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깨는데 어떻게 리뷰를 써요…‘P의 거짓’ 해봤더니

고전 ‘피노키오’를 잔혹동화로 각색한 세계관 돋보여
칼날과 손잡이 조합하는 무기 시스템은 독창적

기사승인 2023-09-27 06: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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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깨는데 어떻게 리뷰를 써요…‘P의 거짓’ 해봤더니
캐릭터가 죽으면 ‘LIE OR DIE’ 문구와 함께 시계태엽이 빠르게 돌아간다. ‘별바라기’에서 게임을 저장하지 못했다면 직전 세이브 포인트에서 다시 시작한다.

“으악! 아… 후…”

머리를 쥐어뜯기도, 체념하고 멍을 때리기도, 한숨을 파악 쉬기도 했다. 육두문자가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참았다. 여기는 회사니까. ‘P의 거짓’ 챕터 1 보스인 ‘축제 인도자’를 좀처럼 쓰러트리지 못하면서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액정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봐도 저 괴물을 이길 해법은 보이지 않았다. 다 포기하고 게임을 끄다가도, 금방 현실을 깨닫고 다시 켰다. 기사를 마감해야 하니까.

회사 선배가 “P의 거짓을 플레이하고 리뷰를 쓰라”는 지시를 내릴 때만 해도, ‘소울라이크’ 장르의 악명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사실 소울라이크 장르의 게임을 이전까지 해본 적이 없었다. 일본의 프롬소프트웨어가 만든 ‘다크 소울’ 시리즈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플레이 영상마저 한 번도 못 봤다. 다른 선배가 킥킥 웃으며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플레이하게 될 거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와닿진 않았다.

기자는 ‘리그 오브 레전드(LoL)’를 플레이하면서도 단 한 번도 분노해본 적이 없다. 서포터로 다이아몬드 티어를 찍어본 적이 있는 만큼 ‘뇌지컬’과 ‘멘털’에도 자신이 있었다. 게임을 하면서 화를 낼 거라고? 다른 이들의 예측에 콧방귀를 꼈지만, 플레이한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멘털은 와장창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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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의 거짓’ 공식 이미지. 네오위즈

네오위즈의 신작 P의 거짓은 지난 19일 정식 출시됐다. P의 거짓은 출시 첫날 스팀 글로벌 유료 2위를 기록하며 한국 콘솔 게임의 새 역사를 썼다. 전문가들은 ‘한국 게임의 희망’, ‘프롬이 아닌 회사가 만든 소울라이크 게임 중 최고’ 등의 평가를 내놨다. 이용자들은 개발사에 많은 응원과 피드백을 남기고 있다.

소울라이크 장르를 처음 플레이해보는 기자에게도 P의 거짓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전반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게임이라는 인상을 풍겼다. 고전 명작 ‘피노키오’를 원작으로 한 다크판타지적 세계관과 스토리, 19세기 말 근대 유럽을 멋있게 표현한 분위기가 출중했다. 무엇보다 내 캐릭터가 적을 깨부술 때의 손맛과 쾌감이 맛있었다.

플레이스타일을 다변화할 수 있다는 점은 P의 거짓의 매력 중 하나다. P의 거짓은 기본으로 선택할 수 있는 대검, 도검, 둔기 등의 무기뿐만 아니라 커스터마이징 옵션도 제공한다. 커스터마이징은 검의 칼날과 손잡이를 조합하는 방식인데, 어떤 조합을 택하냐에 따라 공격 방식과 속도를 변화시킬 수 있었다.

특별한 요소는 아니지만, 그라인더를 사용해 무기 내구도를 회복하는 것도 재밌었다. 누군가는 단순히 귀찮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투를 시작하기 전 불꽃을 튀기며 무기를 갈아내는 행위를 통해 보스전을 앞두고 마음을 경건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방으로 튀는 불꽃 그래픽과 우렁찬 그라인더 소리가 좋아서 계속 무기를 갈고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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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리어택’에 시원하게 얻어맞았다. 기자의 캐릭터는 납작해졌다.

매력 포인트도 있었지만, 플레이를 더 이어 나갈 수 있을까 싶은 고난도의 레벨 디자인이 기자를 압박했다. 무엇보다도 적의 공격 속도는 너무 빨랐다. 공격 모션을 직접 보면서 피하거나 방어하는 게 불가능했다. 더구나 특정 몬스터들의 몸이 빨간색으로 변하면서 강한 일격을 날리는 ‘퓨리어택’을 맞으면 금방 빈사 상태가 됐다.

