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웃은 ‘에에올’, 야속한 시간 제한… 오스카 이모저모

기사승인 2023-03-13 13:5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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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웃은 ‘에에올’, 야속한 시간 제한… 오스카 이모저모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진행자 지미 카멜이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에 등장한 당나귀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AFP 연합뉴스

객석에 자리한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의상상 시상을 앞두고 호스트 지미 카멜이 당나귀와 함께 나타나서다.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감독 마틴 맥도나)에서 주인공이 애지중지하는 ‘반려 당나귀’ 제니는 오스카 단상에 오른 최초의 당나귀가 됐다. 1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유독 처음인 순간이 많았다. 지난해처럼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폭행 사건은 없었다. 대신 색다른 감동이 잇따랐다. 예견된 결과와 예상을 뒤엎는 수상도 여럿이다. 11개 부문에 이름을 올린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감독 다니엘 콴·다니엘 쉐이너트)는 남녀조연상을 시작으로 각본상, 편집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작품상 등 7개 부문에서 수상 기쁨을 누렸다. 경쟁구도를 이뤘던 넷플릭스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감독 에트바르트 베르거)는 촬영상, 국제 장편 영화상, 미술상, 음악상 등 4관왕에 올랐다. 오스카의 인상 깊은 순간들을 모아봤다.

오스카서 울려 퍼진 “생일 축하합니다~♬”

재치 있는 수상 소감이 여럿 있었다. 단편 영화상을 받은 ‘언 아이리쉬 굿바이’를 연출한 톰 버클리와 로스 화이트는 아일랜드에 감사를 표하며 갑작스레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함께 자리한 동생 제임스가 생일을 맞아서다. 오스카 수상소감 중 생일축하 노래가 울려 퍼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여우조연상을 탄 제이미 리 커티스는 “나는 착한 소녀니까 45초에 맞춰 소감을 전하겠다”며 짧고 굵은 소감을 풀어갔다.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감독 SS 라자몰리) 주제가 ‘나투나투’로 주제가상을 탄 M.M.키라바니와 탄드라보스는 카펜터스의 명곡 ‘톱 오브 더 월드’를 개사한 노래로 소감을 전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노래로 소감을 전한 수상자 역시 최초다.

“올해 시상식에서 폭력은 절대 안 됩니다”

올해 오스카를 연 말이다. 호스트를 맡은 코미디언 지미 카멜은 시상식 이모저모를 재치 있게 소개하던 중 “올해 시상식에서 폭행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지난해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 시상 중 벌어진 윌 스미스의 크리스 록 폭행 사건을 지칭한 말이다. 그는 “누군가 날 때리면 90분 동안 발언권을 주겠다”면서 “올해는 양자경과 만날로리안, 스파이더맨을 상대해야 한다”고 언급하는 등 분위기를 유하게 풀어갔다. 이날 오스카는 윌 스미스를 우회적으로 거듭 언급했다.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 시상에 앞서서는 “작년에는 좀 문제가 있던 부문이다. 올해는 어려움 없이 진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윌 스미스는 폭행 사건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 10년 동안 출연을 금지당하며 올해 남우주연상 시상자로 나오지 못했다. 그를 대신해 할리 베리가 전년도 수상자 제시카 차스테인과 함께 시상자로 나섰다.

활짝 웃은 ‘에에올’, 야속한 시간 제한… 오스카 이모저모
말레이시아 배우 양자경이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AFP 연합뉴스

“여러분은 꿈을 믿으셔야 합니다”

