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면 '법과 원칙'의 정부...자유와 상상력 압박

[MZ세대를 위한 '현대문으로 읽는 근대뉴스' 해설]
1930년대 '구호법' 제정 뒤에 가려진 예비 검속 음모

기사승인 2022-12-14 11: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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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8월 3일 

1938년 현재 60세 이상의 노쇠자 2만3345명, 13세 이하의 아동 6618명, 불구 폐질 상이 정신 또는 신체장애자 6350명 등 총 합계 3만7107명은 부양과 보호자를 갖지 못하여 전혀 생활의 길이 끊어진 사람들이다.

이 가운데 구휼금 국비 또는 지방비로 구제를 받아온 사람의 수는 약 3000명으로 전체의 약 3분의 1에 불과한 형편이니 전체로 볼 때 이것은 도무지 문제도 되지 않는 수이며 더구나 구 수는 매년 격증하고 있음으로 조선의 피구호자 대책 문제는 더욱더 간절하다.

부양자를 갖지 못한 노인과 아동들이 헐벗고 굶주려 길가에서 헤매는 정황은 인도상으로 보아도 견디기 어려운 비참한 일이거니와 사회문제화한 재범 문제에 있어 그 재범의 대부분이 무의무탁한 소연인 사실을 생각하면 사회 정책상으로 보아도 결코 소홀히 취급 되어서는 안될 시급한 문제다. (이하 생략·출전 조선일보)
자고 나면 '법과 원칙'의 정부...자유와 상상력 압박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대통령. 

 
□ 해설 

당시 신문의 사설 내용 일부이다. 식민지 시대 조선인은 수탈과 착취의 대상이었음에 분명하다. 홍수와 가뭄, 콜레라와 장티푸스, 나병(한센병)과 성홍열 등으로 유랑걸식하는 이들이 도처에 널렸던 시대다.

1937년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국가 예산을 전쟁에 쏟아 부어 ‘구호’라는 말은 입 밖에도 꺼내기 어려웠다. 조선 대중은 기근에 시달렸다. 이러한 문제를 조선총독부가 내팽개쳐 두자 ‘내지(식민지에서의 본토 일본을 지칭)’ 구호법에 준하는 법을 제정해 달라고 나섰다.

그리고 조선총독부는 책상머리에서 통계를 잡았는데 2000여 만 조선인 중 3만7000여 명 정도가 구제 대상자라고 발표했다. 그 당시 한센병 환자만도 2만 명이었는데 말도 안되는 통계다. 참고로 6·25전쟁 직후 한센병 환자는 4만 여명에 늘어났다.

그런데 피압박 민족에겐 선량한 지배자란 있을 수 없다. 조선의 친일파들은 “개명한 일본 정부가 근대 구호제도를 우리 조선 대중에게 펼치고 있다”고 떠들었지만 일제는 구호법 세칙 등을 통해 취객, 감염병자, 자살 기도자 등을 예비 검속하겠다는 조항을 달았다.

이 속내는 구호법을 이용해 독립운동 세력을 합법적으로 체포하겠다는 뜻이다. 취객으로 몰고, 감염병 및 정신질환자로 몰아 치안을 해할 우려가 있다는 죄목을 씌우면 되는 것이다.

1939년 9월 중일전쟁이 격화되면서 경성 중선지구(서울 중구) 장충단공원 일대를 중심으로 본정경찰서 경찰 인력이 부랑자를 검색한다며 단 하룻밤 동안 150명을 체포한 예에서도 엿볼 수 있다.

요즘 우리 정부는 권력이 전쟁과 재난 등 긴급 상황도 아닌데 자고나면 “법과 원칙을 지키겠다”고 매일 강조한다. 포퍼먼스로 비쳐질 정도다.

‘법과 원칙’이 정권의 슬로건이 돼서는 안된다. 그러한 ‘위축의 강요’는 국민의 자유와 상상력을 압박한다. 저 거대한 중국은 자유와 상상력의 빈곤으로 기술 산업은 뛰어나나 콘텐츠가 없다. 왜 없겠는가?

전정희 편집위원 lakajae@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