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 '필사'라...어머니와 나의 필사

[지리산웰빙팜] 농사꾼 임송의 귀농일기(31)
배 밑바닥부터 채워지는 평형수 같은 느낌의 필

기사승인 2023-07-21 14: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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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생활에서 마치 선박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필사’다. 좋은 글귀를 공책에 또박또박 옮겨 적는 것인데, 주로 법정, 도올, 니체, 한강, 최명희 등이 쓴 글들을 옮겨 적고 있다.

평소에 일하는 틈틈이 책상에 앉아 책 여백에 별이 그려진 구절을 옮겨 적는다. 평소 책을 읽다가 감흥이 있었던 부분들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글자를 정갈하고 조화롭게 쓰려고 노력하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보통 한번 필사할 때 노트 반쪽에서 한쪽 정도의 분량을 적는다.
오호 '필사'라...어머니와 나의 필사
최근에 산 필사 도구 모습. 만년필 4개와 잉크 7병, 공책도 만년필용으로 따로 샀다. 종이가 두툼해 뒷장 비침이 적다. 사진=임송

최근에 ‘필사’를 위해 만년필 4개와 잉크 7병도 샀다. 얼마 전까지는 펜대에 펜촉을 꽂아 쓰는 소위 ‘딥펜’이라는 것을 사용했다. 캘리그래피 하는 사람들이 주로 쓰는 도구인데, 펜촉에 얼마나 힘을 주느냐에 따라 글자의 두께나 강약이 조절되고 펜촉이 종이에 사각사각 긁히는 느낌도 좋아 한동안 잘 사용했다.

하지만 매번 글씨 쓸 때마다 잉크와 펜촉 등을 준비해야 하고, 다 쓰고 나면 펜대에서 펜촉을 분리해서 잉크를 닦아 보관해야 하는 등 뒤처리도 번거로워서 요즘은 만년필을 주로 사용한다. 필기감은 딥펜만 못하지만 자주 쓰다 보니 이제는 익숙해졌다.

내가 가지고 있는 만년필 4개에는 각각 다른 빛깔의 잉크가 담겨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색깔을 골라 쓰는 재미가 나름 쏠쏠하다. 잉크병에는 각각 심해, 수국, 죽림, 안개비, 산밤, 겨울감, 산머루 라고 적혀있다. 원래는 24종류의 색깔이 있는데 그중 내가 좋아하는 색깔 7개만 따로 구매했다.

각각의 잉크는 그 명칭에 상응하는 색깔을 띠고 있다. 예를 들면 ‘죽림’은 대나무, ‘심해’는 깊은 바다, ‘산밤’은 밤 껍질을 연상케 하는 색깔이다. 지금은 만년필 4개에 각각 수국, 죽림, 산밤, 겨울감 색깔의 잉크가 담겨있다.

필사는 주로 산밤과 수국으로 하고 나머지는 내용을 강조하거나 할 때 사용한다. 산밤 이전에는 안개비라는 색깔을 썼는데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안개비는 짙지도 옅지도 않은 애매한 회색이다.

요즘은 찾아보면 가성비 좋은 문구류들이 많다. 만년필 4개와 잉크 일곱 병을 사는데 다 해서 대략 10만 원 남짓 들었던 것 같다. 10여만 원 투자해서 지금까지 잘 쓰고 있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은 쓸 수 있을 것 같으니 과히 비싼 것 같지는 않다.

나는 ‘필사’를 하는 시간이 좋다. 간혹 이른 새벽에 필사하고 싶어서 일찍 잠에서 깨는 일도 있을 정도다. 한창 일하는 중에도 쉬는 시간에 ‘필사’할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다 잠시 틈이라도 나면, 쪼르르 책상으로 달려와, 시간이 허락되는 만큼, 다만 몇 줄이라도 적는다. 펜촉이 종이에 사각사각 긁히는 딥펜만은 못하지만, 종이와 부드럽게 마찰하는 만년필 느낌도 나쁘지는 않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서울에 계신 어머니도 ‘필사’를 하신다는 사실이다. 공책에 연필로 성경을 옮겨 적으시는데, 이전에 어머니와 필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으니, 서로 영향받은 바 없이 각자 필사를 하는 셈이다. 유전적 소인이라도 있는 것일까.

2주 전 서울에 갔을 때 연필 한 묶음을 가지고 오셔서 깎아 달라고 하시기에 정성껏 깎아드렸다. 성경 내용을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어머니 글씨를 보면, 구십 노인의 글씨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운차다.

아무 생각 없이 조용히 앉아 필사하다 보면 가끔 자연스럽게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최근에 필사하면서 들었던 생각 하나.

글씨를 쓸 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천천히 한 획씩 긋다 보면 실수하는 경우가 드물다. 글자가 대체로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쓰인다. 그런데 잠깐 딴생각하거나 긴장이 풀어지면 조심성 없게 획을 긋게 되어, 획이 삐뚤어지는 등 실수하게 된다. 당연하지 않은가. 사람이 정신을 집중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그런데 그다음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 실수가 그냥 실수로 끝나느냐 아니면 실수가 아닌 것이 되느냐가 결정된다.

그 삐뚤게 쓰인 글자 한 자 때문에 그 이후에 아무렇게나 쓰면, 그야말로 그 글씨는 실수한 글씨로 고정된다. 그런데 다시 마음을 다잡고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한자씩 정성껏 써가다 보면 어느 순간 실수한 글씨가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게 된다. 실수가 치유되는 순간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실수가 실수 이후의 노력으로 치유될 수 있다는 사실이. 공자가 지었다는 주역 계사전에 보면, “무구자선보과야(無咎者善補過也)” 라는 말이 있다. 본래는 허물이 있었으나 잘못을 잘 보완하면 허물이 없게 된다는 말이다.

조용히 앉아 머리를 비우고 글씨 쓰는 일에 열중하다 보면 내 삶의 말단까지 따뜻한 에너지가 전달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필사’를 떠올렸을 때 배 밑바닥에 채워진 ‘평형수’가 같이 생각났던 것일까.

◇ 임송
중앙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펜(Upenn)대학 대학원에서 사회정책학을 공부했다. 1989~2008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부이사관으로 퇴직 후 일용직 목수를 거쳐 2010년 지리산(전북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으로 귀농해 농사를 짓다가 최근 동네에 농산물 가공회사 '웰빙팜'을 설립했다.

jirisanproduc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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