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종의 환자샤우팅] 전문약사와 이대목동병원 사태의 나비효과

기사승인 2018-04-09 07:5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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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종의 환자샤우팅] 전문약사와 이대목동병원 사태의 나비효과글·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쿠키 건강칼럼] 2004년 개봉된 영화 ‘나비효과’는 한순간의 사건이나 선택이 미래에 엄청난 결과로 이어지는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어 당시 선풍적 인기를 얻었다.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는 본래 기상학에서 나온 말이다. 브라질 정글에서 날아다니는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하면 그 날갯짓이 미국 남부 텍사스 주에 상륙하는 거대한 폭풍 허리케인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미다. 

작년 12월 16일 이대목동병원 중환자실에서 인큐베이터 치료를 받던 신생아 4명이 82분 동안 연쇄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국립과학수사원의 부검과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가 신속하게 이루어져 올해 1월 12일 간호사가 영양주사제를 취급하는 과정에서 시트로박터 프룬디균을 신생아 4명에게 감염시켰고, 이로 인해 발생한 패혈증으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부검결과를 발표하였다.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를 통해 이대목동병원이 영양주사제 ‘1인1바이알 투약지침’을 어겼고, 영양주사제 1바이알을 7개의 주사기로 분주한 장소가 청결구역인 무균조제실이 아닌 오염구역인 중환자실 내 싱크대(손을 씻는 세면대가 아닌 액체를 버리는 용도)가 있는 공간이었고, 분주한 영양주사제 5개도 세균 증식 위험이 높은 24~28도 상온에서 5~8시간이나 보관된 뒤 주사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를 종합하면 이번 사태는 환자안전에서 자주 인용되는 구멍이 숭숭 뚫린 ‘스위스치즈’ 비유처럼 이대목동병원에서 환자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삼중사중으로 만들어 놓은 안전장치 모두에 큰 구멍이 생겨 발생한 전형적인 예방가능한 적신호 사건이다. 지난 4월 4일 경찰이 입건된 총 7명의 의료인 중에서 주치의 2명과 수간호사 1명 총 3명을 구속하였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마녀사냥’이라며 집단 반발하고 있고, 유족들은 의료계의 이러한 반응에 대해 ‘특권의식’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1인 1바이알 투약 대상인 영양주사제를 분주한 행위, 오염구역인 싱크대가 있는 공간에서 영양주사제를 분주한 행위, 세균 증식 위험이 높은 영양주사제를 상온에서 장시간 보관한 행위 등을 사전에 막을 수는 없었을까?

지질영양제가 ‘약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약물을 조제하고 안전사용 하도록 관리하는 약사가 있고, 이들 약사가 제대로 역할을 했다면 4명의 신생아가 집단 사망하는 최악의 사태만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환자안전법, 일명 종현이법 제정의 계기가 된 정종현 어린이의 항암제 빈크리스틴 투약오류 사건도 고위험약물을 전문적이고 안전하게 조제·관리하는 약사가 있었다면 예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2017년 환자안전사고 보고 통계’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의료기관평가인증원에 자율 보고된 환자안전사고 총 4427건 중에서 약물오류가 29.0%로 낙상 47.8%에 이에 두 번째로 많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약사도 의사처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전문약사제도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15년부터 기존 4년제에서 6년제로 바뀐 약학대학교 졸업생들이 매년 1600여명 배출되고 있는 점도 전문약사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전문약사가 제도화 되어 있지 않다. 다만, 한국병원약사회에서 2010년부터 종양약료, 심혈관계질환약료, 중환자약료 등 10개 분과에서 민간 차원의 전문약사 자격시험을 실시하고 있고, 2016년 기준으로 532명의 전문약사가 배출되어 활동 중이다. 이젠 정부와 국회도 약물의 전문적이고 안전한 조제·관리와 복약지도를 하는 전문약사를 민간 자격이 아닌 국가 자격으로 인정하는 전문약사제도의 도입에 대해서도 검토할 때가 된 것 같다. 

한번 상상해 보자. 전문약사가 법률에 근거해 2010년 이전부터 제도화되어 의료현장에서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면 이것이 정종현 어린이가 빈크리스틴 투약오류로 사망하지 않고, 이대목동병원 4명 신생아도 집단감염으로 사망하지 않도록 하는 ‘나비효과’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었다면 정종현 어린이도 무럭무럭 자라 아마 오늘은 고등학교에 등교해 공부하고 있을 것이고,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4명도 퇴원해 집에서 엄마·아빠 앞에서 재롱부리며 귀여움을 한껏 받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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