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산복도로 버스정류장에 ‘상어’ 등장한 까닭은

기사승인 2021-09-15 17:2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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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산복도로 버스정류장에 ‘상어’ 등장한 까닭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혈세로 세운 공공 조형물이 시민의 외면을 받고 있다.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한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조형물 사진이 지난 13일 올라왔다. 평범한 버스정류장 지붕 위에 상어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평범한 상어가 아니다. 몸통은 분홍색이다. 팔다리가 달렸다. 흡사 상어 인형탈을 쓴 사람이 버스정류장 지붕 위를 기어가는 모습이다.

“재미있다”는 네티즌이 있었지만, 조형물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공포스럽다”, “지나갈 때마다 왜 설치했는지 의문이 든다”는 댓글이 달렸다. “설치에 들어간 세금은 얼마일까”라는 냉소적 반응도 있다. 
부산 산복도로 버스정류장에 ‘상어’ 등장한 까닭은
‘상어탈을 쓴 사람’ 조형물이 설치된 부산 동구 초량동 소재 버스정류장. 네이버지도 캡처

 

확인 결과 해당 정류장은 부산 동구 초량동에 있다. 설치된 조형물은 변대용 작가의 <갈증이 나다> 시리즈 중 하나인 ‘상어탈을 쓴 사람’이다. 작가는 현대사회 속 인간은 순수함과 욕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고 봤다. 사슴과 페트병, 상어를 함께 배치해 작가의 의도를 그려냈다. 작가는 순수함을 노란색 사슴으로 형상화했다. 인간은 흰색으로 색칠된 페트병으로, 그리고 욕망은 분홍색 상어로 표현했다.

지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부산의 대표적 산복 도로(도심의 산허리를 둘러싸고 형성된 도로) 초량동 일대에서 진행된 공공 미술 프로젝트 일환으로 설치됐다. 지역 예술가와 지역민 협업 프로젝트다. 3.1km 구간에 해당 조형물 외에도 꽃게 모양의 벤치, 벽화 등 14개 미술 작품이 함께 들어섰다. 프로젝트 전체 사업비로 국비와 시비를 합해 2억원 정도가 소요됐다. 

부산 동구청 측은 “조형물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는 민원이 최근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프로젝트가 산복도로 일대에서 이뤄지다 보니 버스정류장 위에도 작품이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작품에 대한 안내문은 현재 없다. 향후 설치가 필요한지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화예술진흥법 제9조는 1만㎡ 이상 건축물이나 시설을 신·증축할 때는 건축비용의 1% 이하 범위에서 회화, 조각 등 미술 작품을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지자체는 이를 관리할 의무가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에 따르면 지난 2019년 6월 기준 전국에 설립된 공공조형물은 6287점, 추정금액은 1조 1254억원 규모다.
부산 산복도로 버스정류장에 ‘상어’ 등장한 까닭은
송도 센트럴파크 ‘갯벌 오줌싸개’ 조형물. 연합뉴스

지자체는 지역 홍보 차원에서 경쟁적으로 조형물을 세우고 있지만 공감을 얻지 못하거나 흉물로 방치된 사례가 적지 않다. 인천 송도국제도시 센트럴파크에 세워진 동상도 그 중 하나다. 김영걸 작가의 ‘갯벌 오줌싸개’라는 작품으로 과거 송도 갯벌에서 놀던 남자 아이들의 오줌싸기 놀이를 표현했다. 지난 2011년 설치됐다. 그러나 동상의 체격이나 표정이 성인 남성처럼 느껴져 불편하다는 민원이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국민신문고에 여러건 접수됐다.

행정안전부, 소방청 등이 있는 세종시 나성동 정부세종2청사(17동) 앞에 있던 금속 조형물은 “공포스럽다”는 시민 항의로 철거수순을 밟았다. 안초롱 작가의 ‘흥겨운 우리가락’이라는 조형물로 한복 차림에 갓을 쓴 남성이 전통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을 표현했다. 지난 2015년 설치됐다. 정부청사관리본부가 공모를 통해 총 11억여원을 들여 설치한 조형물 6개 중 하나다. 그러나 금속 재질에 조명까지 더해 ‘저승사자’를 연상시킨다는 평가를 받았다. 재난을 관리하는 소방청 이미지와도 맞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결국 지난 2019년 12월 철거 신세가 됐다. 
부산 산복도로 버스정류장에 ‘상어’ 등장한 까닭은
정부세종청사 앞에 설치됐던 ‘흥겨운 우리가락’. 연합뉴스

권익위는 조형물 난립, 혈세 낭비를 막기 위해 제도 개선을 권고했지만 이행률은 낮은 실정이다. 권익위는 앞서 지난 2014년 실태조사 후 △공공조형물 건립, 관리 등에 관한 조례 개정 △공공조형물 구입 및 건립절차의 공정성 확보방안 마련 △지역주민 의견 수렴 등 사업추진의 타당성 확보방안 마련 △사후관리시스템 구축 등을 이행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2019년 이행실태 점검결과에 따르면 243개 지자체 중 106개 지자체가 공공조형물 관련 조례를 마련하지 않았다. 또 조형물 설치 현황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지자체도 상당수 인것으로 드러났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결국은 투명성과 절차의 문제”라며 “일부 지자체 단체장, 소수 공무원이 임의로 결정하고 진행하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계속해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지역 주민들은 이미 논의가 끝난 뒤 조형물이 건립된 이후에야 알게 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정 소장은 “아예 논의 초반부터 시민 참여가 확보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공공조형물뿐만 아니라 가로등, 보도블록 디자인 등도 마찬가지다. 지역 주민이 자신들이 사는 공간을 어떻게 꾸밀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jjy4791@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