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 죽였는데 통쾌하지 않다, 최우식 해석은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4-02-15 11:4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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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 죽였는데 통쾌하지 않다, 최우식 해석은 [쿠키인터뷰]
‘살인자ㅇ난감’ 속 배우 최우식. 넷플릭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취객에게 폭행당하다 망치를 휘둘러 상대를 죽였다. 유일한 목격자가 침묵을 대가로 돈을 요구해 또 한 번 손에 피를 묻혔다. 어두운 밤거리에서 시비가 붙은 고등학생들, 무작위로 납치한 검사…. 죽이는 사람마다 과거 범죄를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은 악인이다. 넷플릭스 ‘살인자ㅇ난감’ 속 이탕(최우식)에겐 악당을 감지할 수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 초능력자, 영 통쾌해 보이질 않는다. 왜일까.

이탕을 연기한 배우 최우식이 14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쿠키뉴스를 만나 들려준 해석은 이랬다. “이탕은 벼랑 끝에 몰린 심정으로 자포자기한 채 앞으로 나아갔다고 생각했어요. 평범한 대학생이 살인을 저지르고 나면 어떤 심정일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에 무게를 뒀죠. 이탕은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저 사람을 죽여도 된다’고 타협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어요. 인생을 포기한 듯한 상태, 당장 내일 경찰에 붙잡혀도 수긍할 것 같은 인물로 이탕을 표현했습니다.”

악인 죽였는데 통쾌하지 않다, 최우식 해석은 [쿠키인터뷰]
‘살인자ㅇ난감’ 스틸. 넷플릭스

이탕을 ‘다크 히어로’로 보는 관점에도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명 웹툰을 각색해 드라마로 연출한 이창희 감독도 마침 이날 인터뷰에서 “기획 단계에서 다크 히어로를 떠올리진 않았다”고 했다. 단죄는 결과론적인 이야기. 이탕에겐 정의를 구현하겠다는 신념이나 자신의 살인이 정의롭단 논리가 흐릿하다. 오히려 “이탕은 그것이 능력인지 우연인지 끝까지 질문하는 캐릭터”란 게 이 감독 설명이다.

최우식의 의견도 비슷했다. “이탕이 다크 히어로라면 노빈(김요한)에게 무섭다고 말하지 않았을 거예요. 난감(손석구)과의 마지막 장면도 달랐을 거고요.” 노빈은 극 중 이탕의 살인을 돕는 조력자, 난감은 이탕을 좇는 형사다. 마지막 화에서 이탕은 “내가 벌인 일들을 내가 마무리 짓지 않으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 같다”며 난감의 총구를 자신의 머리에 겨눈다. ‘철컥’. 총알이 장전되지 않은 총에선 허무한 소리만 난다. 기적 같은 행운 앞에서도 이탕은 겁에 질려 울 뿐이다. 최우식이 강조한 “평범한 대학생”의 연약함이 엿보인다. 이런 최우식을 두고 이 감독은 “‘이 사람이 살인을 했다면 살인자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배우”라고 표현했다.

악인 죽였는데 통쾌하지 않다, 최우식 해석은 [쿠키인터뷰]
최우식. 넷플릭스

사법 체계 밖에서 악인을 단죄하는 캐릭터는 많았으나 그중에서도 이탕은 돌연변이 같다. 그래서일까. 최우식은 “작품이 공개되기 직전까지 어느 때보다 긴장하고 걱정했다”고 돌아봤다. 이탕은 심경 변화를 크게 겪는데도 대사가 많지 않아 얼굴 근육을 미세하게 쓰느라 감독에게도 질문을 자주 했다고 한다. 장면 전환을 자주 사용하고 이야기가 비선형적으로 전개되는 등 “문법을 파괴하는 접근”(이 감독)도 색달랐다고 했다. “이전 장면과 감정을 어떻게 연결해서 표현할까” 고민이 컸지만 그만큼 “신선하고 독특했다”는 감상이다.

부딪히고 깨진 만큼 성장했을지도 모르는 일. 첫 장편 주연작으로 신인 남우상을 휩쓸고,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레드카펫을 밟은 젊은 배우는 자신에게 엄격해 보였다. 그런데도 “언젠가는 이상하게 연기를 할 때나 고꾸라질 때, 내게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를 쓸 때도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표정에서 불안함이 읽히진 않았다. “어떤 현장에서도 늘 배울 것이 있었다”며 최우식은 말했다.

“제 연기에 확신하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잘했다고 칭찬받은 작품을 촬영할 땐 운도 좋았고요. 실은 제작발표회 때 ‘기생충’이나 ‘거인’ 속 모습이 보인다는 말을 듣고 머리가 띵했어요. 내가 다른 얼굴을 보여주려고 악착같이 고민한 적 있나, 내가 보여줄 얼굴이 이전과 아주 달라야 하나, 나는 성장하고 있나…. 그런 질문이 걱정할 거리를 주면서도 동시에 저를 성장시킨다고 믿습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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