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종의 환자샤우팅] 혈액사업 패러다임, 채혈에서 수혈로 바꿔야

기사승인 2017-12-11 04: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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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종의 환자샤우팅] 혈액사업 패러다임, 채혈에서 수혈로 바꿔야·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쿠키 건강칼럼] 우리나라 혈액사업의 고질병 중 하나가 하절기 방학·휴가철, 동절기 방학·혹한기를 포함해 추석·설날 등의 장기간 연휴 때마다 혈액부족 사태가 반복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헌혈실적이 2012년 272만2609건 이후 매년 계속 증가해 2015년에는 308만2918건까지 늘었다가 2016년 286만6330건으로 뚝 떨어져 최근 혈액수급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채혈을 담당하고 있는 대한적십자사 혈액원(헌혈의집)·한마음 혈액원(헌혈카페)·중앙대학교 혈액원(헌혈센터)은 혈액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헌혈교육 등의 장기적인 대책보다는 헌혈자에게 인기가 좋은 영화예매권 1매 또는 1+1 이벤트로 2매를 헌혈기념품으로 증정하는 단기적인 방법을 주로 동원하고 있다.

헌혈은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대가없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장기에 해당하는 혈액을 제공하는 순수 봉사행위다. 따라서 채혈기관들이 사람이 헌혈을 했다는 이유로 혈액수가에 책정된 금액 이상의 비용이 들어가는 영화예매권을 헌혈기념품으로 헌혈자에게 지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신속히 근절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2015년 총 헌혈실적은 308만2918건이고, 헌혈자 실 인원수는 166만8424명이다. 국민헌혈율도 6.09%로 영국·프랑스·독일·호주·네덜란드 등 주요 해외 선진국보다 높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총 헌혈실적이나 국민헌혈율이 상대적으로 높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혈액수급이 불안한 중요한 이유는 과잉수혈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헌혈자들로부터 많은 채혈을 하지만 그에 비례해 환자에게 그만큼 수혈도 많이 하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혈액이 모자라는 것이다. 과잉수혈의 원인은 대한수혈학회 등 관련 전문학회의 수혈가이드라인을 의료현장의 의사들이 잘 지키지 않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수혈 관련 건강보험 급여기준도 일부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일부 환자들도 혈액을 마치 영양제처럼 생각해 몸 상태가 조금만 안 좋아지면 의사에게 수혈해 달라고 요구하는 등 복합적인 요인에 기인한다.

어쨌든 우리나라 혈액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가 적정수혈이라는 것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과잉수혈이 적정수혈로 전환되면 그만큼 혈액이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사람의 혈액을 환자가 수혈 받으면 다양한 수혈 부작용과 에이즈, B형·C형간염 등 감염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수혈은 필요 최소한으로 받는 것이 가장 좋다. 무수혈 수술이나 대체수혈 요법 등 혈액을 사용하지 않는 다양한 방법들이 각광받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환자혈액관리(PBM: Patient Blood Management)’ 개념이 도입되어 유행하고 있다. 쉽게 설명하면, 환자에게 혈액이 부족할 경우 수혈뿐만 아니라 필요한 최선의 치료 전략을 다학제적으로 접근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이는 헌혈을 통해 혈액을 얻어 환자를 치료하는 기존의 전통적인 관념을 넘어 혈액을 적정하게 사용하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환자안전 및 치료결과 향상 모두를 얻는 것이다.

혈액으로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서 헌혈자로부터 채혈하고 검사하고 공급하는 과정과 환자에게 수혈하는 과정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따라서 기존의 헌혈자 채혈 중심에서 수혈을 포함해 채혈, 검사, 공급 등을 포함한 환자혈액관리 중심으로 혈액사업 패러다임을 과감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 수혈을 적게 하거나 하지 않아도 된다면 채혈, 검사, 공급 또한 이에 비례해 줄여도 되기 때문에 최근의 적정수혈, 안전수혈, 수혈대체 등의 개념을 혈액관리법에 추가하는 개정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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