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없는 삶, 죽은 것과 마찬가지죠” [꺾이지 않는 청춘②]

중국 대학원생 & 다꾸 유튜버 인터뷰

기사승인 2022-12-15 11:3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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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2030 청년들의 삶은 고달프다. 급등하는 물가와 취업 한파는 청년들의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마냥 주저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힘든 시기에도 꺾이지 않는 도전정신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청년들이 있다. 쿠키뉴스가 생계형 알바 시장에 뛰어든 2030 청년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편집자주>

“열정 없는 삶, 죽은 것과 마찬가지죠” [꺾이지 않는 청춘②]
면세점 근무 당시 고객과 함께.   사진=본인 제공

골곡진 인생사의 주인공 

고현경(가명·31)씨는 현재 중국의 모 대학원에서 중국어를 전공하는 학생이다. ‘코로나 학번’인 탓에 입학부터 지금까지 원격 수업만 듣고 있다. 

“중국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 입국 자체를 통제하는데 그것 때문에 엄청 우울했어요. 중국에서 친구들도 사귀고 즐겁게 대학원 생활을 하는 걸 바라왔는데 코로나로 인해 물거품이 돼 버린거죠.”

고씨는 일찌감치 중국어 교사를 꿈꿨다. 중국어를 좋아하기도 했고 어릴 때부터 언어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고 가르치는 직업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교사를 하면 잘 할 자신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31살인 고씨는 역경과 고난의 인생을 살아 왔다. 중국어 교사로 진로를 정한 고씨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인천의 모 대학교 중국어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4년치 학비를 낼 형편이 안 됐다. 알바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했고, 한 학기씩 끊어 2년 간 학교를 다녔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가족들은 어릴 때 뿔뿔이 흩어졌고, 고씨는 스무살 때부터 돈 한푼 받지 않고 성장을 했다. 생활비며 식비, 주거비에 학비까지 스스로 해결을 해야 했다.

“한학기 다니고 한학기 휴학하고 이 방법 밖엔 없었어요. 4학년 때까지 이렇게는 못다니겠더라고요. 공부는 계속 하고 싶었고, 학비가 저렴한 대학을 알아보다 방통대로 편입을 하게 됐죠.”

3학년이 되면서 고씨는 장학금 지원을 받아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원래 계획은 1년이었지만 공부를 더 하고 싶은 마음에 돈을 끌어모아 6개월을 더 있었다. 덕분에 중국어 실력은 크게 늘었지만 돌아올 때는 빈털터리 상태였고, 당장 어떻게 살아야 할지 눈 앞이 캄캄했다.

“다음달 생활비가 바로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이런저런 걸 따질 여유도 없이 알바 사이트에 이력서를 냈고 그 중 한 군데가 면세점이었어요. 면세점이면 중국어를 쓸 수 있겠다 싶어 도전해 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것 같아요. 면접 후 출근하라고 연락이 왔고 바로 일을 시작하게 됐죠.”

그렇게 고씨는 인천공항 내 면세점에 주류 판매직으로 입사했다. 남은 1년의 학업과 면세점 업무를 병행할 수 밖에 없었고, 어쩔 수 없이 휴학을 반복했다. 우연찮게 도전한 면세점 일은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우선 일상생활 패턴부터 바꿔야 했다. 

“열정 없는 삶, 죽은 것과 마찬가지죠” [꺾이지 않는 청춘②]
중국 유학 시절 힘이 되어 준 친구들.   사진=본인 제공

“면세점 판매 직원들은 일반적으로 ‘CA 근무’ 스케줄을 소화해야 해요. 밤 9시30분 매장을 마감하는 C조 근무를 한 뒤에 다음날 바로 아침 6시30분에 매장을 오픈하는 A조 근무 스케줄이죠. 이렇게 근무해야 하는 날엔 3~4시간 밖에 잘 수가 없어요. 통상 A조 근무를 준비하려면 오전 5시에는 인천공항에 도착해야 하고, 그럼 집에서 4시에는 나와야 했죠.”

이른 아침부터 종일 서서 일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구두를 신은 발은 퉁퉁 붓고, 허리도 끊어질 것 같이 아팠지만 악바리 정신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1년 동안은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했고 야근을 자처하며 면세점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판매직 특성 상 인센티브가 있기 때문에 한 병이라도 더 팔려고 애썼다. 

“근무시간 동안 물도 안마시고 화장실도 안가면서 그렇게 버텼어요. 악착같이 한병이라도 더 팔겠다는 정신으로 일했어요. 남들 쉴 때도 안 쉬었고, 직원들과 수다도 안떨고 손님이 오면 부리나케 달려갔죠. 마지막에는 열정이 식어서 퇴사만 하고 싶었던 게 사실이지만요.(웃음)”

‘궁핍함’을 열정으로 승화

활달하고 붙임성 있는 성격 덕분에 면세점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처음엔 천직이라고 여겼다. 고씨의 적극성과 탁월한 업무 역량은 성과로 이어졌고, 차츰 단골 손님들도 늘어갔다.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서비스를 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손님에게 위스키 샘플도 챙겨드리고 길 안내까지 해드렸죠. 제게 팁을 주는 손님들도 종종 계셨어요. 어떤 외국인 손님은 제게 20달러를 팁으로 주시면서 ‘제 서비스에 만족을 했고 이 돈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사실 우리나라가 외국처럼 팁문화가 많지 않잖아요. 환전해서 바로 쓸 수도 있지만 저한텐 의미가 깊은 돈이라서 아직 간직하고 있어요. 면세점 본사 직원한테는 일 잘하는 직원에게 주는 ‘칭찬카드’를 받기도 했어요. 이런저런 상황을 봤을 때 나름 인정을 받았던 것 같아요.”

