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하려는 여섯 살 연하남편...세월이...

[사랑한다는 걸 잊지마-아동청소년 그룹홈 아홉 자녀 엄마의 '직진'](23)
살 빼야 하는 자와 쩌야 하는 자의 전쟁...식탁은 폭탄 투하 장소

기사승인 2023-10-24 11: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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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하려는 여섯 살 연하남편...세월이...
김양근 전성옥 부부가 아들 태호와 함께 했다. 사진=전성옥

전성옥
1971년 전북 고창 출생. 현재는 전남 영광에서 9명의 자녀를 양육하는 '아동청소년 그룹홈' 가정의 엄마다. 여섯 살 연하 남편 김양근과 농사를 지으며 단란한 가정을 이끌고 있다. 김양근은 청소년기 부모를 잃고 세 여동생과 영광의 한 보육시설에서 성장했는데 그가 20대때 이 시설에 봉사자로 서울에서 자주 내려왔던 '회사원 누나' 전성옥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이들의 얘기는 2017년 KBS TV '인간극장'에 소개되기도 했다.

전성옥 부부는 대학생 아들 태찬(19), 고교 2년생 딸 태희(17) 등 1남 1녀를 두었다. 이 자녀들이 어렸을 때 부부는 서울에서 낙향을 결심했다.  전성옥은 "어려운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주고 싶다"는 남편을 뜻에 동의해 영광에 내려와 그룹홈을 열었다. 이때 셋째 김태호(11)를 입양했다.

그 후 여섯 명의 딸 김초록(가명 · 19 · 대학생) 한가은(가명 · 이하 가명 · 18 · 특수학교 학생) 김현지(14 · 중학교 2년) 오소영(13 · 중학교 1년) 유민지(12 · 초교 6년) 장해지(9 · 초교 3년) 등과 함께 '다둥이 가정'을 꾸렸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전성옥은 귀농 후에도 문학반 수업을 들을 만큼 문학적 자질이 뛰어나다. 아이들과 함께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가장 즐겁게 생각한다. '사랑한다는 걸 잊지마'는 혈연 중심의 가족구성원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는 연재 칼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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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그린 우리집 식탁 풍경. 그림=전성옥 제공

잘 시간이 훨씬 지난 늦밤. 식탁을 서성이다 바나나를 발견한 남편, 갑자기 '마님' 눈치를 살핀다.

“한개만.”

“그러시든가.”

“내 살도 아닌데 왜 내 눈치를 보고 난린고.”

40대 중반의 남자. 배가 나오기 시작한다.

근육을 자랑하고 다닐 때가 있었지. '마님'(남편 휴대폰에 저장된 애칭)보다 여섯 살이나 연하인 탓에 손해 아닌 손해를 보고 산다.

나이를 쉽게 가늠할 수 없는 것이 얼굴은 주름이 없는 동안형, 헌데 같이 사는 마님은 조금 어정쩡한 나이. 50대 같기도 하고 40대 같기도 하고 때때로 30대 후반(?)으로도 보인다는 또 다른 애매한 모습이다.

이런 외모이다 보니 사람들의 구설수는 간간히 둘 사이를 이상하게 몰아간다. 젊은 시절에는 원조교제니 불륜 소리도 들었던 터라 어지간한 설화는 그저 웃고 만다.

시간은 모두를 공평하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 정확하다. 남편. 여섯살 연하이면 뭘하나, 세월을 비껴갈 수는 없는 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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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중계에 올라선 연하 남편. 세월 앞에 장사 없다. 사진=전성옥 제공

어느 지점부터 배가 나왔는지 알수 없었으나 지금은 최선을 다해 신경써야 할 정도로 심각해졌다. 어디 배 뿐이랴. 티셔츠도 95면 충분하던 것이 100을 넘기다 이제는 105는 입어야 한다.

외모지상주의를 흠모하는 남편. 안되겠다 살을 빼자 결심. 아니 그런 일일랑 혼자서나 하시지 뭔 정성으로 온 가족에게 선포하고 전쟁터로 나가는 군인이 되어가는 것인가(사실 그는 군 면제자).

아이들의 관심은 금세 다이어트로 옮겨갔다. 아빠의 작심이 몰고 온 풍경이다. 한참 먹어야 하는 큰 딸은 아빠와 한편이 되더니 급기야 식탁을 초토화시킨다. 골고루가 통하지 않는다.

칼로리를 살피고 그램을 재고 난리가 아니다. 엄마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배를 곯아가며 아침마다 저녁마다 체중계에 오르며 몇 그램이 빠졌니, 쪘니 더 빼야하니, 먹어야 겠다, 안먹겠다 그야말로 생쑈다.

이 전쟁통에 진실로 진실로 살을 빼야 하는 딸은 어쩌란 말인가? 이 딸은 먹는게 제일 행복한 소녀인걸. 우리집은 살을 빼야하는 자와 쪄야 하는 자 사이에 전쟁이 선포되고 식탁은 그야말로 폭탄 투하장소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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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그린 그림. 

하지만 이런 싸움이 얼마나 갈까? 아빠의 도전은 며칠을 못 버티고 봄눈 언제 녹는지 모르듯 녹아내리고 만다.

가난한 시절 먹는 것이 사는 것이었던 남편은 먹는 집착이 심하다. 먹기 위해 산다고 농담 반 진담 반, 아니 진정 진담일지도 모를 만큼 먹는 것을 좋아한다.

음식 앞에서는 행복이 입안에 가득찬 걸 볼 수 있을 지경으로. 그런 그가 살을 뺀다고 하니 연상 마님은 믿을 수 없는 상황. 작심삼일이 불 보듯 뻔하다.

며칠 후 식탁은 다시 평화를 찾았지만 패잔병 남편은 먹을 것을 찾을 때마다 마님 눈치를 본다. 술 담배를 하지 않는 남자는 군것질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경전의 말씀인냥 읊조리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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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그린 엄마 아빠 모습. 

“먹는건 자유지. 자유에는 항상 책임이라는 것이 따라오거든. 여보.”

“당신의 배는 당신이 책임지고 내 배는 내가 책임질테니 이제 더 이상 살을 빼니 들이니 하지 맙시다.”

조금은 자유로워진 연하남편. 당당히 과자 봉지를 집어 든다.

“아니. 그건 내려 놓으세요. 아이들 내일 소풍갈 때 싸주려고 사놓은 간식이거든.”

전성옥(수필가) jsok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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