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몰랐어요, 다둥이 아빠가 될 줄은…”

-부부가 일기 형식으로 정리한 셋째 출산기

기사승인 2023-01-02 06:05:02
- + 인쇄
“저도 몰랐어요, 다둥이 아빠가 될 줄은…”
아빠 손 꼭 잡고 첫 목욕/ 엄마도 힘들지만, 어린 생명 역시 세상에 나오려고 얼마나 안간힘을 썼을까. 온몸이 파랗게 질렸다. 새삼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드는 순간이다.

-사내연애와 결혼, 10년 뒤 선물처럼 찾아온 셋째딸
-기쁨과 걱정 동시에 “우리 어떡해?”
-힘겨운 출산 과정 겪고 마주한 삼 남매  ‘발가락이 똑같네’
-셋째 품에 안고 더 넓어진 마음가짐 “고마워, 내 딸”

“결혼 후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어?”
지인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미혼인 친구가 물었다. 마음에 두고 생각해본 적 없는 얘기에 농담 반 진담 반 “연애할 때가 제일 행복해. 넌 그냥 연애만 해”라고 답했다. 잠들기 전, 문득 친구의 질문이 떠올라 곱씹었다. 결혼 후 정말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해외여행, 승진, 집 장만' 다 좋았다. 하지만 모두 정답이 아니었다. 나에겐 ‘내 아이들을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난 쿠키미디어 소속 사진기자다. 아내는 사내에서 만난 1982년생 동갑내기. 지난해 4월, 아내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종이 가방 하나를 보여줬다. 가방 안에는 엽산제와 산모 수첩, 초음파 사진이 있었다. “6주래. 우리 어떡하지?” 느닷없이 찾아온 아이 소식이 선물처럼 기뻤지만 동시에 당혹스러웠다. 걱정도 됐다. 그렇게 어느 날 우리에게 셋째가 생겼다.

“아이가 대학교에 입학할 때쯤이면 우리는 환갑인 건가? 
하긴, 이런저런 걱정하면 끝이 없지. 일단 셋째가 건강하길 기도하자. 
그리고 이 아이가 우리에게 진짜 막둥이이길 기도하자. 
태명으로 아예 못 박을까? ‘찐막이’라고!”

기사는 남편과 아내 입장을 담은 일기 형식으로 정리했다. 셋째 아이 출산을 앞두고 우리 부부가 주고받은 얘기, 그때그때 벌어진 상황들을 바탕으로 작성했다.


“저도 몰랐어요, 다둥이 아빠가 될 줄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산부인과 초음파 검사 모습, 셋째 맞을 준비, 입원용 짐 정리, 퉁퉁 부은 아내의 발.

# D-30 

남편 : 임신 36주가 지났다. 산부인과 주치의는 아기가 평균보단 조금 작지만 잘 자라고 있다고 한다. 지금부턴 언제 낳아도 아이 건강엔 문제가 없을 것이란 말도 덧붙인다. 감사하게도 찐막이는 엄마 뱃속에서 하루하루 잘 자라고 있지만, 아내는 점점 힘들어한다. 손발이 계속 붓고, 어지럼증과 식도염을 호소한다. 식사는 고사하고 화장실에서 구토하는 횟수가 늘었다.
“노산이라서 그런가?” 
그렇게 힘들어하면서도 틈틈이 아기 옷을 세탁하고 출산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니 엄마는 엄마다. 

아내 : “엥? 노산이라서, 셋째라서 더 그렇다고?” 
첫째, 둘째 낳을 때랑 몸 상태가 너무 다르다. 그땐 몸도 안 부었고, 부정맥도 없었다. 그래도 같은 몸이니 첫째와 둘째를 임신했을 때 상태와 비슷할 줄 알았다. 오산이다. 첫째 임신 때는 내 몸만 돌보면 됐다. 지금은 나이가 들었다. 셋째 출산 후에도 첫째, 둘째 돌봄을 병행해야 한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앞길이 막막하다. 임신은 할수록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 더 힘들어진다는 얘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누굴 탓할까. 내 탓이로소이다.



영상 제작 = 신소연 쿠키건강TV PD

# D-Day, AM 3:00
남편 : 고요한 일요일 새벽,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 아내가 계속 뒤척이다 적막을 깬다. “두 시간 넘게 배가 계속 아파!” 39주간 품었던 찐막이가 세상을 마주할 시간이 임박한 것 같다. 급하게 짐을 챙겨 곧장 병원으로 가려했지만, 이 와중에 아내는 기어코 샤워를 하러 욕실로 향한다. 다자녀 엄마의 ‘짬바’('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의 줄임말로 노련함을 의미)가 느껴진다.

