 정의를 ‘의뢰 또는 처방’으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의료기사법)’을 두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의료현장에서 다양한 유형으로 이뤄지고 있는 의료기사에 대한 ‘지도’를 좁은 의미로만 해석해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8일 대한재활의학과의사회는 “의료기관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의사의 지도가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면서 법안 철회를 촉구했다. 

앞서 의원실 관계자는 쿠키뉴스에 “현재 ‘지도’라는 개념은 ‘원내’로 국한돼 있어서 고령의 어르신, 중증 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도 매번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의료기관을 방문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의료기사의 업무가 의사나 치과의사의 ‘의뢰’ 또는 ‘처방’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며 “의료기사를 의사나 치과의사의 지도 아래에서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으로 한정하는 것은 과잉 규제이다. 의료기관 방문이 어려운 사람들의 가정에 의료기사가 방문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법안 발의 배경을 밝혔다. 

또 “의료기사의 방문만으로 우려가 된다면 화상으로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기기 등의 발전으로 화상 상담이 가능해졌고, 간호사들도 방문간호활동을 하면서 여러 전자기기를 활용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효과를 확인하고 치료를 조정하는 행위는 의사의 ‘지도’와 ‘책임’ 하에 이루어진다는 게 의사회 측 입장이다. 
의사회는 “환자를 대상으로 물리치료나 작업치료(이하 재활치료)를 지도하는 상황은 전문과목별, 질환별, 환자별, 의료기관별로 다양한 형태로 이뤄진다”면서도 “환자의 과거력, 질병의 현재 상태, 재활치료에 대한 기대효과와 반응, 약물이나 수술 등 다른 치료와의 상관관계, 의료기관의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재활치료의 종류, 방식, 강도, 횟수, 기간 등을 결정하는 것은 의사의 연속적인 진료를 통한 것이다. 효과를 확인하고 치료를 조정하는 것은 의사의 지도와 책임 하에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입장을 전했다. 

이어 “개별 치료사가 재활치료를 시행할 때에도 기본적으로 의사의 지도와 책임 하에 환자의 진단, 과거력, 질병의 현재 상태, 재활치료에 대한 기대효과와 반응, 약물이나 수술 등 다른 치료와의 관계, 해당 의료기관의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의사가 결정한 위임의 범위 내에서 시행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의사회는 의료현장에서 이뤄지는 의사 지도의 다양한 사례들을 언급했다. 대표적으로는 ➀ 단순 물리치료(열전기치료)만 받은 사례 ➁ 단순 물리치료(열전기치료) 중 합병증 발생 사례 ➂ 물리치료(도수치료) 후 경과에 따라 다른 치료(신경차단술, 수술)로 전환하는 사례 ④ 물리치료(전기자극치료, 재활치료) 중 증상 호전에 따른 치료 변경 ⑤ 뇌졸중 환자에 대한 재활치료(회복기 성인재활치료) ⑥뇌성마비 어린이에 대한 재활치료(유지기 소아재활치료) 사례가 있다. 

일부 사례만 살펴보면, 우선 양쪽 무릎의 퇴행성관절염으로 만성 통증을 앓는 노인이 정형외과에서 통증 완화를 목적으로 동일한 열전기치료를 정기적으로 받는 사례가 있다. 이때 물리치료사의 업무는 지시한 부위에 열전기 치료기기를 부착하고 치료기기의 강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가정에서 환자 본인이 가정용 의료기기로도 할 수 있으며, 보건복지부는 이와 같은 단순 물리치료 행위를 한의원에서 했을 때 의료기사가 아닌 간호조무사도 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렸고 대법원도 그렇게 판결했다. 이런 경우에도 물리치료는 약물의 처방, 수술의 결정 같은 의사의 종합적인 임상진료의 일부로 이뤄진다. 

이와 함께 면역억제제 투여 중인 양쪽 무릎 퇴행성관절염 환자가 마취통증의학과에서 무릎에 열전기치료 후 열전기치료 부위의 피부감염(봉와직염) 초기 증상을 보여 의사가 이를 즉각적으로 중단시키고, 무릎 통증에 대한 치료를 약물치료로 전환한 사례가 있다. 봉와직염의 초기 증상을 놓치고 열전기치료를 계속할 경우 전신감염으로 악화될 수 있으나, 의학적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한 경험과 기능을 가진 의사가 환자의 과거력, 현재 상태, 물리치료의 기대효과, 다른 치료와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 후 환자의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것을 우려해 해당 물리치료의 중단을 지도한 것이다. 

뇌졸중 후 우측 강직성 편마비로 회복기에 재활의학과에 입원해 다양한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 사례도 있다. 중추신경계 손상에 대한 포괄적인 재활치료는 물리치료뿐만 아니라, 작업치료, 언어치료, 약물치료, 보조기의 사용 등 다양한 영역의 치료들이 포괄적으로 이루어지며, 단순히 기능적 재활치료의 반복 뿐 아니라, 신경학적 회복, 기저 질환, 전신 상태, 다른 재활치료와의 관계, 약물치료 등 다른 치료와의 관계 등 의학적 상태가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이와 관련한 치료의 종류, 횟수, 강도, 방식 등은 의사의 책임과 지도하에 시행돼야 한다. 

강직성 양마비성 뇌성마비 어린이가 재활의학과 외래를 방문해 꾸준히 유지기(생활기) 재활치료를 받는 사례도 있다. 소아재활은 성장과 발달이라는 길지만 역동적인 기간에 걸쳐 이뤄지는 연속적인 유지기 재활치료이다. 오늘의 재활치료의 효과를 다음 날 확인할 수 없지만 장기간 누적된 치료의 흔적은 반드시 아이에게 남는다는 특수성이 있다. 때문에 아동에 맞는 치료의 종류, 횟수, 강도, 방식 등은 의학적 상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사의 책임과 지도하에 시행돼야 한다.