오스카를 장악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팀은 진한 감동을 일게 하는 소감을 여럿 남겼다. 아시아계 최초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양자경과 첫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받은 키 호이 콴은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입을 모았다. 양자경은 “상을 받는 내 모습이 어린아이들에게 희망의 불꽃이자 가능성이 되길 바란다”면서 “큰 꿈을 꿔야 한다. 꿈이 실현되는 걸 보여주길 소망한다. 여성들은 전성기가 지났다는 말을 절대 믿지 않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2의 전성기를 연 키 호이 콴은 “내 꿈을 거의 포기했었지만, 아내가 20년 동안 ‘언젠가 당신의 시대가 올 거야’라고 해줬다. 여러분은 꿈을 믿으셔야 한다. 꿈을 계속해서 꾸길 바란다”며 눈물과 함께 소감을 마쳤다. 감독상을 받은 다니엘 쉐이너트와 다니엘 콴은 “천재성은 한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공동 활동으로 이뤄지는 것”이라면서 “기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지 않길 바란다. 우리가 이런 상을 받는 것도 정상은 아니지 않냐”고 말해 열띤 환호를 받았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에겐 위대함이 있다. 여러분이 누구든 간에 각각 천재성을 갖고 있다”고 덧붙여 박수갈채를 이끌어냈다.

“우리는 독재자에 반대한다”

최초의 옥중 수상자도 탄생했다.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나발니’(감독 다니엘 로허)가 그 주인공이다. ‘나발니’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의 독살 시도 스캔들을 다뤘다. 현재 알렉세이 나발니는 구금된 상태다. 단상에 오른 연출가들은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그를 언급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불공정한 행위”라며 “우리는 독재자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알렉세이 나발니를 대신에 무대에 나선 아내 올리아는 “내 남편은 진실을 말하고 민주주의를 옹호해 감옥에 갇혔다”면서 “남편이 석방되는 날을 꿈꾼다. 우리 국가가 자유로워지는 날을 기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상식을 생중계한 통역가 안현모는 “아카데미 시상식은 젤렌스키의 참석 요청을 거절했으나 ‘나발니’에 상을 주며 러시아에 보다 더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한 셈이 됐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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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아기 코끼리와 노부부’가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 다큐멘터리 상을 받았다. AFP 연합뉴스

말하려는데 퇴장 음악… 오스카가 야속해

아쉬운 점 역시 있었다. 소감 시간을 칼 같이 제한하며 수상자들이 입을 떼지도 못하는 상황이 수차례 발생해서다. 올해 오스카는 일부 부문에서 다음 사람에게 마이크를 넘길 때 퇴장 음악을 재생하며 소감을 제한했다. 넷플릭스 ‘아기 코끼리와 노부부’로 단편 다큐멘터리 상을 탄 카이키 곤살베스와 구니트 몽가, 분장상을 받은 ‘더 웨일’(감독 대런 아프노프스키) 애드리언 모로·주디 친·앤 마리 브래들리, 시각 효과상을 받은 영화 ‘아바타: 물의 길’(감독 제임스 카메론) 조 레터리·리처드 바네함·에릭 세인던 등은 각각 수상자 1인만이 소감을 전할 수 있었다. 일생에 단 한 번일 수도 있는 오스카에서 마이크 앞을 서성이다 등을 돌리는 수상자들의 모습은 씁쓸함을 남겼다.

다음은 제95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작(자).

△ 장편 애니메이션상 = ‘기예르모 데토로의 피노키오’
△ 남우조연상 = 키 호이 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여우조연상 = 제이미 리 커티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장편 다큐멘터리상 = ‘나발니’
△ 단편 영화상 = ‘언 아이리시 굿바이’ 
△ 촬영상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 분장상 = ‘더 웨일’
△ 의상상 =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 국제 장편 영화상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 단편 다큐멘터리상 = 넷플릭스 ‘아기 코끼리와 노부부’
△ 단편 애니메이션상 =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 미술상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 음악상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 시각효과상 = ‘아바타: 물의 길’
△ 각본상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각색상 = ‘위민 토킹’
△ 음향상 = ‘탑건: 매버릭’
△ 주제가상 =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
△ 편집상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감독상 = 다니엘 콴·다니엘 쉐이너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남우주연상 = 브렌든 프레이저 (‘더 웨일’)
△ 여우주연상 = 양자경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작품상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활짝 웃은 ‘에에올’, 야속한 시간 제한… 오스카 이모저모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안았다. 이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7관왕을 차지하는 기쁨을 누렸다. AFP 연합뉴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