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에서 ‘동료지원가’로···희망이 된 사람들 [쿠키청년기자단]

기사승인 2023-08-14 06: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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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에서 ‘동료지원가’로···희망이 된 사람들 [쿠키청년기자단]
동료지원가가 환우들과 손잡고 산책을 나간 모습. 파도손

과거 정신의료기관에 입원했었다. 병원 생활은 통제적이었다. 홀로 외출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의료진과의 의사소통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퇴원 후 ‘절차보조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얻게 됐다. 비슷한 처지의 환자들을 돕는 일이었다. 입원 경험은 오히려 장점이 됐다. 환자들의 롤모델이 된 동료지원가들의 이야기다.

절차보조사업은 정신의료기관 입·퇴원 과정에서 정신장애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대표 정책이다. 정신장애인은 정신의료기관 입원 시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행사하기 어렵다. 의사 표현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환자로서 받아야 하는 권리 고지를 받지 못한 채 입원하는 일도 발생한다.

절차보조사업은 정신장애인이 입원부터 퇴원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보조한다. 수도권 소재 정신의료기관에 입원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메일 혹은 전화로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 절차보조사업팀 팀원들이 정신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는 환자들을 직접 방문해 입원 관련 행정 절차 혹은 입원 물품을 지원한다.

절차보조사업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중에는 ‘동료지원’도 있다. 정신질환에서 회복된 정신장애인이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동료 정신장애인들을 돕는 일이다. 상담을 통해 이들이 계속해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정서적인 지지와 응원을 제공한다.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외부에 전달해 주기도 한다. 서울시에서 절차보조사업을 위탁받아 수행하는 민간 법인 파도손에는 현재 7명의 동료지원가가 근무 중이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46명의 정신장애인이 해당 서비스를 이용했다.

환자에서 ‘동료지원가’로···희망이 된 사람들 [쿠키청년기자단]
파도손 절차보조사업팀.   사진=박은지 쿠키청년기자

이도현(40·여)씨는 파도손에서 활동하는 7명의 동료지원가 중 한 명이다. 이씨는 6년 전 처음 정신의료기관에 입원했다. 퇴원 후 취업까지 했지만, 처방받은 약 복용을 중단한 것이 화근이 되어 재입원했다. 병원에서 그를 힘들게 한 건 불통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의료진과도 소통의 제약이 있었다. 심리적 고통을 토로하면 돌아오는 건 약이 하나 추가된 처방전이었다. 상한 감정은 약으로 치료되지 않았다. 매일 병원에 있었지만 치료받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두 번째 퇴원 후 취업을 고민하던 그에게 사회복지사는 동료지원가를 권유했다. 그 후, 이씨는 과거 자신이 입원했던 병원에서 동료지원가로 일하게 되었다. 전에 함께 입원했던 환자들을 돕는다. 주기적으로 상담을 나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회복 경험을 공유한다.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환자에게 자료를 찾아주기도 한다. 불통 병원에서 이씨는 소통의 창구가 됐다.

동료지원가가 되어 자립에 성공한 이씨는 어느새 환자들의 롤모델이 됐다. 환자들이 “나도 너처럼 일하고 싶다. 퇴원해서 돈도 벌고 생활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할 때면 “나도 다른 사람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마음이 든다. 그는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무엇을 힘들어하는지 뼈저리게 이해한다. 그의 바람은 동료지원가의 도움을 받은 사람이 이후 동료지원가가 되는 선순환의 고리가 정착되는 것이다.

또 다른 동료지원가 전현진(41·남)씨는 지난 2017년 정신의료기관에 입원했다. 그에게는 사회복지사라는 꿈이 있었다. 1년 반의 입원 기간 사이버 대학에 등록해 틈틈이 휴대전화로 강의를 들었다. 전씨는 퇴원 후 파도손 사무국장과 사회복지과 과장의 추천을 받아 동료지원가가 되었다. 꿈꿔왔던 일과 비슷한 일을 하게 됐다.

하루 24시간을 병원에서 보내는 환자들의 일상은 대체로 단조롭다. 여가 활동은 고사하고 대화 상대조차 제한되어 있다. 함께 공유할 대화 소재를 찾는 것조차 힘들 때도 있다. 고립된 환자들이 병원에서 최소한의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게 그의 일이다. 전씨는 “입원 생활은 생각보다 심심하고 따분하다”며 “입원 때문에 포기한 소소한 행복을 찾아드리고 싶다. 환자들의 일상에도 ‘기다려지는 시간’이 한 순간쯤은 있어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환자에서 ‘동료지원가’로···희망이 된 사람들 [쿠키청년기자단]
동료지원가들이 병원 내 환자들에게 쓴 편지. 파도손

가장 인상 깊은 기억은 환자와 당구장을 방문했던 일이다. 당구를 좋아하던 환자였다. 입원해 있던 정신의료기관 바로 맞은편에 당구장이 있었지만 갈 수 없었다. 홀로 외출해 당구장에 간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창문 너머 당구장 간판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그가 못내 마음이 쓰였다. 환자는 절차보조사업을 통해 전씨와 당구장에 갈 수 있었다. 전씨는 20년 만에 당구를 친다던 그의 웃음을 잊을 수 없다.

절차보조팀 팀원들은 동료지원을 군대에서의 면회에 비유했다. 정신의료기관 입원 환자에 대한 서비스나 외부 지원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환자들은 동료지원가의 작은 도움에도 행복함을 느꼈다. 전씨는 “동료지원이 다 끝나고 나서 ‘오늘 어떠셨어요’라고 여쭤보면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어서 속이 후련했다’고 말해주시는 분이 있어서 좋다. 일주일마다 저희 만나는 날만 기다린다고 해주시는 분도 있다”라며 보람찼던 순간을 회상했다.

전씨 병원에서 동료지원가의 자질을 가진 환자들을 종종 본다. 그는 “더 많은 사람이 동료지원 서비스를 이용하고, 더 많은 사람이 동료지원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좋은 취지와 높은 만족도에도 불구하고 절차보조사업 이용률은 낮은 편이다. ‘국가 정신건강현황보고서(2023)’에 따르면 수도권 전체 비자의입원 환자 수는 5,302명이다. 서울시의 절차보조사업 이용자 수(46명, 2023)와 경기도의 절차보조사업 이용자 수(65명, 2022)를 다 합쳐도 전체 비자의입원 환자 수 중 절차보조사업을 이용하는 환자는 2%에 불과하다.

박환갑 파도손 사무국장은 낮은 절차보조사업 이용률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현재 절차보조사업의 대부분은 민간 병원의 자발적 참여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정신의료기관의 보수성과 폐쇄성으로 인해 절차보조사업에 협력하는 정신의료기관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사업에 대한 홍보도 미비하다. 그는 “절차보조사업이 제도적으로 법제화가 되지 않아 민간 병원에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유인책이 부족하다”라며 절차보조사업 의무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은지 쿠키청년기자 apples2000s@naver.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