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의 커피소통57] 김춘수 시인의 '꽃'과 '커피 블루잉(brewing)'

기사승인 2017-09-21 14:5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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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시인의 대표작 꽃에 보면 이런 싯귀가 나온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그는 1922년 경남 충무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총명했던 그는 학교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고,법관이 되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일본의 법대에 진학하려 했다. 

하지만 헌책방에서 우연히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집을 사 읽으면서 법대 진학을 포기하고 니혼대학 예술과에 진학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친구들에게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한 것이 문제가 되어 체포되어 7개월간 감옥생활 끝에 강제 퇴학 및 강제 송환을 당했다.

그는 귀국 이후 여러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가 1959년에 문교부의 대학교원 자격을 취득했고, 1960년대에 경북대학교 교수로,그 이후에는 영남대학교 교수와 문과대학장까지 역임했다.

그는 정치인의 길을 걷기도 했는데 제5공화국 당시에 민정당 전국구의원을 지냈으며,이후에는 문예진흥원 고문,방송심의위원회 이사장을 거쳐 KBS이사를 역임했다.

김춘수는 노년에 자신의 이력에 댸한 이야기가 오갈 때마다 대단히 곤혹스러워 했는데 그 이유는 자신의 이력의 대부분이 자신의 의지 보다는 타의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김춘수도 대부분의 문학가들이 그러했듯이  커피를 대단히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사진에는 커피잔을 손에 든 채로 포즈를 취한 것도 있다.

그의 시적인 감흥은 어쩌면 화가 '빈센트 반 고흐'처럼, 천경자 화백처럼 커피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의 대표적인 시 '꽃'의 싯귀를 읽을 때면 마치 커피가루가 물을 머금고 봉긋 솟아오르는 장면이 떠오른다.

커피를 추출하는 과정을 영어로 브루잉(brewing)  이라고 한다.이 말은 분쇄된 커피 가루에 물을 부어 추출하는 과정을의미한다.

핸드드립으로 추출할 때면 분쇄된 커피가루에 물을 부어 뜸들이기를 한다.이때 로스팅 한지 얼마 안되는 신선한 커피일 수록 부풀어 오르는 정도가 더 높다. 

이는 커피원두 속에 있는 이산화탄소 가스가 물에 반응하여 커피 가루를 부풀어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는 원두 속에 있는 아로마를 붙잡아 놓는 역할을 한다. 로스팅 한지 오래되어 이산회탄소 가스가 사라지면 아로마도 날라가며, 커피 속에 있는 기름성분이 산소와 반응하여 산패현상이 일어난다. 

[최우성의 커피소통57] 김춘수 시인의 '꽃'과 '커피 블루잉(brewing)'

그래서 커피 케이크의 높이가 낮으면 낮을 수록 신선도가 떨어진다고 판단 할 수 있다.

커피는 분쇄한지 2~3일이면 아무리 신선한 커피원두라고 해도 더 이상 부풀어 오르지 않는다. 이는 커피 원두 안에 있는 아로마가 이산화탄소가 날아 갈 때 함께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높이 올라오는 커피 케이크를 보면 마치 꽃처럼 아름답다. 잘 맡아보면 아름다운 꽃 향기와 과일향도 난다. 경우에 따라서는깊은 숲속에서 맡을 수 있는 피톤치트도 느낄 수 있다.

한편 추출시에 커피 케이크가 지나치게 높게 부풀어 오르면 정상적인 커피추출이 어려워진다. 부푼 커피 케이크 아래에 동굴과도 같은 빈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가루 입자조절과 물 붓기를 가지고 높이를 조절해야 잘 추출된 맛있는 커피를 맛 볼 수 있다.

시인의 시를 커피 블루윙에 빗대어 인용해 본다면 이런 싯귀가 나올 것 같다.

"내가 물을 부어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한줌의 커피가루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뜨거운 물을 부어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향기로운 커피꽃이 되어주었다."

글=최우성(인덕대 외래교수. 커피비평가협회(CCA) 서울 본부장, 웨슬리커피 LAB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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