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이돌이 행복해지길 바란다” [친절한 쿡기자]

기사승인 2023-04-21 06: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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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이돌이 행복해지길 바란다” [친절한 쿡기자]
그룹 아스트로 멤버 문빈. 판타지오

그룹 아스트로 멤버 문빈의 부고가 전해진 19일,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엔 종일 ‘모든 아이돌’이 올랐습니다. 이번 비극이 K팝 산업 전체가 짊어진 고민이라는 데 동감한 이들이 ‘모든 아이돌 가수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는 취지로 글을 남기면서입니다. 외신은 “그의 죽음이 K팝 시장의 잘못된 점을 보여주고 있다”(미국 뉴욕타임스)고 지적했습니다.

K팝 아이돌은 연습생 시절부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유년기를 보냅니다. 데뷔 후에도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과 과잉 노동, 감정 노동 등에 시달리죠. 그룹 블랙핑크 멤버 리사는 2020년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에서 “그때는 모든 것이 경쟁이었다”고 연습생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멤버들은 말했어요. “2주에 한 번씩 쉬는 날이 있고, 그다음에 다시 13일간 연습한다” “조심해야 할 게 많았다. 뭘 하든 잘못했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보이밴드로 평가받는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RM마저 “K팝 아이돌 시스템은 사람이 숙성하게 놔두지 않는다”고 토로했습니다.

극한의 압박감과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온라인 괴롭힘 속에서 꿈과 희망을 노래하던 K팝 아이돌은 천천히 스러졌습니다. 문빈의 비보가 전해진 날, 그룹 DZK 멤버 경윤은 연예 활동을 잠시 멈춘다고 밝혔습니다. “주치의로부터 불안장애 및 그로 인한 사회공포증 증상 소견을 받았다”는 게 소속사 설명입니다.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신자였던 경윤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 방송으로 정명석 총재의 성범죄 혐의가 드러나자 탈교했다고 밝혔지만, 이후에도 비방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모든 아이돌이 행복해지길 바란다” [친절한 쿡기자]
문빈의 부고가 전해지자 K팝 팬들은 모든 아이돌 가수의 안녕을 염려했습니다. 트위터 캡처

여성 아이돌은 온라인 공격에 특히 더 취약해요. 성희롱 등 여성혐오에 뿌리를 둔 비방을 견뎌야 하기 때문인데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2019년 가수 겸 배우 설리가 세상을 떠나자, 연예인 사망사건에 이례적으로 애도문을 내 “설리는 여성 혐오에 맞서 함께 싸워왔던 젊은 여성들의 동지였다”며 “(설리가) 설리답게 살아갈 수 있는 곳에서 평온을 찾으시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가수 겸 배우 구하라는 불법 촬영 피해자였으나 악성 댓글과 2차 가해에 시달렸습니다. 일본에서 활동을 재개한 뒤로도 온라인에서의 비난과 공격은 계속됐죠.

뉴욕타임스는 이런 사례를 예로 들며 “그들의 죽음은 한국의 가장 인기 있는 문화 수출 산업 가운데 하나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한국 스스로 성찰하도록 했다”고 짚었습니다. 영국 BBC 역시 “최근 몇 년간 K팝 가수 4명이 극단 선택을 했다”며 “한국은 선진국 가운데 젊은 층의 자살률이 가장 높다. 전체적인 자살률은 감소 추세지만 20대 자살률은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했고요. 태평양 지역을 다루는 국제 언론사 디플로마는 지난해 12월 낸 기사에서 이렇게 꼬집었습니다. “K팝 산업은 취약한 토대 위에 놓여 있다. (중략) 한국은 K팝 기획사들이 법적 수단을 통해 인권을 존중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은 20년 넘게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소프트 파워와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삼았으나,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에선 실패했다.”

가수 겸 배우 아이유는 2018년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아티스트들이 사람으로서 (자신을) 먼저 돌보고 다독이면 좋겠다. 내색하지 않으려다 오히려 더 병들고 아파지는 일이 없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소망한 “기쁠 때 기쁘고, 슬플 때 울고, 배고플 때 힘없고, 아프면 능률 떨어지는 자연스러운 일들이 자연스럽게 내색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날에 도달하도록 산업 구성원 전체가 고민을 나눠야 할 때입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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