아내 : “이게 진통이야, 아니면 대변 신호야?” 
다들 진짜 진통은 딱 알 거라고 했는데, 나는 도통 모르겠다. 일주일 넘게 새벽마다 이렇게 아프니 이번에도 좀 참으면 괜찮아지려나. 아! 배가 또 아프다. 8분 간격으로 두세 번 아팠으니 이건 진짜 진통인 건가? 의사가 가진통이라며 집으로 돌려보내면 어쩌지? 어, 배가 또. 에라, 모르겠다. 일단 남편부터 깨우자. 


“저도 몰랐어요, 다둥이 아빠가 될 줄은…”
의사에게 출산이 약 30~40% 정도 진행됐다는 결과를 들은 후 분만 대기실에서.

# AM 4:00

남편 : "의사가 진진통 아니라고 집에 돌아가라고 하면 어쩌지?"
병원으로 향하는 내내 아내는 헛걸음하는 건 아닐지 걱정했다. 도착하자마자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받고, 당직 의사를 만났다. 출산이 약 30~40% 정도 진행됐다는 결과를 듣고 입원 수속을 밟았다. 늦은 밤까지 월드컵 중계를 봤더니 졸음이 쏟아지고 배도 고팠다. 아내에겐 미안하지만, 잠시 틈을 내 편의점에 가서 간단하게 요기했다. 어두운 대기실에서 잠이 밀려올 것을 대비해 커피와 피로해소제도 들이켰다.

아내 : 일요일, 그리고 새벽. 그래서 그런가? 병원이 유난히 조용하다. 너무 조용하니까 더 불안해진다. 예전에 애 낳을 때 진통이 어떻게 왔던가. 양수 터져서 출산한 게 한 번, 태아 머리가 끼어서 낳은 게 한 번. 이러니 ‘출산 신호’ 진통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모르는 게 당연한 것을. 의사가 돌려보내면 집에서 일단 남은 이불 빨래를 빨리 해 놓고, 애들 짐을 정리하고, 또 뭘 해야 하더라. 오늘이 아니라도 이젠 정말 출산일이 가까워진 것 같으니 마무리할 것은 서둘러 해둬야겠다. 
'그런데 지금 의사가 뭐라고 한 거야? 입원? 잠깐,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저도 몰랐어요, 다둥이 아빠가 될 줄은…”
분만 대기실에 누워 있는 아내, 숫자 '92'가 진통의 강도를 나타낸다.

# AM 5:00

남편 : 간단한 검사를 마치고 분만 대기실에 아내를 눕혔다. 아내의 진통을 감지하는 태동검사기 모니터 화면이 위아래로 요동친다. 수치가 ‘100’에 가까울수록 진통이 심하다고 한다. 모니터 숫자가 92를 넘어 98을 오간다. 98의 진통은 어느 정도의 아픔일까? 궁금한데 졸음이 쏟아진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잠시 졸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간호사와 분만 도우미가 대기실을 드나드는 횟수가 부쩍 잦아졌다.

아내 : “무통, 무통 주사 놔 주세요. 제발~”
통증은 점점 심해지는데, 새벽이라 마취통증전문의가 없다고 한다. 그럼 난 어떡하란 말인가. 너무 아프다. 마취전문의가 도착했을 때 내 자궁경부가 많이 열린 상태만 아니라면 주사는 맞을 수 있을 거라고 하는데. 난 셋째 출산이고! 셋째 출산은 진행이 빠르고! 의사는 준비하고 오는 데만 30분 이상 걸릴 테고! 이번 출산 ‘무통천국’은 물 건너 간 거야?



“저도 몰랐어요, 다둥이 아빠가 될 줄은…”
'찐막이'의 탄생이 임박했다. 진통이 최고조에 도달한 순간이다.
“저도 몰랐어요, 다둥이 아빠가 될 줄은…”
분만 직전, 온 힘을 쏟는 아내의 이마에 핏대가 뚜렷하게 서 있다.

# AM 6:00

남편 : 진통 간격이 줄어들고 자궁문이 완전히 열려 급하게 가족 분만실로 옮겼다. 간호사는 아내의 호흡을 조절하며 분만을 준비한다. 아내가 많이 아픈가보다.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눈물을 흘린다. 너무 고통스러워 보였다.

