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끓는 의심(醫心), 흔들리는 문재인 케어

기사승인 2018-02-23 12: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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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의 단체인 대한의사협회가 본격적인 선거전에 들어갔다. 현 의사협회장을 비롯해 6명의 후보가 등록을 마쳤고, 기호를 받았다. 후보들은 각자 자신을 알릴 홈페이지 혹은 블로그, 사회연결망서비스(SNS)를 개설하고 본격적인 의사들의 마음(의심, 醫心) 공략에 나섰다. 이에 이들 6명의 차기 협회장 후보의 공약을 통해 이들이 바라본 의료계의 모습, 의사들이 원하는 의료계의 미래에 대해 살펴봤다.


◇ 기호 1번, 추무진

“문재인 케어, 추무진이 케어 하겠습니다.” 3년간 의사협회를 이끌고 있는 추무진 회장이 제40대 대한의사협회장에 다시금 출사표를 던지며 내건 첫마디다. 의료계의 가장 큰 현안을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으로 본 것이다.

그는 “적정수가 마련과 저평가된 급여의 정상화를 반드시 쟁취해낼 것이다. 말이 아닌 성과로 평가해달라”면서 무보수 봉사와 그간의 성과, 대정부 협상을 골자로 한 공약들을 내걸었다. 공약은 ▶보험 ▶정책 ▶의료개혁 ▶라이프(생활) 4대 분야로 나뉘어있다.

먼저 보험분야는 진찰료 30%, 종별가산 15% 인상,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의사결정구조 개편, 총액계약제 저지,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저지를, 정책분야는 한의대 폐지, 보건부 독립, 신설의대 저지, 대불금제도 폐지를 내세웠다.

의료개혁으로는 회원총회 및 회원 투표제 도입, 의료정책연구소의 역량강화, 의학정보원·의료사안감정원·의료광고심의기구 신설, 회관신축 완성 및 오송 ‘교육 및 연구센터’ 추진을 들었다.

의사들의 삶을 바꾸기 위한 공약으로는 안정된 누후를 위한 의사연금 도입, 70세 이상 회비면제 및 회비 인하, 회원이 하나 되는 의사의 날 지정, 여의사·봉직의·전공의 등을 위한 맞춤형 회원지원센터 설립을 약속했다.

그리고 이들 분야별 핵심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세부과제로 ▶면허권 침탈 저지를 위한 강한 의협 건설 ▶동네의원 살리기 ▶당당하고 걱정 없는 여성의료인 ▶행복한 전공의·전임의 ▶학회와 함께하는 의협 ▶복직의를 위한 의협, 중소병원과 상생하는 의협을 공약하고 48개 실천방향을 제시했다.


◇ 기호 2번, 기동훈

직전 전공의협의회장을 역임한 기동훈 후보는 새로운 변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지금까지 수차례 회장이 바뀌고 공약과 구호가 제시됐지만 변한 것, 해결된 문제가 많지 않다는 점을 꼬집었다. 이를 위해 기 후보가 약속하는 첫 목표는 의협 내부의 개혁이었다.

그는 “전체 회원 중 3%의 지지만 얻는 의협회장은 이제 그만”이라며 회비납부를 해야만 가능했던 투표를 납부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의사에게 투표권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민의를 온전히 반영할 수 없는 대의원 구조를 바꾸고, 모바일 총회를 도입, 주요 사안을 모바일로 투표해 전 회원의 뜻을 모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두 번째 공약은 ‘회원을 위한 의료환경 마련’으로 ▶급여체계의 재정립을 통한 급여의 비급여화 ▶수가협상 및 정책결정의 불합리함을 타파할 건정심 구조개편 ▶올바른 의료전달체계 확립 ▶의사를 의사답게, 의료인의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의권수호팀을 신설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젊은 의사들을 위하는 의협을 만들기 위해 ▶공보의·군의관 등 군 복부시간 단축 ▶전공의들의 수련병원 선택권과 선발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한국형 매칭시스템 도입 ▶국가의 전공의 수련비용 지원 등 건강한 진료환경 구축을 위한 근무환경 개선도 주창했다.


