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명지대 바둑학과 역사의 뒤안길로…27년 만에 폐지

1997년 창립된 명지대 바둑학과, 2년 격론 끝에 폐지로 가닥
세계 유일무이 바둑학과로 명성…바둑 인구 감소로 폐과 수모
2025학년도부터 신입생 모집 안 해…바둑고 3학년 학생들 ‘혼란’

기사승인 2024-03-27 08:3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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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명지대 바둑학과 역사의 뒤안길로…27년 만에 폐지
지난 2022년부터 바둑학과 폐지 반대 운동을 전개했던 명지대 재학생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갔다. 사진=이영재 기자

“당장 올해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부터 갈 데가 없어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김길곤 한국바둑중·고등학교 교장)

세계 유일무이 ‘바둑학과’로 명성을 떨쳤던 명지대학교 바둑학과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27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명지대학교는 지난 25일 교무회의를 열고 바둑학과 폐과를 확정했다. 당장 2025학년도 신입생부터 받지 않겠다는 방침인데, 이로 인해 올해 수능을 치르는 고3 수험생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김길곤 한국바둑중⋅고등학교 교장은 “25일 명지대학교 교무회의에서 바둑학과 폐과가 결정됐다”면서 “당장 고3 학생들의 진로가 막막하다”고 우려했다.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에 자리잡은 한국바둑고등학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바둑 특성화 고등학교다. 지난 2019년 특수목적고등학교로 지정된 바 있다. 바둑 스포츠 활동을 통해 심신 발달과 기력 향상을 도모해 대한민국 바둑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목표로 운영되는 한국바둑고등학교는 졸업생 대부분을 명지대 바둑학과에 보내고 있었다. 학과 폐지가 결정되면서 바둑고등학생들의 진로 문제도 난제로 떠올랐다.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폐과 논의는 지난 2022년부터 본격화했다. 명지대는 경영 악화를 이유로 명지대학교와 명지전문대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바둑학과를 폐지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단독] 명지대 바둑학과 역사의 뒤안길로…27년 만에 폐지
바둑학과는 처음 논의가 시작될 때 마인드스포츠(경영)학과 편입 예정이었으나 이후 폐지로 가닥이 잡혔다.

처음 논의가 시작될 때는 ‘미래융합대학’ 소속 ‘마인드스포츠(경영)학과’로 개편될 예정이었으나 점차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명지대학교 관계자는 “바둑이 사양 산업으로 접어든 지 오래고 바둑학과 진학 비율 또한 한국바둑고등학교 학생들의 비중이 압도적”이라며 “바둑 인구 감소세가 뚜렷한데, 특히 젊은 층에서 바둑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바둑학과 측에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동시에 ‘폐과 반대 운동’을 전개해나갔다. 올해는 그 일환으로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는 물론 졸업생⋅재학생들이 십시일반 모금 운동을 전개해 KB국민은행 챌린지리그에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팀을 만들어 출전하기도 했다. 

KB국민은행 바둑리그 2부 격인 챌린지리그엔 프로·아마 구분 없이 참가비 1000만원만 내면 팀을 만들 수 있다. 명지대 바둑학과 팀은 졸업생 출신 프로기사는 물론 아마추어를 포함한 선수단을 구성해 챌린지리그에 출전, 지난 17일 춘천에서 개막한 1~2차전에서 2패를 기록했다. 

1997년 창립된 바둑학과는 지난 27년 동안 프로기사는 물론 바둑 강사 및 관련 업계 종사자들을 배출하며 바둑 인재 양성의 요람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명지대학교 측의 학과 폐지 결정에 따라 명맥이 끊길 위기에 봉착했다. 

정봉수 대한바둑협회 회장은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명지대학교 바둑학과가 없어지면 바둑의 가치 손상으로 직결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대한바둑협회(대바협)는 타 대학에 바둑학과 신설을 추진하는 TF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 회장은 “바둑학과 폐과는 바둑계 전체의 문제”라며 “바둑학과 존립을 위해 대바협은 행정적인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단독] 명지대 바둑학과 역사의 뒤안길로…27년 만에 폐지
명지대학교 바둑학과는 KB국민은행 챌린지리그에 참가해 학과 폐지 반대 목소리를 내기 위해 교수 및 졸업생⋅재학생이 십시일반 모금을 진행했다. 1000만원의 참가비를 마련해 팀을 창단한 이후 지난 17일 춘천에서 개막한 KB국민은행 챌린지리그에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팀으로 출전해 경합을 펼치고 있다.

이영재 기자 youngja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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