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환 리포트] 위스키 온 더 락

글·안태환 의사, 칼럼리스트

기사승인 2022-04-27 08: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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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환 리포트] 위스키 온 더 락

온 더 락(On the Rocks)은 문장 그대로 “바위 위에”라는 뜻이다. 유리잔에 얼음을 서너 개 넣어 그 위에 술을 따르면 마치 바위에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는 표현이다.
딱히 위스키를 선호하지 않은 탓이겠지만 한동안 잊고 있었던 주류 용어인 온 더 락은 장안의 화제인 드라마‘우리들의 블루스’속에‘위스키 온 더 락’이라는 노래가 삽입되며 희미하고 가느다란 추억을 소환했다.
 
개업의로서 모든 것이 열정과 생경함으로 치열했던 오래 전, 다니던 성당에서 동갑내기 신도인 이 아무개를 만났다. 그는 열두 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고국으로 다시 돌아온 그는 생김새는 영락없는 한국인이었지만 모국어 발음은 어눌한 경계인이었다. 

그는 유독 위스키를 좋아했다. 술을 통해 친구들과 대화하고 낯선 고국 생활에 연착륙을 시도했다. 이런 그와 가까워진 사람들은 그를‘이스키’로 불렀다. 그가 언제부터 위스키에 탐닉했는지 물어보진 않았으나 애칭에서 드러나듯‘위스키 홀릭’은 분명했다. 젊디젊은 시절, 간혹 그와 어울려 한강 위, 새빨간 노을을 안주 삼아 몇 병의 위스키를 마시고 한껏 노래를 부르다 목이 쉰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시대의 상실감, 대책 없는 낭만 같은 게 밀려오면 살아갈 인생 걱정에 서로를 위로하던 그는 제법 괜찮은 벗이었다.

가늠하기 어렵지만 나이 마흔이 넘어가던 시기였던 것 같다. 병원 일이 바빠지고 숨 돌릴 틈도 없는 의사로서의 삶은 물젖은 솜 마냥 무거웠다. 그러다 보니 위스키 40도 순도는 언제부터인가 버거운 술이 되어져 갔다. 자연스레 이스키와 함께 하는 일상도 데면데면해져 갔다. 다시 그를 만난 것은 얼마 전의 일이었다. 극심한 인후통을 호소하며 병원에 찾아온 것이다. 그는 나이보다 더 늘어진 주름 낀 얼굴에 어눌했던 발음도 말재간도 훌쩍 늘어 있었다. 몇 해 전부터 성당에도 통 나오지 않는 저간의 근황이 궁금하던 차였는데 반가운 마음으로 저녁 식사 약속을 잡았다.   

거리 두기가 완화되고 벚꽃이 지기 시작하는 4월의 봄날 저녁, 너무도 오랜만에 그와 마주 앉았다. 묵었던 이야기들은 봇물처럼 이어졌다. 제법 오래된 서로의 시간을 살다 다시 마주한 그는 마모된 체력 속에 주량도 연약해져 있었다. 술이 취하자 ‘영원한 것은 없어. 떠난 모든 것들에 미안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자유야’를 되뇌었다. 장마를 앞둔 봄비처럼 외로움이 뚝뚝 흘러내렸다. 그에게 너무 오래 동안 무심했다.

술을 같이 나눌 친구가 예전처럼 주변에 있지 않다는 이스키는 근간의 빈약한 인간관계를 한탄했다. 인간은 적절한 관계 속에서 행복을 느끼지만 대개의 사람들이 결핍을 실감하거나 불편해하지 않은 이유는 사실 삶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그의 사람 갈증이 서늘한 도수의 위스키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저마다 생존을 위한 시간들이 버거운데 출근을 뒤로하고 40도의 술을 아무런 근심 없이 즐길 위인이 그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그를 피하는 이들이 많아졌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도 그러한 범주에 드는 위인이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술에 있어서는 창대한 그의 주량은 대적하기가 늘 버거웠다. 본디 20도 소주에 익숙한 타고난 습성인데도 두 배가 넘는 도수를 선호하는 그로 인해 술병이 난 적도 허다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위스키의 알코올 도수는 여전히 과하고 버겁다.

짝을 만나지 못한 그는 여태 혼자다. 자신의 견고한 세계에서 삶을 관조하는 그의 지난 이야기는 럼주의 독성처럼 강렬했다. 주문한 식사는 방치한 채 위스키를 연신 마셔대며 버거운 일상을 토하는 그의 눈가는 어느새 젖어 있었다. 정제되지 않은 감정들을 빨래처럼 널어놓는 그의 눈물을 보고 있으니 시나브로 자정이 가까워졌다. 사랑하는 아들 멤논을 잃은 이후,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흘리는 눈물이 아침 이슬이 되었듯이 밤이 깊도록 마시던 그의 위스키도 새벽을 향해 눈물로 산화되고 있었다. 순간, 그의 눈물이 고단했던 삶을 지탱해 주는 억센 힘줄 같았다.

먼 외국에서 건너와 주변인으로 살아온 그였다. 머리가 덜 여물었던 시절, 동창도 친구도 없이 삶이 치열한 나라에서 건조하고 힘겨웠을 것이다. 위스키는 그 모진 외로움을 달랬을 벗이라는 생각이 드니 잊고 있었던 관계의 부채감이 엄습했다. 그제 서야 내일 일에 대한 근심을 내려놓고 마시던 술, 한 병을 더 주문했다. 독하고 쓴 내 친구 이스키의 고된 인생을 위하여, 심장을 데워 줄 위스키 온 더 락으로.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