챕터 1의 보스, 축제 인도자를 잡지 못해 몇 시간을 날렸다. 이렇게 해봐도 죽고, 저렇게 해봐도 죽었다. 잔꾀를 부려도 통하지 않았다. 진척이 없자 자존심이 상해 울먹이기도 했다. 결국 난이도를 낮춰야 겠다는 결심을 내렸지만, 불행히도 P의 거짓에는 그 흔한 난이도 설정조차 없었다. 멘털이 터져버린 기자는 침대에 몸을 던지고 묵상에 잠겼다. 저 무지막지한 인형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어떻게 플레이를 보완할 수 있을까.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었다. 기자의 MBTI(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는 ‘J(Judging·판단형)’다. 계획을 한다면 ‘P’의 거짓말 같은 난이도 따위 이겨낼 수 있다. 벌떡 일어나 장시간 이용자들이 올린 공략법과 플레이 영상을 독학했다. 심기일전하고 다시 게임을 켰다. 여러 공략들을 확인해보고 숙지하니 보스의 패턴이 얼추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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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공격을 맞았다. ‘이대로 끝인가’ 싶었지만 끝까지 공격을 이어갔다. 고작 챕터 1 보스인 ‘축제 인도자’를 쓰러트리자 기자 입에는 환호성이 가득해졌다.

첫 번째 공격 페이즈는 쉽게 넘겼다. 알고보니 돌진, 휩쓸기, 내려 찍기가 전부였다. 회피를 반복하고, 퓨리 어택도 ‘퍼펙트가드’를 통해 막아내며 데미지를 넣었다. 이전처럼 맞았다고 도망가지 않았다. 일정 시간 내로 반격하면 체력을 회복하는 ‘가드리게인’ 시스템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보스의 체력을 절반 정도 깎자 두 번째 공격 페이즈가 됐다. 보스는 등에 이고 있던 쇠통을 바닥에 내려치고 자신의 머리를 뽑아 무기로 활용하는 등 폭주했다. 연속적인 공격이 들어왔는데 방어를 제때 해내지 못하자 당황스러웠다. 특히 돌진해오면서 내리찍는 공격은 회피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 공격 후 딜레이를 보이긴 했다. 그때 ‘페이블아츠’ 등의 공격을 감행했다. 마지막 회복 아이템과 투척 무기까지 사용해가며 버틴 결과, 보스는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기자의 캐릭터도 죽기 일보 직전이 됐다.

그 순간, ‘페이탈어택’을 날려 축제 인도자를 간신히 쓰러트릴 수 있었다. 육성으로 환호성이 나왔다. 아무리 초심자라도 전투 시스템에 익숙해진다면 적을 쓰러트릴 수 있는 기회를 엿볼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고작 챕터 1을 깨는데 10시간이 걸렸다. 앞으로 남은 스테이지가 여럿 있기에, 보스를 깼다는 성취감과 동시에 피로감이 몸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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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에 열린 P의 거짓 쇼케이스 현장. 네오위즈

소울라이크 초심자가 즐겨본 P의 거짓은 ‘지인들에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입문용 소울라이크 타이틀’이었다.

괜히 어려운 게임을 알려줘서 골탕을 먹이려는 게 아니다. 소울라이크는 어렵고 불편하다는 인식 때문에 입문하기 어려운 장르다. 그런데 P의 거짓은 소울라이크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찍먹’하기 좋은 이용자 편의성과 직관적인 게임 시스템을 지녔다. 적어도 게임하는 내내 진행이 막힌다거나 답답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보스를 잡기 어려워서 문제지만, 난이도 조절은 지속적인 패치를 통해 이뤄질 수 있기에 큰 문제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네오위즈는 정식 출시 이후 사흘 만에 개발자 편지를 통해 패치를 통한 게임 개선의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또한 준수한 아트웍과 이를 받쳐주는 그래픽, 구형 그래픽카드로도 어느 정도 프레임 방어를 해주는 최적화가 돋보인다. 최신작임에도 불구하고 비싼 장비를 새로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이용자의 부담을 많이 낮춰준다. 

게임 특유의 포지션과 개발사의 패치 의지 덕분에, P의 거짓은 ‘가장 대중적으로 고평가 받는 소울라이크’가 될 가능성이 있다. 매일 즐기던 게임에 질린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기자는 P의 거짓을 ‘새로운 맛집’이라며 주저 없이 추천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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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위즈 로고. 네오위즈

일각에서는 레벨별 디자인과 타사 작품과의 유사성을 놓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 P의 거짓 출시 후 네오위즈의 주가는 급락했다. 증권가에서도 기대치 이하의 판매량을 예측하고 목표가를 하향하기도 했다.

하지만 P의 거짓을 플레이해본 이용자라면 네오위즈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소위 ‘리니지라이크’라 불리는 다중역할접속수행게임(MMORPG)이 판을 치는 한국 게임계에서 이전에 없던 새로운 시도를 통해 전 세계 이용자의 찬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P의 거짓은 타 게임사에게도 좋은 레퍼런스가 되어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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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2에 돌입해 ‘당나귀 광인’에게 맞아 죽고 있는 기자. 하지만 언젠가 이 괴물을 잡을 것이다.

기자는 현재 챕터 2에 돌입해 ‘당나귀 광인’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아직은 이 녀석을 잡기 위한 공략을 살펴보지 않은 상태다. “나도 자연스레 보스의 패턴을 파악하고 공략해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들어서다. 얼마나 죽든 상관없다. 소울라이크라는 장르는 죽어가면서 배우고 결국 적을 쓰러트려 성취감에 취하는 게 묘미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차종관 기자 alonein@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