의사회는 “의사나 치과의사의 지도 아래에서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한정한 것은 과잉 규제가 아니라 보건위생상의 위해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의사가 어디까지 의료기사에게 위임할 것인가는, 의료행위의 성질과 위험성 등을 고려해 개별 의사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판단할 사안이다. 그리고 재활치료 중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를 예방하고, 사고 시 즉각 대처하며, 재활치료 후의 경과를 적극적으로 관찰해 즉각적으로 치료 내용을 맞게 조정하는 의사의 지도는 국민을 보호하는 필수 요소”라고 말했다. 

대한수술중신경계감시학회도 해당 법안이 국민건강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학회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한정된 분야의 자격만 인정받은 의료기사가 문제의 개정안을 통해 단독행위의 진료나 검사 수행 시 국민 건강에 심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회는 “의료기사가 해당 분야에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환자 진료는 ‘독립적’ 행위가 아닌 ‘통합적’ 행위이기 때문에 현행 의사의 지도·감독 하에서도 물리, 작업치료 등 재활치료 과정에서 골절, 화상, 신경계 손상 등 다양한 부작용과 호흡곤란, 심정지와 같은 응급상황이 발생하고, 이에 대처해야 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며 “개정안대로 지도가 아닌 의뢰 또는 처방을 받아 의료기사가 독자적 의료행위를 수행한다면 부작용 발현 시 의사에 의한 즉각적이고 적절한 대응이 불가능해지며, 의료 행위 중에 발생하는 응급상황에서의 대처가 어려워 환자 안전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현재 보건의료계의 직역 간에는 전문성과 역할에 따라 다양한 관계가 설정돼 있고, 그 관계는 각 직역의 자율성(의료행위에 대한 중대한 결정권), 책임에 따라 지도-처방-의뢰로 구분된다는 의견도 있다.  

의사회에 따르면, ‘지도’의 경우 현재 의사-의료기사 간 관계가 될 수 있다. 이때 치료사는 의료기관에 소속돼 의사의 지도하에 위임을 받은 일부 의료행위를 시행하고 있고, 의료행위에 대한 중대한 결정권과 책임은 모두 의사에게 있다. ‘처방’의 경우는 현재 의사-약사 간 관계가 된다. 약사는 의료기관에 독립적으로 약국을 단독 개설해 의사의 처방에 따라 규격이(성분, 용량, 안정성 등) 명확한 정해진 약을 조제한다. 의료행위에 대한 중대한 결정권은 의사에게 있고, 처방까지의 책임은 의사에게, 조제에 따른 책임은 약사에게 있다.

‘의뢰’는 현재 의사-의사 간 관계이다. 의사는 의료기관을 개설하거나 소속돼, 각각의 전문분야에 대해 환자 진료를 서로 의뢰하고, 의료행위에 대한 결정권과 책임은 모두 각각의 의사에 있다. 

의사회는 “현재 의료기사에 대한 의사의 지도라는 개념이 때때로 획일적·구체적이지 못하고 여러 상황에 따라 다양하고 다소 추상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료기사 업무의 자율성과 책임이 위의 ‘처방’이나 ‘의뢰’와 같다고 볼 수는 없겠다”라면서 “그러나 본 법안은 의료기사에 대한 의사의 ‘지도’가 ‘의뢰 또는 처방’으로 변경될 때 발생하는 의료행위에 대한 결정권과 책임의 변화에 대한 충분한 숙고와 사회적 합의가 없었고, 행정 및 재정적 준비도 전혀 없었다”고 꼬집었다.

의사회는 “해당 개정안은 법안의 취지인 재택서비스 강화를 넘어 보건의료인 면허체계의 큰 변화를 야기하며, 그동안 쌓아온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근간을 바꾸는 사안”이라며 “의료기관을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중증장애인과 초고령화 사회를 대비해 재택(방문)재활 같은 재택의료를 준비해야할 필요가 있지만, 기존 보건의료체계의 근간을 훼손하며 준비하기보다 기존 보건의료체계의 장점은 살리면서 앞으로의 사회적 요구에 부응할 재택의료 제도를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증장애인 등을 위한 재택 재활 문제는 의료기사법의 ‘지도’를 ‘의뢰 또는 처방’으로 개정하기 보다는 ‘지도’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대안이다. 재택 재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의료계 내부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데, 의료기관이 중증장애인 등을 위해 재택 재활을 제공할 의지가 있더라도, 그동안은 의사-의료기사간 지도의 범위가 동일한 물리적 공간인 의료기관 내로만 한정돼 제공하기가 어려웠다”며 “이를 통해 환자는 의료기관에서 받았던 치료와 연속성 있는 치료를 의사의 책임 하에 통합적이고 전문적으로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회 또한 “신체적 문제뿐만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장애인에게 양질의 재활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포괄적이고, 다학제적 접근을 해야 한다. 재활의학의사의 지도 감독 하에서 여러 직종의 의료기사가 모여 포괄적, 다학제적 접근을 하는 것에도 어려움이 따르는데 처방 또는 의뢰를 통해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질 낮고, 편협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며 “미충족 서비스에 대한 요구로 사회적으로 이중 비용을 부담해야 할 수 있다. 법안 철회를 요청한다”고 전했다. 

suin92710@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