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줄고, 불만 여전하고…달라진 연말 귀갓길 [가봤더니]

기사승인 2023-12-12 0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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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줄고, 불만 여전하고…달라진 연말 귀갓길 [가봤더니]
8일 오후 11시30분 서울 관철동 젊음의 거리 입구에 마련된 임시 승차대에서 택시 승차지원단이 택시 탑승 유도를 하고 있다. 사진=임지혜 기자

“택시 타실 분, 여기 줄 서세요.”

8일 오후 11시20분 서울 관철동 젊음의 거리 입구. ‘택시 타는 곳’이라고 적힌 임시 승차대 앞에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형광 조끼를 입은 심야 승차지원단이 빨간 경광봉을 흔들자, 빈 택시가 임시 승차대 앞에 섰다. 승차지원단 덕분에 5분 만에 택시 탑승에 성공한 한 남성은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승객을 태운 택시가 임시 승차대를 떠날 때마다 3~4명의 승차지원단이 왕복 6차로가 정체되지 않도록 빠르게 정리했다.

불경기와 고물가로 연말 귀갓길 풍경이 달라졌다. 늦은 시간 택시를 타는 대신,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는 분위기였다. 이날 오후 11시40분쯤 임시 승차대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시민들은 세 팀에 불과했고 10분 만에 택시를 잡았다. 택시 임시 승차대를 지나쳐 지하철 1호선 종각역과 버스 승차장으로 이동하는 인파가 더 많았다. 경기 군포시에 사는 김모(36·회사원)씨는 “택시비 인상으로 심야 할증된 요금을 보니 엄두가 안 나 지하철 탄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연말연시 교통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지하철을 새벽 1시까지 연장 운행하기로 했다.

택시 줄고, 불만 여전하고…달라진 연말 귀갓길 [가봤더니]
8일 오후 8시 서울역 택시승강장에 빈차들이 줄지어 서있다. 사진=임지혜 기자

택시 요금 상승에 ‘손님<택시’


택시기사들은 현실이 퍽퍽하다고 입을 모은다. 통상 연말은 택시업계가 ‘반짝 특수’를 누릴 수 있는 기간이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택시 수요가 많지 않은 분위기다.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해제된 이후 택시 부족 문제가 나타나면서 서울시 등 지자체들이 요금 인상 대책을 내놓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택시 기본요금을 3800원에서 4800원으로 올리고, 심야 할증 시간은 자정에서 오후 10시로 앞당겼다.

일부 지역, 특정 시간을 제외하고 택시 손님이 뜸해졌다. 9일 서울 홍대에서 만난 10년차 택시기사 A(55)씨는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손님이 별로 없다. 택시비까지 올라 손님이 많이 안 탄다”며 “피크시간에 몰리는 수요를 택시가 감당하지 못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 시간만 제외하면 쉽게 탈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 광명시에서 개인택시를 하는 B씨도 “강남, 홍대, 신촌 등 일부 지역은 연말에 택시 타기 조금 힘든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광명시는 사람보다 택시가 더 많이 서 있다. 경기는 안 좋은데 택시비는 올랐다. 연말 밤에 상업지구에서 술 마시는 사람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택시 부족 연말 회식, 모임이 많은 일부 지역에만 인파가 몰리면서 해당 지역, 특정 시간(오후 11시~다음날 오전 2시)에서만 택시 수요가 몰리고 있다. 이에 서울시도 지난달 30일부터 매주 목·금요일 총 8일, 택시 수요가 많은 12곳(강남, 홍대입구, 종로2가, 건대입구, 상암, 여의도역, 서울역, 용산역, 수서역 등)에만 임시 승차대를 운영하고 있다.

손님이 줄어들자 택시 기사들은 영업시간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A씨는 “지난해 11월 택시 요금이 오르면서 야간 운전을 하는 기사들이 늘긴 했다. 손님이 줄었기 때문”이라며 “원래 야간에 일을 안 했는데, 낮 손님이 줄어들어 야간에도 운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역에서 만난 70대 택시기사 C씨는 “(택시비 인상에 고물가까지 겹쳐) 추석 이후 손님이 확 줄었다”며 “퇴근 시간대에 탄 한 손님이 택시비가 2만원이 넘게 나오자 ‘왜 이렇게 비싸졌냐’며 화를 내더라. 이제는 힘들어서 심야 근무는 안한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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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11시42분 서울 관철동 젊음의 거리 임시 승차대에서 도보 5분가량 떨어진 장소에서 앱으로 택시를 호출했으나 취소당했다. 사진=임지혜 기자  

일부 지역선 여전히 택시 승차난


여전히 택시를 못잡아 불편을 호소하는 승객들도 있다. 손님이 줄자 택시기사 숫자도 줄면서 일부 지역에선 승차난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전국택시대수 및 운전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 9월30일 기준 전국 법인택시 운전자 수는 7만638명으로, 지난해 9월(7만3227명) 대비 2589명(-3.5%) 줄었다. B씨는 “법인택시는 요즘 월 100만원도 못 가져간다더라”라며 “아르바이트비도 안되니 다 관둔다”고 말했다.

8일 오후 11시40분부터 10분가량 서울 관철동 종각 젊음의 거리 한 택시승강장에서 대기해보니, 지나가는 택시 중 빈 택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전부 ‘예약’된 택시였다. 택시호출 앱을 이용해 경기도 한 도시를 목적지로 입력하자 2분에서 9분까지 택시 호출 범위가 빠르게 늘어났다. 10분 거리에 위치한 택시가 잡혔지만, 곧 취소당했다.

10일 오전 2시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에서 만난 김모(20·회사원·서울 종로)씨는 30분 넘게 택시를 기다렸다. 그는 “밤에 특히 택시가 잘 안 잡힌다”라며 “택시비가 너무 올라서, 새벽 첫차를 기다렸다가 타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이날 10분 넘게 택시를 기다렸다는 김모(26·회사원·서울 은평)씨도 “택시를 잡기 너무 힘들어서 예약된 택시기사에게 ‘1만원을 더 드릴 테니 집까지 가 달라’고 했다. 그래도 잡히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택시기사 김모씨(81)는 “요즘 피크시간대 홍대, 건대, 종각 등 젊은 사람들이 많은 지역은 택시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며 “다만 지역에 따라 다르다. 홍대 등 술 마시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 들어가면 그만큼 지역 밖으로 나가는 손님도 많아서 (콜 받으면) 간다. 좀 외진 곳이나 경기도 쪽으로 가는 호출은 (빈 차로 돌아올 확률이 높아) 안 받는 기사가 많다”고 설명했다.

임지혜 이예솔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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