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손위 동서 의사 신창희, 몽골에서 생을 마감한 이유

[근대 인술의 현장(12)]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의 신창희와 만주(상)
떠도는 동포 구제하다 몽골 벌판 별이 되다

기사승인 2023-03-30 06: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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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당시 동몽골 퉁랴오(현 중국 내몽골자치구 퉁랴오 시)에서 조선의 엘리트 의사가 죽음을 맞았다. 퉁랴오는 지금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서 서쪽으로 550㎞ 지점이다. 일제 치하에서 조국을 떠나 만주 벌판에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아 신군은 갓다. …남다른 포부를 품고 수 천리 이역에서 표랑의 생활을 계속하던 신군은 맛츰내 그 쓸쓸한 몽고천지에서 영영 가버리고 말엇다…항상 동포를 사랑하는 정신을 끊지 않고 어디를 가든지 자기의 배운 기술로 유리하는 동포를 힘써 도와주며 제세의 술을 광시하여 만리이역에 고통 하는 형제를 많이 구호하여 주었다.’(기독신보 1926년 3월 31일자 보도)

그 조선 엘리트 의사는 세브란스병원의학교 1회 졸업생 신창희(1877~1926)였다.
김구 손위 동서 의사 신창희, 몽골에서 생을 마감한 이유
서울역 뒤에서 바라본 세브란스빌딩(중앙 유리건물). 이 빌딩 일대가 일제강점기 '세브란스병원'과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터다. 사진=임형택 기자
김구 손위 동서 의사 신창희, 몽골에서 생을 마감한 이유
당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모습. 학사모를 쓴 학생들의 모습이 보인다. 

‘제세(濟世)의 술(術)을 광시(廣施)’하던 의사. 즉, 의술을 통해 아픈 이들을 널리 구제했다는 얘기다.

신창희는 1904년 제중원의학교에 입학했다. 제중원은 1885년 개원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이었다. 서울 재동의 현 헌법재판소 자리에 설립됐으나 1887년 구리개(현 서울 을지로입구)로 옮기고 서양의 에비슨 등을 중심으로 한 미국 북장로회 조선선교부가 운영을 맡게 된다. 에비슨 등은 이때 조선의 환자 구제와 의학 교육 발전을 위해 도와 달라고 본국에 호소한다.

미국인 실업가 세브란스는 조선이라는 미지의 나라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헌신하는 미국과 캐나다 등 서구 근대 의사들에게 감동 받아 조선에 근대 병원 및 학교 설립 비용을 기부한다. 그리하여 1904년 서울 도동(현 서울 남대문로5가 세브란스빌딩 일원)에 제중원 후신 ‘세브란스병원 및 의학교’가 시작된다. 한국 의료사의 새 장을 맞은 것이다.

신창희는 제중원의학교로 입학해 바로 캠퍼스 이전과 학교 명칭 변경에 따른 교육 환경 변화 하에서 의학 수업을 받았다. 출신지와 입학 동기, 입학 전 활동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당시 제중원의학교에 진학할 정도였으면 중인 집안 이상의 신분이거나 초기 기독교 신자 집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김구 손위 동서 의사 신창희, 몽골에서 생을 마감한 이유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졸업생 신창희. 

그는 의학교를 졸업하고 한때 모교 간호원양성소에서 강의했다. 1909년 북장로회 선교보고서 ‘코리아 미션 필드’에 의하면 그가 ‘미터법을 포함한 계량과 측정’ ‘현미경을 이용한 세균학’ 등을 강의했다고 남겼다.

주목할 점은 신창희 인술 정신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부속 의학강습소나 경성의학전문학교 등의 의학 교육기관 커리큘럼에는 없는 ‘기독교 박애 정신’을 뼛속 깊이 간직했다.

신창희는 졸업하고 1909년 압록강 변 의주부(義州府) 남문 밖에 구세병원을 개원했다. ‘매일신보’ 광고란에 ‘의학박사 신창희와 홍종은이 연합해 진료하니 유병(有病) 자는 내방해 달라’고 홍보했다.

그의 진료 활동은 1917년 만주 안동(현 중국 단둥)에 ‘평산의원’을 운영했다는 자료에도 나타난다. 안동은 압록강 하구 도시로 의주에서 30㎞ 지점이었다.

신창희는 의주나 안동에서도 ‘고통 하는 형제를 구호하여’ 주었다. 특히 안동 평산의원에서는 일제에 맞서 만주 일대에서 무장 투쟁을 하던 독립운동가, 헐벗고 굶주린 동포들을 치료하고 돌봤다.

그 무렵 신창희는 독립운동에 뛰어 들었다. 의주, 안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1919년 3․1운동을 전후해 독립운동단체 신한청년단 당원으로 상해 임시정부도 돕기 시작했다. 임시정부 교통국 요원으로 쫓기는 독립운동가들을 도항시키거나 군자금을 모으는 임무를 맡았다. <하편으로 이어짐>

전정희 편집위원 lakajae@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