◇ 기호 3번, 최대집

최대집 후보는 일명 문재인 케어가 발표된 후 반대 기치를 내걸고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 투쟁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의료계 내에서 가장 강성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평가가 무색하지 않게 “의료를 멈춰서라도 의료를 살리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최 후보가 회장이 된 후 의사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집단 파업 등을 통해서라도 원하는 것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 여기에 의협의 사회적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의료계 내부 조직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꿔 대화와 타협의 창구를 의협으로 일원화하겠다는 뜻도 공약을 통해 밝혔다.

이와 함께 “의사의 정당한 권익이 보장되는 근본적 의료제도 개혁을 추진하겠다”면서 ▶건강보험 청구대행 폐지 ▶의료기관 강제지정제 폐지 및 건강보험 단체계약제 전환 ▶비급여 전면 급여화 저지 및 예비급여 철폐를 이루겠다고 전했다.

아울러 ▶진료비 정상화 및 3년내 OECD 평균수준 수가보상 ▶무차별 삭감제도 개편 ▶급여기준 및 심사기준 개편 및 갱신제도 마련 ▶의약분업 개선 ▶한방건강보험 분리 및 선택가입 ▶한방자동차보험제도 및 한의과대학 폐지도 주장했다.


◇ 기호 4번, 임수흠

서울시의사회장을 역임하며 회무수행능력을 인정받아 2번의 회장 선거에 나섰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던 임수흠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의장이 3번째 출사표를 던졌다. 임 후보는 ‘투쟁과 협상’을 전면에 내세우며 “졸속 문재인 케어가 아닌 제대로 된 건강보험 개혁안인 임수흠 케어로 회원과 국민에게 선택받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2018년 현재 6.24%인 건강보험 부담료율을 12%까지 올리고 정부의 공공재원을 56.4%에서 80%까지 늘려 문재인 케어의 막연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가 아닌 필수의료의 90%를 건강보험에서 보장하고 OECD 평균의 수가보상을 이룰 수 있고, 이루겠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의사들이 의료정책과 법을 만들 수 있는 체계인 ‘KMA POLICY(정책)’ 활성화 ▶의료기관의 종별 기능 단순·분화를 통한 전달체계 확립 ▶상시소통과 정책결정 투명화를 통한 의협에 대한 신뢰회복 ▶한의과대학 폐지를 통한 의료일원화 ▶진찰료 개선, 전문성 인정, 진료형태 다양화 등을 통한 행복한 진료환경 구축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임 후보는 앞선 6가지 공약과 함께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성폭력 및 언어폭력을 ‘영혼살인’이라고 규명하며 회장에 당선된다면 일련의 폭력을 추방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미래 의료를 책임질 젊은 의사들을 위해 ▶전공의 수련비용 50% 이상 국가지원 ▶폭행, 폭언 근절대책 마련 ▶군의관 및 공보의 근무기간 단축 ▶공보의 진료장려금 현실화도 약속했다.


◇ 기호 5번, 김숙희

기호 5번을 부여받아 40대 대한의사협회장에 도전하는 김숙희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20대 국회의원에 도전하기도 했으며 현재 서울시의사회장직을 수행해 정치적 역량에서 강점을 보이는 후보로 알려져 있다.

그 때문인지 여타 후보들이 강한 투쟁의지를 앞세운 것과는 달리 의사협회의 정치적 영향력 강화를 표면에 내세우며 “국민건강과 의사면허를 위협하는 주장에 당당히 맞서고 의협은 구태를 벗고 완전히 달라져야한다”며 의료환경과 의사협회의 쇄신을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의지를 구현하기 위한 공약으로는 ▶현안에 신속히 대응할 투쟁상설기구 신설 ▶한방에 대한 원천적 검증 및 의과의료기기 허용논란 무산 ▶OECD 평균 수준의 수가 인상 ▶의사의 처방료 수가 복원 ▶졸속 문 케어에 앞선 왜곡된 의료체계 개선을 내걸었다.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모는 행위를 차단하고 소신진료를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기 위해 ▶강압적 수사 및 폭언·폭행으로부터 회원 수호 ▶의료사고 특례법 제정 ▶건정심 구조개혁 ▶투명한 심사평가와 비의학적 삭감기준 개선도 제시했다.

