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어제는 성차별, 오늘은 성희롱…고려대 어떻게 대처할까

기사승인 2016-06-14 15: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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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어제는 성차별, 오늘은 성희롱…고려대 어떻게 대처할까

[쿠키뉴스=정진용 기자] “A는? 다 맛보려고 하네” “A는 먹혔잖아” “B(A의 애인)가 먹음. 근데 임자 있는 애들만 좋아하네” “씹던 껌 성애자. 단물 다 빠진 게 좋노”

극우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 올라온 대화가 아닙니다. 고려대 교양 수업을 함께 듣는 남학생들이 동기 여학생을 대상으로 나눈 메신저 카카오톡(카톡) 대화의 일부입니다. 14일 고려대 남학생들이 카톡 단체 채팅방에서 여학생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1년 동안 언어 성희롱을 지속했다는 내부고발이 나왔습니다.

이날 고려대 총학생회와 언어성폭력사건피해자대책위원회는 서울 성북구 교내에 대자보를 붙이고 A4 700쪽 분량의 대화 전문 중 일부를 공개했습니다.

여기엔 “새내기 새로배움터(새터)에 예쁜 애 있으면 샷으로 (술을) 먹이고 쿵떡쿵”, “새따(새내기와 성관계를 뜻하는 줄임말) 해야 하는데” 등의 성희롱 발언이 포함돼있었습니다.

대화 참여자 중에는 양성평등센터 서포터즈로 활동하거나 새내기 새터에서 성평등지킴이 역할을 맡았던 학생도 포함된 사실이 알려져 누리꾼들에게 더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비단 학생들에게만 해당하는 얘기일까요? 고려대는 최근 강사와 교수들의 성차별 발언으로 인한 내홍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한 철학과 강사가 강의 중 “딸 셋 있으면 권력, 돈, 명예에 시집보낸다”, “에스키모인들은 외부에서 손님이 오면 마누라와 동침시킨다. 가보고 싶다”는 발언을 한 것이 논란이 됐습니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학생들이 지난 7일 공개한 바에 따르면 교수들도 “여자는 똑똑하면 남자한테 인기가 없다. 조금 멍청하고 백치미가 있어야 남자한테 사랑을 받는다”, “학생이 수업시간에 하품하다니, 무례하네. 그것도 여학생이”, “여자애처럼 애교도 좀 부리고 다소곳하게 좀 해봐” 등 심각한 수준의 성차별 발언을 일삼았습니다.

문제는 성차별, 성희롱 발언을 한 당사자들의 태도입니다.

철학과 강사의 경우 학생회가 항의하자 처음엔 “농담이었다”고 사과했으나 이후에도 문제가 되는 발언을 계속했습니다.

지난 10일 학생들이 다시 한 번 대화를 요구하자 강사는 “쓸데없는 데에 시간 쓰게 하지 말라”고 대화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성차별·성희롱 발언에 대한 문제 제기는 ‘쓸데없는’ 일이 아닙니다.

먼저 교원이 성별을 이유로 학생을 차별해선 안 된다는 것은 고려대 ‘교원윤리규정’에도 분명히 명시돼 있는 사안입니다.

또 카톡 등 모바일 채팅창에서 오고 간 성희롱 발언은 공연성과 전파성의 요건을 모두 갖춰 형법 제307조 명예훼손 혐의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명백한 범죄 행위이죠.

왜 이런 일이 하루가 멀다고 되풀이되는 걸까요?

가장 큰 이유로는 대학교 측의 미적지근한 태도를 들 수 있습니다.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대학교 성희롱ㆍ성폭력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같은 해 기준 280개 대학교 중 성희롱ㆍ성폭력 관련 규정에 학생의 조사대책기구 참여를 명시한 대학은 53%에 그쳤습니다.

또 성폭력 관련 상담을 위한 별도의 인원이 배정된 대학은 조사 대상 중 7.5%에 해당하는 21곳에 불과했죠.

대학들은 대부분 쉬쉬하며 성희롱ㆍ성폭력 사건을 덮기에 급급해 오히려 피해자들만 2차 피해를 걱정해야 할 지경입니다.

고려대는 지난 2011년 의대생 집단 성추행 사건에 이어 2012년 여학생 2명이 지도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건에서도 자체 조사를 정해진 기간의 갑절이 넘도록 마무리하지 않는 등 늑장 대처로 지탄을 받은 바 있죠.

이번 성희롱 사건에 대해서는 고려대가 과연 어떤 대처를 보일지, 많은 눈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jjy4791@kukimedia.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