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비를 평론하다…크리에이터 ‘김일오’ [K팝을 재창조하는 사람들②]

기사승인 2021-07-26 07: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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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비를 평론하다…크리에이터 ‘김일오’ [K팝을 재창조하는 사람들②]
크리에이터 김일오 캐릭터. 유튜브 제공.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뮤직비디오(뮤비)는 3분짜리 종합 예술이다. 그 안엔 음악이 있고, 이야기가 있으며, 상징과 은유, 오마주가 빛을 발한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김일오(15KIM)는 뮤비를 평론의 영역으로 끌고 왔다. 2019년 유튜브 채널을 연 그는 가수 선미의 ‘누아르’를 시작으로 뮤비 70여편을 리뷰해 14만 명 넘는 구독자를 모았다. 지난 5월부터는 Mnet ‘무대에 진심인 편’을 진행하며 TV 시청자도 만나고 있다. 뮤비에 담긴 이야기와 메시지를 해석하는 크리에이터 김일오를 쿠키뉴스가 서면으로 만났다.

“뮤비 트렌드와 MZ세대 특성 고려하니 ‘뮤비 해석’ 가능성 보여”
Q. 유튜브 채널을 열기 전부터 뮤비를 즐겨 봤던 것으로 알고 있다. 뮤비를 분석·평론하는 콘텐츠가 어떤 면에서 경쟁력 있을 것이라 생각했나.

“최근 몇 년 간 콘텐츠 플랫폼에서 드러난 두 가지 특성이 확신을 줬다. 먼저 뮤비 트렌드다. 최근엔 단순히 보기 좋은 뮤비뿐 아니라, 해석할 여지를 남겨두거나 독자적인 세계관을 활용한 뮤비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두 번째는 MZ세대의 특성이다. K팝 뮤비를 가장 많이 즐겨보는 MZ세대는 단순히 콘텐츠를 감상하기만 하는 것을 넘어, 감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의문점을 바로 찾아보고 온라인에서 의견을 공유하며 확산시키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K팝 팬덤을 중심으로 시청자가 뮤비 해석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확신했다.”

Q.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뮤비는 러닝타임이 짧고 상징과 축약이 많아 의미를 찾기가 까다롭다. 어떤 방식으로 뮤비를 해석하는지 궁금하다.

“우선 뮤비를 낸 아티스트와 뮤비 감독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작업 속도나 결과물에서 차이가 난다. 해석은 뮤비 제작과 반대 순서로 이뤄진다. 완성본을 보고 장면을 단순화해 표로 정리한다. 그러면 인물이나 상징물, 장면 간 인과관계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영상 하나를 완성시키는 데 걸리는 시간은 뮤비에 따라 제각각이다. 나와 잘 맞는 뮤비는 하루 만에도 (해석 영상을) 만들지만, 길게는 두 달 정도 걸리기도 한다.”

Q. 자전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 오마주 기법을 사용한 작품, 세계관을 담은 작품 등 뮤비 성격에 따라 접근방식도 다를 것 같다.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뮤비를 볼 땐, 아티스트 인터뷰를 많이 찾아본다. 아이유 ‘라일락’의 경우, ‘저의 20대를 끝까지 지켜봐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 화려하게. 쓸쓸하지 않게’(GQ)라는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왜 뮤비가 즐겁고 화려한 파티로 표현이 됐는지 추측해볼 수 있었다. 특정 작품을 오마주한 뮤비는 뮤비와 원작을 이어서 해석한다. 왜 이 작품을 오마주했는지, 이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표현하려 했는지를 생각하며 접근한다. 때론 내 지식을 활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그룹 에스파의 세계관을 분석할 땐 메타버스 등 IT 개념, 실존주의 철학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다만 이 경우, 인용한 근거의 정확성이 중요해 전문서적이나 논문을 참고하기도 한다.”

