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 난 물고기, 세상을 휘젓다 ‘모어’ [쿡리뷰]

기사승인 2022-06-22 06: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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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 난 물고기, 세상을 휘젓다 ‘모어’ [쿡리뷰]
영화 ‘모어’ 포스터. (주)앳나인필름

서울 이태원동의 한 클럽. 지하 계단을 내려가면 그를 만날 수 있다. 깃털과 반짝이로 잔뜩 멋을 낸 채 하이힐을 신고 춤추는 그를. 그의 이름은 모지민. 사회적으로 고정된 성별 정의에서 벗어나 자신을 표현하는 드랙 아티스트다.

영화 ‘모어’(감독 이일하)는 드랙 아티스트 모지민의 성장담을 그린 뮤지컬 다큐멘터리다. 전남 무안에서 나고 자란 모지민은 어려서부터 동네 유명 인사였다. 가수 이상은의 ‘담다디’를 부르며 춤을 추는 솜씨가 대단했다. 국민체조를 무용처럼 하는 그를 중학교 교사가 눈여겨보고 발레를 추천했다. 남성 신체로 태어난 삶을 “내가 선택하지 않은 무기징역 불행”이라고 말하는 그는 발레를 접한 뒤 “언제든 날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고 한다.

‘모어’는 모지민을 통해 개인에게 집단의 특성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의 폭력을 드러낸다.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던 모지민은 꿈에 부푼 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과에 입학했지만, 학교 선배는 ‘그 여성성을 버리라’고 그를 몰아붙였다. 군은 성 정체성을 밝힌 그에게 ‘정신질환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서기 2000년이 오면 (중략) 그때는 전쟁도 없고 끝없이 즐거운 세상.” 영화에 삽입된 가수 민해영의 노래 ‘서기 2000년이 오면’엔 이런 가사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서기 2022년에 사는 모지민에게,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한 삶은 매일이 투쟁이고 전쟁이다.

털 난 물고기, 세상을 휘젓다 ‘모어’ [쿡리뷰]
‘모어’ 스틸. (주)앳나인필름

그렇다고 영화가 무겁거나 슬픈 분위기로 일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명랑하다. 또 자유롭다. 때론 통쾌하다.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한 모지민이 동성애 반대 시위대 앞을 행진하듯 지나가며 춤추는 장면이 특히 그렇다. 이때 흐르는 음악은 가수 정수라가 1991년 낸 노래 ‘아! 대한민국’.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망설이는 한국과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이란 가사 사이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이 이 사회의 모순을 꼬집는다.

“한국에서 태어나 산다는 데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시나요 / 때로는 사막에 내던져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시나요”(‘신의 놀이’), “내가 사랑할 그 사람을 찾아서 / 내가 되고 싶은 가족을 찾아서”(‘가족을 찾아서’), “이 지구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이 만들었다네”(‘좋은 소식, 나쁜 소식’) 등 작품에 삽입된 싱어송라이터 이랑의 노래들은 마치 모지민을 위해 쓰인 것처럼 그의 삶과 어우러진다. 모지민 절친한 사이인 이랑은 음악으로 참여했다. 뮤지컬 영화 ‘헤드윅’을 연출하고 주인공을 연기한 존 카메론 미첼도 영화에 깜짝 등장한다.

모어는 우리말로 털 난 물고기(毛漁)를 뜻한다. 육지에도 바다에도 속하지 않지만 그는 분명하게 존재한다. 자신을 남성 혹은 여성 중 하나로 규정하려는 세상을 휘저으며, 모어 모지민은 자신의 존엄성을 애타게 지킨다. 이런 분투기를 담은 ‘모어’는 지난해 9월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했고, 제47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독불장군상, 제10회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아빈 크리에이티브상을 받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글 자막이 함께 제공된다. 2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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