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카드] 양치기 소년 된 축구협회

기사승인 2017-09-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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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카드] 양치기 소년 된 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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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가 여론을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성인 축구대표팀이 부진한 경기력으로 질타 받고 있는 가운데 히딩크측과 협회가 소모적인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전·현직 임직원들의 공금 유용 사실이 드러나며 대대적인 물갈이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여론이 범람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협회가 지속·반복적인 거짓말로 사태를 무마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는 히딩크와의 진실공방에서 직접적으로, 공금 유용 사건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났다.

축구협회 전·현직 임직원의 배임 혐의는 위중한 사건이다. 히딩크 부임설이 한창 떠돌 당시 협회는 돈이 없어서 감독 연봉을 맞춰줄 수 없다고 밝혔다.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에 대한 잔여 계약금 문제도 골치 아픈 듯 거론했다. 하지만 경찰 수사 결과 몇 억 원의 협회 공금이 개인 주머니에서 돈 꺼내듯 골프장이나 유흥주점, 노래방, 피부미용실 등에서 사용됐다. 돈은 있었지만 감독 선임에 쓸 돈은 없었던 셈이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어제(14일) 업무상 배임 혐의로 축구협회 전·현직 임직원 12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지난 4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스포츠 비리 신고센터가 수사를 의뢰했고, 경찰은 내용 확인 후 조사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조중연, 이회택, 김주성 등 축구계 유명인사가 대거 적발됐다. 

경찰에 따르면 조중연 전 회장은 지난 2011년 중순부터 2012년 말까지 업무추진비 명목으로 지급된 법인카드를 총 220여회에 걸쳐 1억3000만원을 사용했다. 이 외에도 국제 대회에 가족을 데리고 가며 항공료가 포함된 3000만원의 비용을 공금으로 처리했다. 경찰은 이와 같은 비리가 관행적으로 이뤄졌다고 판단하고 추가 수사를 벌이겠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훨씬 많은 이들이 더 많은 금액의 돈을 멋대로 사용한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부패는 축구대표팀의 부진과 궤를 같이한다. 한국은 2011년 치른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우즈베키스탄과 승점 동률이었으나 골득실에서 간신히 1점 앞서 본선에 올랐다. 이후 조별리그에서 러시아에 비기고 벨기에, 알제리에게 연달아 패하며 1무2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대회를 마감했다. 본선 조별리그에서 승점 1점을 기록한 건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처음이다. 부정부패가 만연한 동안 한국축구는 16년 전으로 돌아간 셈이다.

현 히딩크 감독선임 논란에는 ‘원칙’과 ‘성적’ 사이의 첨예한 대립이 있다. 신태용 감독 체제를 본선까지 보장해야 된다는 주장에는 원칙이 있다. 이에 반해 히딩크 전 감독 부임을 연호하는 이들은 축구대표팀이 무엇보다 성적을 최우선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논리다.

히딩크는 검증된 감독이다. 히딩크의 축구철학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한국 축구에 처방전이 될 수 있다. 이번 월드컵이 히딩크에게 익숙한 러시아에서 열리는 것도 호재다.

그러나 히딩크 전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는 들 협회가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긴 힘들어 보인다. 협회는 히딩크측과 진실공방을 벌이면서 말을 여러 차례 번복했다. 최초 히딩크 전 감독이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직을 희망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김호곤 기술위원장은 “히딩크측과 그 어떤 접촉도 한 적이 없다. 히딩크 감독이 그런 얘기를 했을 리 없다. 이런 얘기가 나와서 불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김 위원장의 발언은 히딩크 전 감독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거짓으로 판명됐다. 14일 히딩크 전 감독은 네덜란드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에 있는 히딩크 재단을 통해 지난 여름 축구협회 내부 인사에게 내가 한국 축구를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고 국민과 축구협회가 원한다면 그 일을 수행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직후 김 위원장은 “카카오톡을 찾아보니 지난 6월19일 대리인 연락이 온 적이 있었다”고 해당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나 “그 땐 내가 기술위원장도 아니었고, 뭐라 확답을 할 위치나 자격도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으로 있다가 6월26일 기술위원장을 겸직하게 됐다.

문제는 취임 이후에도 히딩크측의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히딩크 재단 노제호 사무총장에 의해 문자메시지가 공개되자 김 위원장은 “기술위원장에 취임한 후 노 사무총장이 만나자는 내용으로 두 차례 더 문자를 보내왔다”고 인정했다. 다만 “메시지 내용 자체가 적절하지 않았고, 공식적인 감독 제안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방법이었기에 그 이후로 잊고 지냈다”고 전했다.

15일 축구협회는 정몽규 회장 주재로 대책회의를 열었지만 뚜렷한 결론 없이 신태용 체제에 대한 신뢰만 확인했다. 그렇다. 지금으로선 혜안(慧眼)이 없다. 아무리 합리적인 결정이라도 양치기 소년이 된 협회는 새로운 의혹을 맞닥뜨릴 것이다. 결국 협회는 다른 의미의 결단을 보여줘야 할 시점이다.

이다니엘 기자 dn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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