Q. 뮤비를 분석하면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경계하는 편인가.

“곡과 뮤비가 지닌 매력을 끌어올리고, 시청자들이 다양한 시각으로 뮤비를 감상하도록 도와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감상의 폭을 넓혀드리자’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또 내 주관적인 감상과 함께 창작자의 기획 의도를 전달하는 역할도 하다 보니, 정확한 정보를 담아내려고 신경 쓰고 있다. 누군가에게 유해할 수 있는 콘텐츠는 만들지 않는다. K팝과 연예계를 자극적으로 다루는 사례가 많아서 시청자들도 지쳤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나친 부분이 다른 이에겐 트리거(트라우마를 발생시키는 자극)가 될 수 있음을 유념하면서, 음악과 뮤비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불편하지 않게 즐길 수 있도록 채널을 운영하려 한다.”
[ENG] [뮤비해석] 이민수&김이나 조합이 남긴 섬뜩한 띵곡🤡ㅣ써니힐 'Midnight Circus'
뮤비를 평론하다…크리에이터 ‘김일오’ [K팝을 재창조하는 사람들②]
김일오는 그룹 써니힐의 ‘미드나잇 서커스’(Midnight Circus) 뮤비를 보며 해석하는 재미를 알았다고 한다. 유튜브 캡처.

K팝 팬들 토론하는 광장…“나와 다른 해석, 언제든 환영”
김일오의 콘텐츠는 댓글로 완성된다. 한 편의 뮤비를 두고 여러 해석이 오가는 것을 김일오는 반겼다. 그는 선미 ‘꼬리’ 뮤비 해석 영상에 달린 ‘같은 걸 보고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게 예술의 순기능’이라는 댓글을 떠올리며 “크게 공감했다”고 말했다.

Q. 시청자 반응 가운데 기억에 남는 댓글이 있나.

“선미 ‘꼬리’ 뮤비를 다룬 영상에 ‘이번 해석 영상에는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주시는 분들이 많은 걸 보고 이 노래와 뮤비가 예술적이라는 방증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걸 보고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게 예술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곡이 그런 느낌’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크게 공감했다. 내 의견과 다른 견해가 댓글에 적히면 불편하지 않느냐고 묻는 분도 계신데, 오히려 많은 분들이 자신만의 감상과 견해를 제시해주실 때 내 영상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Q. 콘텐츠를 제작하며 가장 뿌듯했던 때는 언제인가.

“최근 ‘무대에 진심인 편’을 단독 진행하게 됐다. 인터넷 플랫폼이 아닌 브라운관을 통해 시청자를 만날 수 있다는 점, 뮤비 해석뿐만 아니라 숨은 보석 같은 무대를 리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 뿌듯하고 감사하다. 또, ‘이 곡과 뮤비의 숨은 매력을 알게 됐다’, ‘몰랐던 아티스트와 곡을 알아가게 됐다’ ‘덕분에 이 아티스트의 팬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행복하다. 아티스트나 뮤비 감독님이 댓글을 적어주거나 SNS에 내 영상을 언급해줄 때도 뿌듯하다.”

Q. 뮤비의 매력은 무엇인가.

“뮤비 대부분이 3~5분 분량으로 구성돼 있다.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노래 하나를 중심으로 기승전결이 이뤄진다는 것, 제한된 환경 속에서 음악과 함께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것이 매력으로 느껴졌다. 해석할 여지가 많거나 세계관을 활용하는 뮤비는 게임처럼 풀어보는 재미가 있고, 더 케미컬 브라더스의 ‘렛 포에버 비’(Let Forever Be)나, DPR 라이브의 ‘재스민’(Jasmie)처럼 음악과 영상미가 잘 어우러진 작품들도 무척 좋아한다. 내가 이걸 공짜로 봐도 되나 싶을 정도다.”

Q.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

“문학이나 예술 작품은 감상자의 해석으로 가치가 높아지는 경우가 있는데, 뮤비는 해설과 평론을 왜 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이 가끔 있었다. 그래서 뮤비 평론이 더욱 대중화되고, 나아가 숨어있는 좋은 작품을 다양한 방식으로 재조명하고 싶다. 보석 같은 작품들을 널리 소개하면서 많은 분들과 그 작품에 관해 즐겁게 이야기하는 소통의 장을 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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