들끓는 의심(醫心), 흔들리는 문재인 케어
◇ 기호 6번, 이용민

의료계의 킹메이커이자 브레인으로 통하던 이용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이 이번 선거에선 기호 6번을 뽑으며 마지막 주자로 회장 직에 직접 도전한다. 이 후보가 내건 표어는 ‘강력한 의협(Strong), 능력있는 의협(Smart), 소통하고 도움주는 의협(Sense)’로 일명 3S라고 불린다.

의료계 내부는 각 과별, 종별로 사분오열돼 하나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어 분열된 의사사회 내부를 강하게 통합해 하나의 목소리를 내며 투쟁력을 갖춘 조직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의지표시다.

그리고 일련의 변화를 바탕으로 이 후보는 ▶올바른 의료를 위한 수가 30% 인상 ▶처방료 부활과 수가결정구조 개혁 ▶원칙 없는 보장성 강화정책 원점 재검토 ▶당연지정제 폐지를 위한 헌법소원과 단체계약 쟁취 ▶관치의료 철폐 ▶근거 없는 한방의료 저지를 이루겠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의학정보원 시설 및 자체 전자진료시스템(EMR) 제작·배포 ▶동네의사 협동조합 설립 및 활성화 ▶의사회원과의 소통강화를 약속하며 의료기관과 의사들의 일상적인 불편과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공약도 함께 내걸었다.


◇ 공약에 투영된 의료계 현실과 미래

즉, ‘문재인 케어’에 대한 ‘투쟁’과 같이 이들 6인의 공약을 비교해보면 큰 맥락에서 대부분은 유사한 의도나 동일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건정심의 의사결정구조 개선이나, 투명하고 공정한 심사·평가제도 확립, 의료전달체계 및 수가체계 개편 등이다.

6명의 후보 모두 임상현장에서 의료기관들이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인 손해나 불편을 겪고 있으며, 이로 인한 불만이 의료계 전반에 걸쳐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환자들의 의료서비스 이용문화와 함께 문재인 케어의 보장성 강화로 인해 더욱 악화될 수도 있는 의료기관 환자쏠림현상 등의 심각성에 대해 의료계 또한 공감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점도 공통되게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전달체계 개편이나 의료행태 개선을 위해서는 적절한 수가 등을 통한 의료기관 및 의료서비스 이용자들의 행동변화를 유도할 수 있어야 하며, 의사들이 소신껏 진료를 할 수 있는 보상체계 또한 갖춰져야한다는데에도 뜻을 같이했다. 

한의사나 한의학에 대해서도 일부 시각에 차이는 보이지만 국민건강과 환자안전이라는 명분을 갖고 한약(첩약)이나 한의학에 기반한 치료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하고 한방진료체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에는 모두 동의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 외에도 기존 의사협회와 회원들 간의 소통이 원활하지는 않았으며, 회원들의 뜻이 집행부를 거쳐 정치권이나 정부에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 구조를 일선 의사들이 원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폭행·폭언 등 내부 문화개선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느끼는 듯하다.

하지만 일련의 공약들이 모두 이뤄진다고 해서 의료계가 ‘좋아질지’에 대해서는 명확치 않은 것 같다. 

실제 한 의료계 관계자는 “워낙 의료계가 어려워 현실의 문제를 푸는 것만으로도 공약이 넘쳐나는 상황”이라며 “공약만이라도 지켜지면 좋겠다. 그럼에도 욕심을 내본다면 의료계와 의사협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이나 목표에 대해서도 제시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의사협회는 여전히 의원들을 대표하는 집단에 머무르는 모습”이라며 “차기 회장은 병원과 학계, 의료계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진정한 의사들의 대표가 되길 기대해본다”고 후보들의 공약과 목표에 대한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다.

한편, 40대 회장 선거의 선거인명부작성은 오는 28일까지 마무리될 예정이며, 투표는 오는 3월 23일 오후 6시까지 전자 및 우편을 통해 진행된다. 개표는 오후 7시부터 시작되며 대부분의 투표가 전자투표로 이뤄질 것으로 관측돼 향후 2년간 의사와 의료계를 이끌 차기 회장도 당일 결정될 전망이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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