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점 드러난 재난응급의료 매뉴얼, 지금은 [이태원 참사 100일]

DMAT 출동 요청에 시간 소요…골든타임 허비
현장 지휘할 보건소장은 지각
복지부 재난의료과 신설…“제도 및 매뉴얼 보완할 것”

기사승인 2023-02-04 06: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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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점 드러난 재난응급의료 매뉴얼, 지금은 [이태원 참사 10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   사진=임형택 기자

서울 한복판에서 159명이 숨지고 294명이 부상을 입은 이태원 참사. 오는 5일로 100일을 맞는다. 대형 참사 앞에서 재난의료 대응체계 허점이 다수 드러났다. 

재난의료 대응체계는 화재, 수해 등 재난 발생 시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중앙응급의료상황실(국립중앙의료원)이 119 상황실과 정보 공유하며 피해 상황을 24시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재난응급의료 비상대응매뉴얼은 재난을 비롯한 다수 사상자 사고에 대비 또는 대응해 사고가 발생한 때부터 현장에서 응급환자 이송이 완료될 때까지의 현장 응급의료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지난 2014년 마우나 리조트 붕괴 사고,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등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재난이 증가하면서 매뉴얼 필요성이 대두됐다. 지난 2016년 1월 처음 제정됐고 지난해 1월 한차례 개정됐다. 

허점 드러난 재난응급의료 매뉴얼, 지금은 [이태원 참사 100일]
상황 처리 절차 모식도.   재난응급의료 비상대응매뉴얼.

소방당국 첫 신고 10시15분→첫 DMAT팀 도착 11시20분

재난의료지원팀(DMAT·Disaster Medical Assistance Team)은 다수 환자 발생 시 출동해 현장 의료를 지원한다. DMAT는 전국 41개 재난거점병원에 있는 의사, 간호사 또는 응급구조사, 행정요원 등 3∼4명으로 구성된 팀이다. 재난거점병원별로 3개 팀 이상 꾸려진다. 해당 권역 내 다수 사상자 사고 발생 시 10분 내에 출동이 가능하도록 상시 대기해야 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서울·경기 내 14개 재난거점병원 전체인 14개 병원에서 모두 15개 DMAT팀이 현장에 출동했다. 밤 12시 전에 도착한 팀은 서울대병원 DMAT 1개 팀이었다. 오후 11시에 요청을 받고 11시20분 현장에 도착했다. 이후 순차적으로 출동 요청을 받고 새벽까지 출동이 이어졌다.

정보 입수, 전달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됐다. 권역 DMAT는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상황실(중앙응급상황실) 또는 지자체, 소방에서 출동을 요청할 수 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난달 29일, 소방 당국에 첫 신고가 들어온 것은 오후 10시15분이었다. 30분 후인 10시45분, 119 소방상황실은 중앙응급상황실에 보건소 신속대응반과 DMAT 출동을 요청했다. 중앙응급상황실은 10시50분 권역 재난거점병원인 서울대병원에 이를 전달했다.

허점 드러난 재난응급의료 매뉴얼, 지금은 [이태원 참사 100일]
압사 참사가 발생한 서울 이태원 인근에 119 구급대가 줄지어 이동하고 있다.   사진=최은희 기자

DMAT팀들 “현장 지휘하는 보건소장, 전문성 부족” 토로

긴박한 재난 현장에서 소방과 보건소, DMAT 역할 분담과 협업 등을 지휘할 주체인 관할 보건소장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용산구보건소장은 DMAT팀보다도 현장에 늦게 도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용산구보건소장이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참사 발생 1시간 54분이 지난 뒤인 10월30일 0시9분 이었다. 이미 서울대병원, 한양대병원 재난의료지원팀이 각각 29일 11시20분, 30일 0시5분 참사 현장에 도착해 구조 활동을 시작한 뒤였다.

의료진들은 보건소장으로부터 명확한 임무 부여나 역할 배정을 받지 못해 구조 활동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립중앙의료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서울·경기 재난거점병원 DMAT 활동보고서’에 따르면 DMAT팀들은 “현장응급의료소장이 DMAT팀에 현장분류반, 처치반, 이송반 등 역할 부여를 명확하게 하지 않았다”, “현장 활동에 대한 컨트롤 타워가 부재했다”, “현장응급의료 지휘 담당자의 정기적 교육 및 보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10일 이태원 국조특위가 연 공청회에서도 재난 현장에서 응급의학 전문의 권한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응급의학 전문가 이경원 연세대 의대 교수는 “현재 체계는 현장응급의료소장을 보건소장이 맡는데, 재난응급의료 전문가는 아니다”라며 “임상적 사망 단계를 넘어선 환자는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은 환자는 적극적으로 현장에서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의학적 권위와 판단에 따라 전문응급처치를 하도록 개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허점 드러난 재난응급의료 매뉴얼, 지금은 [이태원 참사 100일]
조규홍 복지부 장관.   보건복지부

복지부 “제도 개선 및 매뉴얼 개정 준비 중”

복지부도 비상 매뉴얼 개정 필요성을 인정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군중 밀집 등 재난에 대비해 재난응급의료 비상 대응 매뉴얼을 개정해 사전 대비 규정을 명확히 하고 의료 인프라도 확충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대형 재난임에도 불구하고 의료대응 단계가 주의-경계-심각으로 순차적으로 상향되면서 경계 이상 단계부터 가능한 DMAT 출동 요청이 늦어졌다는 지적에 “재난상황시 DMAT이 자동 출동하는 시스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먼저 복지부는 공공보건정책관 산하에 지난달 재난의료과를 신설했다. 재난의료과 업무는 △재난응급의료 계획 수립 및 이행 점검 관리에 관한 사항 △재난응급의료 비상대응매뉴얼 개정 등 제도 정비에 관한 사항 △응급환자 이송체계 등 병원 전 단계 제도 운영 및 개선 등이다.

복지부 재난의료과 관계자는 “DMAT 신속 대응, 보건소장 일정 권한을 DMAT에 위임하는 방안 등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점검 중이다. 제도 개선과 함께 매뉴얼도 정비해 상반기 중에는 초안이 나올 것으로 본다”며 “관련 학회와 단체 협의를 거쳐 정교하게 만들겠다”고 밝혔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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