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다‘ 칭찬도 독(毒)...“무심코 건넨 칭찬이 거식증 부추긴다”

무분별한 외모 언급, 청소년 자아발달에 악영향...거식증 등 섭식장애 유발 우려

기사승인 2019-06-28 0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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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원래 그렇게 예뻤니?”
“조이는 자기가 예쁜 줄 알았는데 아이린보고 깜짝 놀랐대”
“너희 너무 속물이다”(JTBC ‘아는 형님’ 방송 중)

거식증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 외모에 대한 과도한 사회적 관심이 10대 청소년을 거식증으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거식증 진료환자가 계속 증가해 2015년 2354명이었던 환자 수는 2018년 3354명으로 약 42%가량 늘었다. 연령별 요양급여비용 비율을 살펴보면 10대 환자가 전체의 41.4%로 가장 많았다. 20대 환자는 22.4%로 뒤를 이었다. 이들 거식증 환자의 90%는 여성이었다.

거식증은 신체적·정신적 기능 손상을 유발하는 섭식장애의 한 종류로 장기간 심각할 정도로 음식을 거절하는 정신질환이다. 거식증 환자들에서는 음식이나 체중, 몸매를 강박적으로 조절하는 증상을 보이며, 종종 우울증과 불안, 폭식장애 등 다른 정신병리가 함께 나타난다.

전문가들은 사회적으로 외모에 대한 언급을 삼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미디어 등에서 연예인의 외모를 부각시키거나 미적 기준 제시하는 것, 외모가 예쁘면 다른 건 상관없다는 식의 사회적 통념을 강조하는 표현 등도 제한할 필요가 있다. 만연한 외모평가는 정신건강이 취약한 이들에게 거식증 등 섭식장애를 유발하는 방아쇠가 되기 때문이다.

'예쁘다‘ 칭찬도 독(毒)...“무심코 건넨 칭찬이 거식증 부추긴다”

특히 거식증 환자의 대다수가 10대 청소년인 만큼 어린 아이들에게 무심코 던지는 ‘예쁘다’, ‘귀엽다’는 칭찬도 위험하다. 자아가 온전히 확립되기 이전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는 외모에 대한 언급 자체가 자아발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거식증 등 섭식장애가 의심되는 환자 앞에서는 더더욱 외모에 대한 언급을 조심해야 한다. ‘말랐다’, ‘뚱뚱하다’,  ‘하얗다’, ‘검다’ 등 상태 묘사도 금물이다. 또 정신건강이 불안정한 환자들에게 과격한 말로 치료를 강권하는 것도 좋지 않다.

김율리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모즐리회복센터 소장)은 “섭식장애 환자들은 자신이 어떤 상태이고, 당장 무엇이 필요한지 지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 가족들이 과격하게 ‘너무 말라서 보기 싫다’는 식으로 돌진하는 형태는 환자에게 좋지 않다. 반대로 ‘그 정도면 괜찮다’는 식의 언급도 병을 악화키는 요인이 된다”며 “제일 조심해야할 것은 외모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외모에 대한 언급은 거식증의 시작이면서 병을 심화시키는 독이다. 부정적인 말뿐 아니라 칭찬처럼 들리는 ‘날씬하다’, ‘살빠졌다’ 같은 말도 조심해야 한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그런 말을 흘려들을 수 있지만, 심리적으로 취약한 상태에서는 치명적일 수 있다”며 “유럽 국가 등에서는 외모나 체형에 대한 언급을 저급하게 취급하는데 우리도 그런 말을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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