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이나 할까?’ PD “희망 포착해 보여주는 게 내 역할” [쿠키인터뷰]

이은호 / 기사승인 : 2021-11-17 07: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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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TV ‘톡이나 할까?’.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남산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후암동의 한 카페. 배우 박보영과 작사가 김이나가 서로를 마주보고 앉는다. 어색함에 키득대기도 잠시. 둘은 휴대폰을 들고 말없이 대화를 시작한다. ‘토독토독’ ‘토도도독’…. 두 사람을 연결해준 통로는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 오가는 이모티콘에 정이 싹트고,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자 깊이 숨겨둔 이야기가 방언처럼 터져 나온다.

지난해 9월 시작해 지난 16일 막을 내린 카카오TV ‘톡이나 할까?’는 짧은 문자 메시지를 통한 대화가 얼마나 농밀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지 보여줬다. “게스트와 MC가 마주 앉아 미묘한 표정 변화를 나눈 덕분이에요. 음성으로 꺼내기 민망한 이야기들은 오히려 텍스트로 표현하기가 쉽기도 하고요.” 프로그램 종영을 앞두고 화상으로 만난 ‘톡이나 할까?’ 권성민 PD는 “카카오톡 대화에선 감정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톡이나 할까?’를 보면 (음성 대화보다) 훨씬 섬세한 감정이 오고 갔다”며 이같이 말했다.

‘톡이나 할까?’는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고민하다가 나온 결과물이다. 세로로 긴 화면을 실제 카카오톡 대화창으로 채워 몰입감을 높이고, 메시지를 썼다 지우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대화 당사자들 간의 설렘을 시청자도 느낄 수 있게 했다. 권 PD는 “세로 화면에서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콘텐츠, 일상에 깊이 스며든 모바일 기술이 뭘까 고민하다가 토크쇼를 모바일 형식으로 풀어낸 ‘톡이나 할까?’를 기획했다”며 “프로그램이 이렇게 오래 갈 줄은 몰랐는데, 시청자들과 출연자들이 좋은 반응을 보내준 덕분”이라고 소회를 전했다.

‘톡이나 할까?’를 연출한 권성민 PD.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김이나는 유머와 감수성을 두루 갖춘 대화의 기술로 ‘톡이나 할까?’를 견인했다. “섬세하고 감성적인,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의외로 능글맞은 면모도 가졌더라고요. 대화 능력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카카오톡 토크쇼를 낯설어하는 박보영에게 ‘워낙 동안이라 조카 사진이 셀카인 줄 알았다’고 능청을 떨다가도, 광희를 보며 ‘땔감을 자처하는 친구들을 보면 늘 걱정됐다’고 위로하는 김이나의 화술은 ‘톡이나 할까?’의 화룡점정이었다. 영화번역가 황석희, 일러스트레이터 키크니, 소설가 정세랑 등 ‘김이나가 진행하니까’라며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들도 여럿이라고 한다.

“김이나씨는 질문을 읊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깊이 고민해주는 MC였어요. 많은 MC들이 동의할 수 없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있어도 PD가 원하면 그냥 진행하거든요. 그런데 김이나씨는 자기가 진심으로 설득되지 않으면 티 나게 어색해하더라고요. 그래서 연출진에겐 김이나씨를 설득하는 작업이 중요했어요. 우리가 제시한 주제가 어떤지, 게스트 생각에 어떻게 반응할 건지, 이런 구성은 어떤지…. 그 과정에서 우리가 다루려는 이야기가 더욱 섬세해지고 구체성을 가졌습니다.”

‘톡이나 할까’ 최종회는 이런 김이나를 위한 헌정 방송이다. 그가 14개월 간 65명의 게스트에게 던진 질문을 그에게 되돌리며 지금의 김이나를 묻는다. 방송 후반부엔 김이나와 역대 게스트, 시청자들이 과거의 자신에게 보낸 ‘나와의 채팅’이 화면을 채운다. 권 PD는 “내가 이 일을 잘하는 건가를 늘 고민한다. 한때는 좀 더 치열하게 고민했는데, 지금은 ‘내가 못하는 걸 흉내 내지 말고 내 손에 있는 일을 잘 하자’는 쪽”이라며 “과거의 나에게 말걸 수 있다면 ‘지금 네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 할 테니, 네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렴’이라고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권성민 PD.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2012년 MBC에 입사한 권 PD는 ‘위대한 탄생’, ‘황금어장-무릎팍도사’ 등에 조연출로 참여하다가 2019년 첫 단독 연출작인 ‘가시나들’을 내놨다. 경남 함양 문해학교를 배경으로 한글 공부에 여념 없는 노년 여성들과 그들의 ‘애기짝꿍’인 배우·아이돌 가수들의 우정을 다룬 프로그램이었다. 존재감이 과소평가된 이들에게 조명을 비추고, 당사자를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재미를 주는 권 PD의 솜씨는 이때부터 빛을 발했다. 와글대고 시끌벅적한 버라이어티 예능과는 한 발 떨어져 있어 간혹 시사·교양 PD로 오해받는다지만, 그는 “예능이라는 갈래 안에서 여러 가지를 해보고 싶다”는, ‘뼛속까지 예능 PD’다.

“예능은 제약이 적어서 창작자가 운신할 수 있는 폭도 커요. 다양한 이슈에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죠. 제가 사람 사는 이야기를 자주 다루는 이유는 제 재능이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깔깔깔 웃게 만드는 감각이 떨어지는 걸 수도 있겠죠. 다만 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며 귀 기울이는 것도 재미의 일종이라고 봐요.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순간을 포착해서 보여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