고씨의 이같은 업무 능력은 사장님 귀에 들어갔고, 2년 차에 한 매장을 담당하는 부매니저로 승진하게 됐지만 선후배 동료로부터 이유 없는 텃세를 겪어야 했다. 

“궁핍한 생활이 버틸 수 있던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바로 돈이라는 피드백이 오고, 어느 정도 물질적인 게 채워지는 만족감도 있었고요. 물론 텃세도 심했지만 그런 걸 무시하고서라도 돈이 더 궁했어요. 일할 당시에도 하던 말만 하는 게 아쉬워서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틈틈히 중국어 공부를 했고요. 회화를 까먹지 않기 위해 매해 중국어 시험을 봤죠. 돌이켜보면 힘들긴 했지만 열심히 사는 그 생활 자체가 좋았어요.”

한 매장을 맡게 되면서 고씨의 업무도 늘어났다. 1년을 아침조부터 저녁조까지 근무했고, 막판에는 한달 내내 야근을 하며 풀타임을 뛰었다. 갈수록 건강은 안 좋아졌고 병원 신세를 지기에 이르렀다. 회의감이 든 고씨는 그렇게 꼬박 3년을 버티고 그만뒀다.

“면세점을 다니면서도 중국으로 대학원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그 방법 중 하나가 장학금을 받아서 가는 거였고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표, 자비 등을 모으기 위해 근무 기간을 3년으로 잡은 거였죠.” 

“좌절은 없다”…또 다른 돌파구

고씨의 철두철미한 계획은 운좋게 타이밍이 맞아 떨어졌다. 전액 장학금으로 중국에 있는 대학원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합격의 기쁨도 잠시, 코로나가 터지며 중국의 입국이 차단됐다.

현지에 가길 기대했던 만큼 고씨의 실망감은 컸다. 무기력함에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고 사람도 만나기 귀찮았다. 극도의 우울감을 호소하던 고씨를 달래준 건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였다. 

“어제도 다꾸를 하다 새벽 4시에 잠들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에요. 원래 다이어리 꾸미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제 일상이 다꾸로 인해 다시금 활력을 찾았달까요. 지금은 다꾸를 할 시간적 여유도 있고요. 제가 원래 뭔가에 몰두하면 밤을 새는 열정도 있거든요.”

고씨는 다꾸를 단순한 취미 활동을 넘어 수익으로 연결시키고자 고민했다. 지금의 위기를 오히려 반면교사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요즘 중국어에 대한 수요가 많이 없는 게 문제에요. 주변에 대학원을 나왔지만 전공과 관련 없는 일을 하는 걸 보면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까’ 생각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과 중국어를 결부시키자는 결론을 내렸고, 그게 바로 ‘스티커’더라고요. 스티커에 대한 수요가 은근 적지 않아요. 분명히 돈을 벌 수 있는 루트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고 꾸준히 하고 있어요.”

“열정 없는 삶, 죽은 것과 마찬가지죠” [꺾이지 않는 청춘②]
“열정 없는 삶, 죽은 것과 마찬가지죠” [꺾이지 않는 청춘②]
인생의 새로운 돌파구가 된 다꾸.   사진=본인 제공

고씨의 이같은 생각은 터무니없는 발상이 아니다. 나름 진지하고 심오하게 궁리해 내놓은 결과물이다. 지난 9월부터는 인스타그램에 하루 3건씩 꾸준히 피드를 올리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이어 최근에는 다꾸 유튜브도 시작했다. 영상 편집도 직접 하는 고씨는 전세계 구독층을 고려해 영어로 문구를 작성해 올린다고 했다. 이를 위해 틈틈히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는 중이다.

“유튜브를 시작한 이유도 팔로워를 늘리면 나중에 인적 자원을 밑천 삼아 스티커를 팔 수 있는 경로가 늘어날 수 있잖아요. 인지도가 높아지면 광고도 들어올 수 있고, 돈이 들어올 수 있는 파이프 라인을 구축해 놓는 거죠. 제가 좋아서 하는 거라 일이라 생각치 않아요. 요즘 하루 종일 유튜브 콘텐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요. 뭔가 새롭고 신선하고 괜찮은 아이디어는 무엇인지, 어떻게 영상을 꾸미고 올릴지에 대한 것들이요. 창작의 고통을 느끼지만 제가 열정적으로 사는 이 느낌이 좋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할 말도 많은 30대 청춘 고씨. 그는 ‘다꾸’에 매진하면서도 중국어 교사라는 꿈을 놓지 않고 있다. 

“언젠가는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제 모습을 늘 상상해요. 간절하게 원하면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잖아요. 중국어 공부를 놓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회사든 알바든 자신을 영원히 책임져주지 않아요. 젊은 청년들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물어봤으면 해요. 아직 젊으니까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는 나이잖아요. 능력과 아이디어가 뛰어나도 나이가 들면 체력이 떨어져 못하는 일이 많으니까요. 청춘이기 때문에 실패하고 더 많은 도전을 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김한나 기자 hanna7@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