아내 : 악! 너무 아파. 맞아, 전에 출산할 때도 이렇게 아팠어. 내가 미쳤지. 이렇게 아픈데 또 낳는다고. 악!!!! 악!!!!! 너무 아파. 살려주세요! 이제 나에게 넷째는 없어~~엇!



“저도 몰랐어요, 다둥이 아빠가 될 줄은…”
'아내의 산고가 얼마나 이어졌을까', 드디어 세상과 마주한 셋째
“저도 몰랐어요, 다둥이 아빠가 될 줄은…”
엄마는 멍~
“저도 몰랐어요, 다둥이 아빠가 될 줄은…”
엄마 품속에 안긴 셋째, 엄마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들다.
“저도 몰랐어요, 다둥이 아빠가 될 줄은…”
가위를 꼭 잡은 아이의 손에서 '삶의 의지'가 느껴졌다.

# AM 6:25
남편 : 드디어 찐막이가 세상에 나왔다. 엄마의 가슴팍에 엎드려 울음을 터뜨렸다. 건강하게 잘 태어난 것 같아 안심했다. 아내는 고통이 심했는지 멍한 눈으로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잠시 후 간호사가 가위를 주며 탯줄 자르기를 도왔다. 세 번째 경험이지만 그 순간 떨림은 여전했다. 

아내 : 끝났다. 그런데 이제 시작이다. 멍~



“저도 몰랐어요, 다둥이 아빠가 될 줄은…”
탯줄 자르기는 늘 떨리면서도 흥분된다.
“저도 몰랐어요, 다둥이 아빠가 될 줄은…”
앙증맞은 손과 발, 발바닥의 멍은 뱃속에서 눌려 생긴 것으로 시간이 흐르면 없어진다고 한다. 

# AM 6:40

남편 : 아이를 안고 첫 목욕을 시켰다. 앙증맞은 손과 발, 가냘픈 몸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작아서 어딜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 긴장의 연속이다. 출산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서로의 체온을 느꼈다. 눈을 마주쳤다.

아내 : 여자 아이라서 그런가? 정말 작네. 엄청 가볍고. "찐막아! 엄마, 아빠에게 잘 왔어"



“저도 몰랐어요, 다둥이 아빠가 될 줄은…”
다섯 살 터울의 작은 오빠와 첫 인사. 손 크기가 아이와 어른 같다.
“저도 몰랐어요, 다둥이 아빠가 될 줄은…”
아내와 찐막이의 연결고리. 탯줄은 생후 2주 전후로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 D+3
병원 퇴원 후 삼 남매가 모였다. 이 순간을 기념해야지. 생김새와 성별, 성격도 모두 다른 세 아이. 그나마 가장 닮은 곳은 어디일까? 그때 찐막이를 살펴보던 첫째가 말한다. 

“저도 몰랐어요, 다둥이 아빠가 될 줄은…”
“나랑 발가락이 똑같아.” 삼 남매가 외모는 다르지만, 발가락은 신기할 정도로 비슷했다.

“아빠, 나랑 발가락이 똑같아.” 그래, 이번 기념사진의 콘셉트는 ‘발’이다. 잠든 막내 딸 양옆으로 오빠들이 나란히 누웠다. 꼬물거리는 찐막이 옆, 제법 커진 오빠들의 발이 꽤 듬직하다. 

사진을 찍는 내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진다. “그러네, 외모는 달라도 발가락은 똑같네.” 이래서 피는 못 속이나 보다.



“저도 몰랐어요, 다둥이 아빠가 될 줄은…”
산후조리원 퇴소 후 다시 만난 삼 남매

만나는 사람마다 묻는다. 정말 셋째는 더 예쁘냐고. 우리의 대답은 ‘YES’다. 정확히 말하자면, 더 예쁜 것보다 더 예뻐할 수 있게 됐다. 첫째는 마냥 신기했다. 둘째는 첫째 눈치를 보느라 신경 쓸 틈이 부족했다. 두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운 지금, 우리에겐 눈앞에 있는 셋째를 온전히 사랑할 여유가 생겼다. 

신생아를 오랜만에 안으니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오른다. 뭣 모르고 앞서 두 아이를 키워냈던 시절에 비하면 마음가짐이 다르다. 더 많이 예뻐하고, 더 많이 사랑해 주고, 더 많이 내려놓고 키우길 소망한다. 또 스스로 아등바등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찐막아, 우리 가족으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딸 바보’ 길에 입문한 부부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글 = 박효상 기자, 김민희 쿠키건강TV 아나운서 tina@kukinews.com, 사진 = 박효상

취재 협조 = 김포나리여성병원 기사모아보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